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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로마스페인광장엔 연인들 밤낮없이 북적관련

눌재상주사랑 2010. 4. 16. 15:42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로마
스페인광장엔 연인들 밤낮없이 북적
  • 로마에 들어서자마자 심장이 두근댄 건 왜였을까. 어딜 둘러봐도 고대 유적이 즐비한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은 불쑥 심장이 덜컥인다. 걸음걸음 역사가 읽히는 길 위의 시간이기 때문일까. 잃어버린 사랑 같은 것, 로마 제국의 사그라진 불꽃 같은 것이 고대 유적 밑에 묻혀 있을 것만 같아서일까. 봄이 완연한 콜로세움을 거닐며 무너진 돌 틈에서 환하게 핀 들꽃들을 보게 된다면 누구든 한번쯤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시간 속에 묻혀 다시는 더듬어 볼 수 없게 된 세상의 모든 연서(戀書)들을 말이다.

    ◇로마에선 누구나 스페인광장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현지인에게나 외국인에게나 유명한 만남의 장소.
    역사의 돌 틈에 핀 한 송이 꽃, 연서

    ‘거대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콜로세움은 그 이름답게 로마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이다. 검투장으로 쓰였던 이곳은 현재 경기장 바닥이 모두 무너져 그때의 모습을 상상해볼 뿐인데, 아래의 미로 같은 방들이 동물이나 검투사들이 머물던 곳이라 하니 한층 생생하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검투사는 노예나 포로나 죄수들이었고, 경기는 그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됐다고 하니 그들을 지하 방에 맹수들과 함께 가둬두었던 것. 그러니 그 미로 같은 역사의 흔적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오히려 무너진 돌 틈에 핀 붉은 들꽃들이 어여쁘게 여겨진다.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이곳을 빠져나오면서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웨딩촬영을 하는 신혼부부를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오래전에 죽어간 검투사들의 사랑도 떠올려보게 됐다. 역사는 흘러가고 우리는 그 위에 얹혀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흙이 되어 언젠가는 저 돌 틈의 꽃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한 신부의 흰 웨딩드레스가 내 눈을 아프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콜로세움에서 베네치아광장으로 가는 길은 고대 로마의 중심지인 포로 포마노. 넓게 펼쳐진 이곳엔 옛 건물의 기둥과 초석들이 남아 있어 화려했던 시절을 가늠케 한다. 그 역사의 길을 걷고 걸어 베네치아광장을 지나 미켈란젤로가 극찬한 판테온에 닿았을 땐, 언제가 보았던 것만 같은 장면이 눈앞에 있었다. ‘모든 신의 신전’인 판테온 기둥에 기대어 편지를 쓰고 있는 한 남자. 그에게 내려앉는 로마의 봄 햇살은 너무도 따스해 마치 누군가의 말 없는 위로 같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연서들은, 그것이 만약 사형수의 것이라 해도 얼마나 절실하고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한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믿음, 두 개의 동전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광장. 이곳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모든 이들의 약속 장소라서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밤낮없이 북적인다. 그래서 꽃이 활짝 핀 이 봄의 스페인광장엔 오래도록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로 사랑의 향기도 난분분하다. 그래서인지 스페인광장을 찾으면 괜스레 설레기부터 한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시작할 것처럼, 마치 ‘로마의 휴일’의 공주 앤과 신문기자 조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람으로 북적이는 또 한 명소는 바로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는 아침이든 낮이든 밤이든 사람으로 꽉 둘러싸여 있다. 로마에 찾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트레비 분수를 찾아가 동전을 던지니까, 우리는 누구나 소원을 하나쯤은 갖고 사니까 말이다.

    반신반어인 바다의 신 트리톤과 여러 마리의 해마가 조각되어 있는 트레비 분수 앞에서 나는 밤이 깊을 때까지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소원들을, 그 소원을 염원하는 상기된 얼굴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분수를 등진 채 오른손에 동전을 쥐고 어깨너머로,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는 설이 담긴 첫 번째 동전을 던진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두 번째 동전을 던지며 자신의 소원을 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허공을 날아 분수로 떨어지는 동전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얼마나 잘 살고 싶어 하는지, 그래서 삶이란 것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소원이 있어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가 닿고자 하는 당신이 거기에 있어 하루하루 걸을 수 있는 힘을 내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그러니 우리에겐 소원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소원은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는 뜻 이전에 희망이 있다는 뜻이니까. 당신에게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세 갈래 길이 합류한다는 의미의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운 야경 속에서, 나는 눈을 꼭 감고 두 개의 동전을 던졌다. 누구나 그렇듯 ‘다 잘될 거라’고 믿고 또 믿으면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에서 내려다 본 봄이 찾아온 로마의 일요일.
    일찍 눈을 뜬 일요일 아침,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한다. 일요일이면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성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에서 교황이 직접 주관하는 미사에 참석한단다. 나도 넓디넓은 광장의 한 귀퉁이에 서서 지난밤 트레비 분수 앞에서의 소원을 떠올리며 두 손을 모았다.

    미사가 끝나고 웅장한 성당을 둘러보다가 성당의 성당 첨탑인 쿠폴라로 향하기 위해 537개의 계단을 올랐다. 그 위에서 바라본 로마의 풍경은 참 행복해 보인다. 미사를 마치고 차분해진 사람들이 곳곳에서 여유롭게 오후를 즐기는 그 풍경을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일요일 오후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광장 곳곳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가족,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엄마 아빠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 바쁜 연인들, 다리 위에서 강을 바라보는 사람들…. 소소하고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생각하게 해주는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콜로세움의 돌 틈에서 보았던 작은 들꽃을 떠올렸다. 우린 어디에서든 그 들꽃처럼 어떻게든 살아간다. 그리고 슬픔 중에도 어떻게 해야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안다. 단지 위로가 필요할 뿐이다.

    나는 첨탑에서 내려와 로마의 아름다운 휴일 속으러 슬며시 스며들면서 생각했다. 그러니 이 봄의 꽃과 햇살과 당신의 말없는 손짓이 얼마나 내게 위로가 되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시인·여행작가

    〉〉 젤라테리아 ‘졸리티’

    로마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졸리티’는 백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 까닭에 늘 줄이 문밖까지 이어지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신선한 맛. 판테온 근처에 있는 이 가게의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처럼 로마 거리를 걸으면 오후 햇살이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 기사입력 2010.04.15 (목) 21:42, 최종수정 2010.04.15 (목)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