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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희의 세계문학 인터뷰] <11> ‘죄와 벌’<세계일보>입력 2010.06.22 (

눌재 2010. 6. 23. 03:45
[은현희의 세계문학 인터뷰] <11> ‘죄와 벌’<세계일보>
  • 입력 2010.06.22 (화) 22:53, 수정 2010.06.21 (월) 22:52
신화가 되지 못한 비극, 한 살인자의 고백
  • 《그 작은 범죄 하나가 수천 가지의 선한 일로 보상될 수는 없는 걸까? 한 사람의 생명 덕에 수천 명의 삶이 파멸과 분열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고,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생명이 교환되는 셈인데, 이건 간단한 계산 아닌가!》.

    범죄를 실행하다

    시계가 울리자 모든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맹목적으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마치 옷자락 끝이 바퀴에 휘말려 감겨들듯 그는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경비실 안에 있던 도끼를 훔쳐 외투에 감춘 후 그는 유유히 하숙집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건 이성이 시키는 짓이 아니라 악마의 짓이다!”

    기묘한 미소를 띠며 그가 말했다. 노파의 집에 도착하자 그는 주저 없이 계단을 올랐다. 문들은 모두 닫혀 있고 2층에 빈 아파트 안에서 칠장이들이 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4층에 도착한 그는 3층과 4층의 맞은편 아파트 역시 텅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노파의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뻗어 줄을 잡고 종을 울렸다. 잠시 후 빗장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노파가 등을 돌리고 전당품 꾸러미를 풀고 있는 사이 그는 재빨리 외투에서 도끼를 꺼내 힘껏 노파의 머리를 내리쳤다. 정수리에 가해진 타격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순간 노파는 비명을 질렀지만 극히 미미한 소리가 터져 나왔을 뿐이다. 그는 다시 온 힘을 다해 도끼 날로 정수리를 가격했다. 피를 왈칵 쏟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노파가 나자빠졌다. 눈을 부릅뜬 채 주름지고 일그러진 얼굴로 피범벅이 된 시신은 두개골이 완전히 박살난 채 옆으로 뒤집혀져 있었다.

    그는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한편 노파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냈다. 서랍장을 열어 숨겨놓은 금붙이와 귀금속 등을 꺼내 바지와 외투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노파의 시신이 있는 방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다. 가벼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신음소리를 내다가 멈춘 것 같기도 했다. 죽음 같은 정적이 흘렀다. 그는 궤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도끼를 쥐고 밖으로 나갔다. 방 한가운데에 노파의 동생인 리자베따가 서 있었다. 그녀는 손에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서서 넋을 잃은 채 언니의 처참한 주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뛰쳐나온 그를 보자 그녀는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방어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리자베따는 잔인한 학살자의 두 번째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타격은 정확히 두개골을 가르고 지나갔다.

    살인의 배경

    판화=정길재
    7월 초, 무더운 날이었다. 뻬쩨르부르그의 공기는 후텁지근하고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저기 석회석과 목재, 벽돌이 놓여있고 그 사이를 지나 걸어가는 사람들과 마차들로 거리는 혼잡했다. 인파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떨구고 입술을 씰룩이며 혼잣말을 했다. 때로 뒷짐을 진 손을 풀고 한 손으로 연설하는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가다가 멈춰서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을 때도 있었다. 짙은 아맛빛 머리털과 검은 눈동자가 있는 미남으로 약간 큰 키에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지녔다. 그러나 옷차림은 남루하고 얼굴에는 병색이 깃들어 매우 쇠약해보였다.

    “왜 거의 모든 범죄들이 그렇게 쉽게 발견되고 폭로되는 것일까?”

    그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거의 모든 범죄자들의 흔적이 그토록 뚜렷하게 남는 걸까?”

    그러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범죄자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즉 이성과 조심성이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그것을 상실해버리고 경솔해지기 때문이지. 그러다 점점 더 긴장과 흥분 상태가 고조돼 범죄 직전에는 그야말로 최고조의 단계에 이르게 되거든.”

    “그럼 범죄를 포기하는 게 최선이겠군.”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 만일 그것이 범죄가 아니라고 판단될 때는 그 모든 병적인 변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이성과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그는 법학을 전공하는 휴학생 로지온 로마니치 라스꼴리니꼬프였다. 그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음울한 목소리로 그가 내뱉는 혼잣말은 뻬쩨르부르그의 탁한 대기 속으로 여과 없이 스며들었다. 내가 이전에 알고 있던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 라스꼴리니꼬프가 아니었다. 나는 대도시의 타락한 혼령들이 속속 그의 몽상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가난과 수치심이 결국 그의 건강한 지성까지 병들게 한 것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밀린 임대료와 빚으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벌써 며칠째 끼니까지 거르고 있었다. 최근 들어 그는 우울증 환자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고립돼 있었다.

    어쩌면 선술집에서 만난 퇴역 관리 마르멜라도프에게 비참한 가족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창녀로 나선 그의 딸 소냐의 사연을 몰랐더라면 상황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소돔 같은 마르멜라도프의 집에서 폐병에 걸린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본 후 라스꼴리니꼬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다음날, 어머니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는 그를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편지에는 여동생 두냐가 가정교사로 있던 집에서 모욕을 당한 후 쫓겨난 사연과 원로원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루쥔이 두냐에게 급작스럽게 청혼을 해 온 소식이 적혀있었다. 루쥔의 됨됨이에서 파렴치한 속물 근성을 감지한 라스꼴리니꼬프는 편지를 모두 읽고 난 후, 눈물 젖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것은 이미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이 결혼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루쥔 따위는 꺼져 버리라고 해….”

    《오빠와 어머니를 위해서는 판다는 거다! 모든 것을 파는 것이다!》

    악몽의 사슬

    라스꼴리니꼬프는 두냐의 결혼이 곧 소냐를 창녀로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좁은 하숙방을 나와 하염없이 거리를 걸었다. 신경질적인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도시와 연결된 한 섬의 관목 숲으로 들어간 그는 풀밭 위에 누웠다. 그리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일곱 살 무렵 어느 축제일 저녁, 그는 아버지와 함께 죽은 남동생의 작은 무덤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선술집 앞을 지날 때였다. 술에 만취한 농부들이 우르르 노래를 부르며 나오더니 그 중 한 젊고 뚱뚱한 농부가 소리쳤다. “타, 전부들, 타! 내가 데려다 주지.”

    모두들 크게 웃고 떠들며 미꼴까의 수레에 기어올랐다. 암말은 지나치게 허약해보였다. “자, 가자!” 채찍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여윈 말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세 사람의 채찍에서 콩 떨어지듯 인정사정없이 매가 떨어졌다.

    그는 아버지에게 외쳤다. “아빠, 저 사람들이 불쌍한 말을 때리고 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무심히 말했다. “가자, 가!” 그는 아버지의 팔에서 빠져나와 정신없이 말에게 달려갔다. 미꼴까가 소리쳤다. “죽도록 갈겨!” 미꼴까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말 대가리를, 눈깔을 쳐, 눈깔을!”

    《말의 눈, 바로 눈동자를 치는 광경을 보았다! 소년은 울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도끼로 쳐야지! 그래야 단방에 죽지!” 다른 사람이 외쳤다. 미꼴까는 수레채를 버리고 쇠지렛대를 꺼내왔다. 그는 있는 힘껏 불쌍한 말을 쇠지렛대로 내리쳤다. “뒈져라!” 여윈 말은 숨을 괴롭게 몰아 쉬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그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본 소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 군중 속을 헤치고 말에게 달려가 피투성이가 된 머리를 붙잡고 말의 눈과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런 후 일어서서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미꼴까에게 사납게 달려들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라스꼴리니꼬프는 잠에서 깨어났다. 실컷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나른했다. “오, 맙소사! 정말로 내가 도끼로 노파의 머리를 내리치려 한 것일까, 그 정수리를 부수려고 한 것일까. 자물쇠를 깨고 도둑질까지 하려고 했단 말인가.”

    그제야 모든 주문, 마술과 마력,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그는 악몽에서 깨어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 왜 하필이면 늘 가던 길을 두고 센나야 광장의 우회로 쪽으로 접어들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인생의 바로 그 시간, 그 순간에.

    전당포 노파의 동생, 리자베따가 상인과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 것이다. 내일 저녁 7시경 리자베따는 집을 비우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놀라움이 점차 공포로 바뀌었다. 그의 등골에 차가운 전율이 스쳤다. 모든 일이 다 결정돼 버린 것 같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판단의 자유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미래의 운명이 이미 요지부동한 사실이 돼 버렸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인간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노파를 살해한 후 라스꼴리니꼬프는 범죄 현장을 벗어나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그는 경비원으로부터 한 통의 소환장을 건네받았다. 경찰서에서 온 것이었다. 그는 혹여 범행이 발각된 게 아닐까 두려워하면서 불안에 떨며 경찰서로 향했다. 그러나 소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몇 개월째 밀린 방세로 인해 집주인이 고소장을 접수했던 것이다. 혼잡스런 분위기 속에서 그는 경찰이 내미는 답변서를 작성했다. 언제까지 빚을 갚겠다는 각서였다. 막 서명을 하고 그가 일어섰을 때였다. 경찰들이 전당포 노파 살인사건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모자를 집어들고 문을 향해 걸어가다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벽지 뒤에 숨겨놓은 전당품과 훔친 돈을 갖고 밖으로 나왔다. 강물에 던져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어떤 집 마당의 돌 아래에 숨겨놓았다. 그날 이후, 라스꼴리니꼬프는 한동안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사건을 맡은 예심판사 뽀르피리는 여러 정황들을 검토하며 라스꼴리니꼬프가 용의자임을 확신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퇴역관리 마르멜라도프가 술에 취해 마차에 치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마지막까지 그의 임종을 돌보았다. 소냐는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아버지의 추도만찬에 그를 초대한다.

    한편 라스꼴리니꼬프를 찾은 어머니 뿔헤리야와 여동생 두냐는 온전치 않은 그의 행동을 염려하며 근처에 기거한다. 절친한 친구인 라주미힌은 두 모녀를 안심시키는 한편 최선의 배려를 아끼지 않고 그들 일가를 돕는다. 한편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수모를 당한 루쥔은 추도만찬에서 소냐에게 절도죄의 누명을 씌우려던 계획을 세웠으나 예상치 못했던 증인이 나타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루쥔의 악행이 만 천하에 드러나자 두냐는 미련 없이 결별을 선언하고 순수한 라주미힌에게 마음을 연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여동생의 문제가 해결되자 즉시 소냐를 찾아가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한다.

    “소냐, 머리와 정신이 견고하고 강한 사람이라야만 사람들의 주권자가 되지. 더 많이 용기를 내어 감행하는 사람만이 사람들 눈에는 옳아 보이는 거야. 보다 많은 것을 무시하는 자만이 그들의 입법자가 되고, 더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보다 옳은 사람이 되는 거야!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눈 먼 사람들만이 그것을 모를 뿐이지!” 그는 신열에 들뜨고 침울한 환희에 휩싸여 말했다.

    “난 그때 알게 되었어, 소냐. 용기를 내는 일만이 필요했던 거야! 그때 난생 처음으로 어느 누구도 결단코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그런 생각이 하나 떠오르더군. 태양처럼 명백하게 떠오른 거야! 내가 해내고 싶었어. 그래서 죽였어.”

    “그만두세요! 당신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요! 오, 하느님!” 소냐는 절규했다.

    “난 말이야, 소냐, 그래 궤변 없이 그냥, 나 자신을 위해서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죽이고 싶었어! 이점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도, 재산과 권력을 얻어서 인류의 은인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야. 그건 거짓말이야! 나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죽인 거야.”

    그는 두 팔을 무릎에 괴고 압착기로 누르듯이 머리를 손바닥으로 짓눌렀다.

    “이런 고통이 또 있을까!” 소냐에게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소냐는 온 마음을 다해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그녀는 절망에 빠져 애원하듯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되풀이해 말했다. “더 괴로워하게 될 거예요. 더!”

    “내가 만약 감옥에 가게 되면……나에게 와줄 거지?”

    “오, 그럼요. 그럼요!”

    두 사람은 폭풍이 지나간 텅 빈 바닷가에 외로이 버려진 듯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괴롭고 가슴 아프게 여겨졌다. 그랬다. 그것은 이상하고 무서운 감정이었다. 소냐에게 오면서 그는 모든 희망과 출구가 오로지 그녀에게만 있다고 느꼈다. 막상 그녀의 온 마음이 그에게로 향하자 그는 자신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불행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틈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들어와 단숨에 견고한 어둠의 벽을 허물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소설가·blog.naver.com/sgmoonhack

    작가와 작품 소개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는 1821년 11월 11일 모스크바의 마린스끼 자선 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월터 스콧의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전기와 역사 소설을 탐독했다. 이후 그는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의 영향을 받아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게 된다. 그는 당시 농노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급변하는 과도기 러시아 사회 속에서의 고뇌를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정신 분석가와 같이 인간의 심리 속으로 파고들어가,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해부한 도스또예프스끼의 독자적인 소설 기법은 근대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그의 작품들에 나타난 다면적인 인간상은 이후 작가들에게 전범이 되었다. 선과 악, 성(聖)과 속(俗), 과학과 형이상학의 양극단 사이에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사상가로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당대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제기하고 변치 않는 삶의 영원한 가치를 전해 준다. 일생 동안 그를 괴롭힌 간질병, 사형 집행 직전의 특사,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 광적인 도벽 그리고 끝없는 궁핍과 고난으로 점철된 작가 자신의 인생을 반영하듯 그의 작품들은 격정적이고 논쟁적이다.

    옮긴이 홍대화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상뜨뻬쩨부르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전임강사로 있다. 논문으로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소설 ‘의사 지바고’의 구성과 상징체계’,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에 드러난 인간의 죄의 문제’ 등이 있으며, 저서로 ‘혼자 배우는 러시아어’, 역서로 ‘러시아 희곡1’, 미하일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따’ 등이 있다. 

    ‘죄와 벌’은 도스또예프스끼가 남긴 문학작품의 중심에 위치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그의 후기 장편 세계로 통하는 단서가 되는 작품이다. 1866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돈과 살인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모티브를 내재하고 있으나 그를 통해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 인간 내면의 꿈과 환상, 철학을 결합시켜 다층적 의미를 확보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봉건질서의 몰락과 서구의 자유사상이 유입되던 시기인 1860년대 러시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작품의 소재 또한 사회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뻬쩨르부르크의 삶과 인물들이다. 이 작품은 살인을 다룬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철학적, 종교적, 사회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깊이 있는 문학작품으로 승화된 세계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삶과 철학의 문제를 예술적인 단계로까지 끌어올린 놀라운 역작으로 도덕률을 초월하는 주인공의 살인 행위를 통해 고대의 비극 예술을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인사상을 신봉하는 대학생 라스꼴리니꼬프가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위해 어떻게 파멸의 단계를 밟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혁신적인 소설 기법과 강렬한 문체의 광휘를 통해 도스또예프스끼 문학의 진수를 경험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