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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말타족’ 봄나들이… 과부의 춘정

눌재 2011. 10. 12. 19:18

조선시대 ‘말타족’ 봄나들이… 과부의 춘정…<세계일보>
  • 입력 2011.10.10 (월) 23:53
16∼30일 간송미술관서 ‘풍속인물화대전’
  • 양반 자제인 듯한 젊은이들이 말에 기생을 태우고 봄나들이에 나섰다. 분홍 진달래가 활짝 핀 봄날이다. 한 젊은이는 종에게 갓을 맡기고 마부역할을 자임했다. 갓을 들고 뒤따라오는 종의 표정이 우거지상이다. 혜원 신윤복(1758∼ ?)의 그림연소답청(年少踏靑)’이다. 요즘 야타족 젊은이들을 연상시킨다. 말이 자동차로 바뀌었을 뿐이다. 조선시대 ‘말타족’인 셈이다. 한 과부가 집뜰에서 개의 교접장면을 바라보는 장면은 또 어떤가. 소복을 입고 나무에 걸터앉은 과부의 발끝이 춘정을 이기지 못한 듯 요상하다. 신윤복의 그림 ‘이부탐춘’이다.

    조선시대 ‘말타족’을 그린 혜원의 ‘연소답청’.
    혜원과 단원 김홍도(1745∼1806)로 대표되는 조선 진경풍속화의 절정기의 그림이다. 단원이 일반 서민의 생활상을 어람용으로 건전하게 그렸다면, 혜원은 당시 양반층의 노골적인 풍류문화를 가감없이 그려냈다. 문화 말기적 양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가을 정기전으로 16∼30일 조선시대 풍속화와 인물화의 변천을 살펴보는 ‘풍속인물화대전’을 연다. 안견부터 이당 김은호(1892∼1979)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가 배출한 52명의 화가가 그린 인물풍속화 10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한 시대의 문화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이념에 의해 성격이 결정되는데 이런 현상은 조선왕조 회화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남중국에서 발원한 주자성리학 이념을 받아들인 조선 전기에는 중국식 화풍을 모방한 작품들이 많아 인물들의 의복뿐 아니라 그림 속 소도 남중국에만 있던 물소의 모습으로 등장하곤 했다.
    율곡 이이(1536∼1584)에 의해 주자성리학이 조선성리학 이념으로 발전하면서 문화 전반에서 조선 고유의 색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겸재 정선(1676∼1759)이 조선성리학의 이념을 토대로 우리의 자연사회를 우리만의 개성 있는 화법으로 형상화한 진경화풍을 창안해 조선풍속화가 꽃을 피웠다.

    겸재에 이르러 비로소 조선풍속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조선 의복을 입기 시작했고, 당시 백성의 삶이 그림에 반영됐다. 나무꾼이 땔감을 운반할 때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지게가 그림에 등장한 것도 겸재의 ‘어초문답(漁樵問答)’이라는 작품에서였다.

    조선 말기로 접어들면서 뭣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지 의식은 사라지고 제멋대로 팔리는 그림에만 매달리면서 100여년 넘게 화려하게 꽃피었던 조선풍속화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망국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고작 청대 말기의 인물화풍을 적당히 버무려 내는 식이었다. 2008년 전시 때 20만명의 관람객을 몰려들게 했던 혜원의 ‘미인도’도 다시 출품된다. 혜원이 좋아했던 기생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02)762-0442.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