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문화기행] ① 시간을 초월한 마드리드<세계일보>
- 입력 2011.09.14 (수) 18:16, 수정 2011.09.15 (목)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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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의 꿈’ 이루어내듯… 이사벨 여왕 후손들 신세계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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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무작정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마드리드에 발을 내딛은 적이 있다. 스페인어를 한마디 못한다는 것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젊음은 그런 것이었다. 모험과 도전 속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한 순간이었다. 아프리카미술관 정해광 관장은 중년이 돼 지난 7월 다시 마드리드를 찾았다. 이번엔 스페인 문화에 갈증을 지닌 경남과학기술대학 박재현 교수(산림자원과)를 비롯해 몇몇이 동행했다. 이슬람 지배를 받았던 스페인만의 독특한 문화를 새롭게 바라볼 기회였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담은 ‘스페인’을 격주로 8회에 걸쳐 소개한다.
정해광 관장 박재현 교수
그란 비아(Gran Via)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란 비아는 서울의 종로거리와 같은 곳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서울 500년의 역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지만, 마드리드의 500년은 그란 비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리 전체가 500년의 역사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세월 만에 다시 찾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무색케 한다.
묵었던 호텔도 200년이 넘은 건물이다. 그렇다고 내부가 200년이 된 것은 아니다. 스페인 정부는 건물의 외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수리만을 허락한다. 그러나 내부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리모델링 차원에서 내부 전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는 기본이고, 부대시설이나 침실은 초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이다.
일상에 대한 인식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자동차만 하더라도 밴은 오토 차량이 거의 없다. 스틱차량을 렌트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토에 익숙한 우리 일행은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도 경찰서 앞에서 기어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 접촉 사고라는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마드리드는 새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달리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왕정에서 모은 작품들을 상설 전시하면서 시즌에 맞춰 기획전을 열고 있다. 미술관 입구에 혁명적 인생의 기로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던 디에고 리베라의 ‘젊은 리베라’ 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고야의 ‘옷 벗은 마야’
그란 비아에서 푸에르타 델 솔로 연결되는 거리로 오후가 되면 길거리 자체가 연주회장으로 바뀐다. 날씨가 덥지 않아도 사람들이 별로 없는 이유는 아직도 스페인 사람들은 시에스타(siesta)라는 낮잠을 즐기기 때문이다.
소피아미술관에 이르는 길가의 노천카페 풍경. 500년 세월의 풍화를 간직한 건물의 차양에 의지해 옹기종기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병원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소피아 미술관에는 피카소, 달리, 미로 등 현대미술계에 족적을 남긴 작품들로 가득하다. 여름 특별전으로 일본의 여류화가 ‘구사마 야요이’전이 열리고 있어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마드리드도 유난히 거리의 악사가 많은 도시다. 프로페셔널한 연주자의 음악은 물론 시골 마을에서나 봄직한 아마추어적인 악사들도 길에서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있다.
소피아미술관을 나오면서 문득 한 여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슬람 700년 지배에 종지부를 찍고, 이베리아 반도에 통일왕국을 세워 오늘의 스페인을 있게 하고, 콜럼버스를 통해 신대륙의 꿈을 현실 속에서 이루었던 500년 전 이사벨 여왕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이사벨 여왕의 후손들은 수많은 화가들과, 건축가들 그리고 문호들과 함께 마드리드에 역사를 썼고 영혼이 깃들게 했다. 새로운 세계의 추구를 업으로 삼았던 이사벨 여왕의 유전자는 오늘도 마드리드 골목길의 스치는 바람이 되어 이방인을 반겨 맞고 있다.
글·사진=정해광(아프리카미술관 관장), 박재현(경남과학기술대학 교수)
마드리드, 미술관·박물관 270개 즐비
마드리드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270여개가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도 좋을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술관이 좋고 대가의 그림이 많다고 해도, 짧은 일정에 쫓기듯 보다간 실망하기가 일쑤다. 여유 공간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림들은 감상의 맛을 떨어지게 한다.
얼마나 그림이 많으면 그럴까. 한 번 가서 보시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마드리드는 한 달 이상 머물라고 권하고 싶다. 한 미술관에 사나흘 아니면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그림을 대하면 놀랄 일이 많을 것이다. 대가의 그림이라서 갖는 놀라움과 경이로움 때문만은 아니다. 색과 사조 그리고 정신의 향연에 흠뻑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옆 그림을 훔쳐보지 않는 대가들의 작품들, 그것은 행복한 여행의 발로다. 행복하기 위해서 감탄을 하는 것처럼, 행복한 사람이 감탄을 잘 하는 것처럼, 마드리드는 미술의 도시며, 감탄의 도시다. 좋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과 행복에 빠지게 하는 것이 마드리드가 지닌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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