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문명의 충돌 잠시 접고 사랑의 충돌 펼쳤죠"
[인터뷰] '순수 박물관' 한국어판 낸 오르한 파묵
소설속 사랑 이야기처럼 실제 박물관 8월에 개관
소설속 사랑 이야기처럼 실제 박물관 8월에 개관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58)이 2008년 발표한 최신작 <순수 박물관>(전2권ㆍ민음사 발행)이 번역 출간됐다. 장편 <하얀 성>(1985), <내 이름은 빨강>(1998), <눈>(2002) 등을 통해 터키를 무대로 한 동서고금의 문명의 충돌을 주된 소설 주제로 삼아왔던 파묵이 처음으로 쓴 본격 연애소설이다.
소설속 '사랑이야기처럼 실제 박물관 8월에 개관
작품 속 남자 주인공인 케말은 젊은 날 사랑했던 여자 퓌순과의 추억이 서린 물건을 모아 '순수 박물관'을 만드는데, 파묵은 실제로 자신의 사재를 들여 이를 재현한 박물관을 8월 말 이스탄불에 개관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번 소설을 비롯해 국내 출간된 파묵의 전 작품을 번역한 이난아(44ㆍ한국외대 강사)씨가 지난달 8일 파묵을 이스탄불에 있는 집필실에서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다.
_ <순수 박물관>은 어떤 소설인가.
"짧게 말하면 사랑에 관한 소설이지만, 사랑을 칭송하거나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작품은 아니다. 사랑이 우리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고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심한, 무거운 면이 있는 소설이다."
_ 소설의 주무대가 1970~80년대 이스탄불이다.
"터키 같은 사회는, 하물며 1970년대에는, 사랑을 해도 이를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사회였다. 남녀가 함께 영화를 볼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는 나라였다. 혼전 관계라면 더욱 그랬다. 지금도 제대로 언급되지 못하는 순결, 성도덕, 우정, 결혼 그리고 행복이란 주제가 이번 소설의 심장부에 있다."
_ 당신의 소설 중 사랑을 가장 깊고 자세하게 다룬 작품으로 읽힌다.
"앞서 말한 압박과 감시 아래서 남녀는 어떻게 서로 만나 사랑을 발전시킬까. 서로 간의 시선, 눈썹을 치켜 올리는 신호 같은 것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이런 섬세한 사랑의 행위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_ 이 소설을 쓰면서 세계의 많은 박물관들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물건 수집 행위는 서양 문명에서 발달했다. 그곳에는 꼭 규모가 크고 민족적 요소가 깃든 박물관뿐 아니라, 자신이 겪은 슬픈 사건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개인이 세운 박물관도 많다. 그런 주변부의 박물관이 들려주는 상처 입은 자들의 비극적 이야기를 소설 속 케말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_ 소설 제목과 같은 이름의 박물관도 개관한다는데.
"요즘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다. 10년 전 이 소설을 구상할 당시부터 박물관 건립을 생각했고, 건물을 사는 등 차츰 계획을 실현해 왔다. 현재 20여 명의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단순히 퓌순의 물건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스탄불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소로 꾸밀 것이다."
_ (집필실) 책상에 못 보던 당신의 책 표지가 보인다.
"여러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책으로 내려고 하는데 박물관 개관 작업에 몰두하느라 진척이 안되고 있다."
_ 당신이 거의 모든 작품의 첫머리에서 '헌정' 의사를 표한 외동딸 뤼야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뤼야는 내가 재직하고 있는 컬럼비아대에 입학했다. (파묵은 이 대학 문예창작과 전임교수로 가을 학기에만 강의하고 있다) 인문학부 수석으로 입학해서 아버지로서 무척 기쁘다."
이난아씨는 파묵의 근황을 이렇게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집필실을 나서는데 파묵이 책상 위에 있던 야구 모자를 썼다. 우리는 대기하고 있던 파묵의 경호원과 함께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출발했다. 2005년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언급한 일로 파묵은 줄곧 신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정리=이훈성기자 hs0213@hk.co.kr
■ '순수 박물관'은 오르한 파묵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소설이자 그의 최신작인 <순수 박물관>은 집착을 넘어 순수의 경지에 다다른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1975년 터키 이스탄불.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상류계급 여성인 시벨과 약혼을 앞두고 있는 서른 살 케말은 시벨의 선물을 사러 상점에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먼 친척 여동생인 퓌순과 조우한다. 미인대회에 출전했을 만큼 미모가 뛰어난 그녀는 가난 때문에 돈을 벌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6년 전 가족모임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인연의 전부이지만, 케말은 퓌순에게 격렬한 애정을 느끼고 그녀도 이에 화답한다. 케말 어머니 소유의 빈 아파트에서 두 사람은 44일 동안 사랑을 나눈다. 케말의 행복은 그러나 그와 시벨의 성대한 약혼식을 보러 왔던 퓌순이 연락을 끊고 잠적하면서 산산조각 난다. 결국 시벨과 파경을 맞은 케말은 퓌순이 아파트에 흘리고 간 귀걸이를 시작으로, 그녀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을 모으며 고통을 달랜다. 사라진 지 339일 만에 연락해온 퓌순과 재회한 케말은 그녀가 그 사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7년 10개월, 2,864일 동안 케말은 퓌순의 집에 1,593번 저녁을 먹으러 간다. 케말의 수집품은 갈수록 늘어나고, 퓌순을 갈구하는 그의 오랜 기다림도 점차 결실을 거둬가는 듯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로 사랑은 끝내 어그러진다. 케말은 가슴에 묻은 연인을 위해 그동안 모은 물건으로 박물관을 세우고자 한다. 케말에게서 박물관 전시물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줄 것을 부탁받는 작가의 이름은 오르한 파묵. 그렇게 탄생한 이 소설에는 8월 말 이스탄불에서 실제 문을 여는 '순수 박물관'의 지도와 무료 입장권이 들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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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0/06/06 21:23:02 수정시간 : 2010/06/07 12:5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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