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화첩 기행② 선과 색과 리듬이 하나되다 | ||
화가의 붓 끝이 '자연의 리듬'으로 춤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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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이 어울리는 사람들
아프리카는 인간마저도 자연물의 조형세계로 만들어지는 땅이다. 인간은 해체돼 동물 문양 등 추상적 요소로 재구성되곤 한다. 누구는 입체파의 원형이라 했다. 깔끔하게 단장된 나이로비대학 캠퍼스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들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자연을 가지고 인간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연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서양화를 전공한 권순익 작가가 원색 옷을 입고 풀밭에 앉아 있는 학생을 보라고 손짓한다. 검은 피부가 원색과 자연의 녹색을 멋지게 관장하고 있는 모습을 주목하란다. 아프리카인들은 자연의 색인 원색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디스코텍의 마사이 여성 오후 8시를 넘기자 나이로비 시내 상가 문들이 하나둘 닫히고 그 앞엔 노점상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며 왁자지껄이다. 여느 도시 못지 않게 활기가 넘친다. 노점에서 갈아입을 속옷을 사서 숙소에 돌아와 지친 몸을 누이려는데 두 작가가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 ‘선과 색과 리듬이 하나되는 곳’에 가자며 다짜고짜 손을 잡아 이끈다. 발길이 멈춘 곳은 ‘플로리다 2000’이란 나이로비 시내 중심에 위치한 디스코텍. 호기심에 못이기는 척 따라 들어가 보았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늘씬한 흑인 여성이 함께 춤을 추자며 다가온다. 사실 디스코텍에는 백인 남성 관광객 몇 명을 빼고는 모두가 흑인이다. 자신을 마사이족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동양 남성들의 수줍음이 안쓰러웠는지 우선 자신의 춤을 보여주겠노라며 무대에 나섰다. 허리와 엉덩이가 각기 움직이며 다양한 선을 이루는 현란함에 한참을 넋이 나간 듯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초원을 누비던 마사이족의 야성이 바로 저런 것일 게다. 수단의 내전을 피해 이곳에 와 일하는 여성들도 있다.
#아프리카는 덥지 않다 다음날, 일찍이 길을 나섰다. 새벽 5시임에도 거리엔 노점상들이 줄을 섰다. 상점 문이 열리기 전에 열리는 반짝 시장이다. 나이로비의 새벽 공기가 선선하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 날씨를 닮았다. 처음 도착했을 땐 나이로비 시민 중에 긴 팔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 많아 의아했다. 나이로비는 적도에서 불과 160㎞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해발 1800m 고원에 위치해 아침저녁은 물론 한낮에도 그늘에만 있으면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숙소에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었다. 아프리카가 덥다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실제로 척박한 서부아프리카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아프리카 도시들은 고원에 위치해 있어 생각보다 쾌적한 편이다. 특히 나이로비의 시원한 맥주 맛은 더위를 식혀주기에 안성맞춤이다. 나이로비는 ‘차가운 샘’이라는 뜻의 마사이 말 ‘엥카레 나이로비’에서 유래한 것처럼 물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호수에 가득 핀 ‘분홍’ 나이로비에서 버스로 3시간가량 달려 나쿠루 호수(Lake Nakuru)에 도착했다. 세계 최대 홍학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호수 전체가 핑크빛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분홍빛이다. 200만마리 이상의 홍학 무리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호수와 수림, 산이 조화를 이룬 천혜의 조건을 갖춰 새뿐 아니라 코뿔소 기린 등 여러 동물을 볼 수 있다. 사파리 차를 타고 진입하는 길에 원숭이들이 줄지어 앉아 길을 막아 서기도 한다. 때론 길가의 작은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는 모습이 앙증맞다. 작가들이 스케치를 할라치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포즈를 취하는 폼이 꼭 모델을 연상시킨다. 아마도 자신들을 향한 집요한 눈길에 부담을 느껴 나름대로 방어자세를 취하는 것일 게다. 저 멀리 홍학 무리 근처에 하이에나 한 마리가 접근하고 있다. 가만히 숨죽여 지켜봤다. 먹히느냐 살아남느냐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기대했건만 하이에나는 물만 들이켜고 있다. 물이라는 먹이가 두 동물의 평화를 만들고 있는 풍경이다.
#구상과 추상이 넘나든다 한낮 태양이 내리쬐자 호수 근처에 아지랑이 같은 땅의 열기가 솟구친다. 질주하는 동물들의 털 무늬가 춤을 추듯이 흔들려 보인다. 뿌연 먼지까지 가세하니 먼 데 있는 동물들의 형상이 보일 듯 말 듯 가물가물해진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넘나드는 풍경이다. 두 작가는 말한다. 아프리카에 와 봤던 서구 작가라면 저 광경을 보고 무감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하건대 진정한 현대 추상의 모티브가 돼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바로 자연의 율동이기에 그렇다. 나이로비 시내로 돌아오는 도로 가의 높은 지대엔 전망대 펜스가 마련돼 있다. 으레 그곳엔 관광객을 대상으로 공예품을 파는 간이가게들도 들어서 있다. 목책으로 만들어진 펜스에도 색이 칠해져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얼룩말 무늬다. 일상의 미감에도 동물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를 향해 춤을 춰 보이는 길가 아이들의 몸조차 리듬이 되는 곳이 아프리카다. #공장지대의 창작 공간 나이로비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공장지대를 지나게 된다. 그 한 켠에 아프리카 미술의 내일을 책임질 작가들의 작업공간인 고다운아트센터(The GoDown arts center)가 자리하고 있다. 중앙에 자리한 허름한 공장 건물은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작가들의 전시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 옆엔 작가 20여명이 작업할 수 있는 아틀리에가 들어서 있다. 외형은 부도난 공장처럼 썰렁하지만 작가들의 열정만큼은 뜨겁다. 여러 곳을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서구 작가들도 워크숍에 참여할 정도로 작가 수준이 높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수단 출신 작가 살라아말(44)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내전을 피해 1995년부터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이로비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동물 문양을 가지고 춤을 춘다고 표현한다. 자연의 리듬으로 작업을 한다는 얘기다. 케냐가 아프리카 미술을 다시 깨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따라 재능있는 외국 작가까지 과감히 지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이미 폴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전시회 연 국제적 작가다. 그는 보는 사람을 구속하고 싶지 않다며 작품에 제목을 일절 달지 않고 있다.
#수묵화의 미래를 보다 살라아말 작품 중에서 잉크로 그린 그림은 수묵화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달과 악어를 번짐 효과를 이용해 그린 그림을 보고 김종우 작가는 놀랍다는 표정이다. 달은 가슴으로 받아들여 마음으로 발산하는 모습에 기가 서려 있다. 바로 먹의 기운생동이다. 악어를 여인 가슴에 담으면 물이 풍부해진다는 신화를 형상화한 부분에서는 물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한국화의 힘을 아프리카에서 제대로 보는 것 같다. 나이로비 외곽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인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를 쓴 카렌 블릭센(필명 아이삭 디네센)의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식민지 시절 백인 정착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고국인 덴마크에 돌아가서도 그녀는 아프리카의 색깔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녀가 잊지 않으려 했던 아프리카 색깔이 무엇인지 이제야 어렴풋하게 다가온다.
나쿠루(케냐)=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
2007.02.05 (월) 1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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