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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개펄

눌재 2010. 7. 7. 15:44

[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개펄

문인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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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갔다. 갯가에 붙여 지은 이 횟집엔 서쪽을 잘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여러 칸 일렬 쪽방을 따로 길게 달아놓았다. 오후 네시, 한 여자가 일찌감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상머리엔 벌써 소주 네 병, 잔뜩 취해 훌쩍거리고 있다. 바람맞은 걸까, 누군가 박차고 나가버린 걸까. 문 활짝 열어놓은 채 허우적허우적, 하염없는 넋두리에 빠져 있다. 핸드폰을 부여잡고…, 사연인즉 죽은 남자를 부여잡고 당신,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럴 수 있어? 이럴 수 있어? 얄팍한 합판벽, 우리는 여자의 바로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창밖, 널리 번진 뻘밭을 마구 뒹굴고 싶었다. 허공의 응답, 그 참을 수 없는 흥분으로 우리는, 지척간의 질퍽거리는 비련을 온몸으로 짓뭉개며, 힘껏 숨죽이며 사랑을 하고 창밖, 해 저무는 것 보았다. 저물어, 검게 물렁거리는 바닥으로 한사코 무르녹아드는 모습, 뒷모습…. 무르녹아 붉게 복받치는 저녁노을 보았다. 울음이 울음을 거뭇거뭇 삭히고, 어둠이 어둠을 그렇게 잠재우는 것 보았다. 으스러지게 껴안아 들인 것은 결국 너라는 등! 1막의 독무대 옆, 전망 좋은 방에서 그 일몰, 다 엿들었다.

일몰 보러 갔다가 일몰 듣고 왔다며 눙치시는 시인의 말씀. 그 말씀, 시작해서 끝나는 사이에 두 사람의 삶과 사랑이 피었다가 저물었군요. 꼭 하루 동안 생긴 일인 양. 어떤 여름날 오후가 되면, 그것도 한 네시경이면,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지요. 굳이 막 사랑이 끝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또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건 하루가 너무 짧아서 일찌감치 마시는 술이랄까. 울음은 울음으로 삭히고, 어둠은 어둠으로 잠재우듯, 취기를 취기로 다스리는 일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