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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경주문화재연구소 주도권 다툼에 조각조각 따로 전시

눌재상주사랑 2008. 12. 31. 22:55
한겨레

사천왕사터 신장상 ‘반쪽 몸’ 된 사연

기사입력 2008-12-31 19:25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중앙박물관-경주문화재연구소 주도권 다툼에 조각조각 따로 전시

“창피하죠. 이게 통일신라 조각 명품에 대한 예의일까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한 소장 고고학자는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길이 쏠린 한쪽 진열대 위에는 창, 화살을 든 세가지 모양의 불교 수호신 부조상(신장상)이 놓여 있다. 최근 경주 사천왕사터 목탑터 발굴 과정에서 탑 기단부에 일부 상이 온전하게 박힌 채 출토돼 관심을 모은 진흙부조상이다. 8세기의 생기가 온몸에 약동하는 녹유신장상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왼쪽 A상은 모조품이다. 옆에 하반신 일부가 놓여 있을 뿐이다. 가운데 B상과 오른쪽 C상은 실물이지만, 두 상 모두 수호신이 악귀를 깔고 앉은 하반신만 남아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전시실은 딴판이에요. A상과 C상은 온전한 모습이고, B상은 갑옷 입고 정면을 노려보는 상반신만 남아 있어요. 결국 경주와 서울의 상을 같이 맞춰야 온전한 수호신이 되는 겁니다.”

왜 서로 반쪽이 됐을까? 문화계에선 두 기관의 명분 싸움과 이기주의를 이유로 꼽는다. 신장상은 1910~20년대와 올해 같은 절터에서 8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출토됐지만, 옛적 출토품을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과 새로 신장상 조각들을 발굴해 소장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사이의 견해차로 흩어진 몸 조각을 맞춰보지 못한 채 서울과 경주로 갈라져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박물관의 ‘통일신라조각전’(내년 3월1일까지)과 연구소의 특집전시(1월 중순까지)가 그것이다. 박물관 전시에는 그나마 하루에 수백여 명이 찾는 반면, ‘골방’ 같은 경주 연구소 전시실에는 “일주일에 10~20명 정도 관람할 뿐”이라는 전언이다.

박물관 전시팀은 지난여름부터 연구소에 출토 신장상의 대여를 요청했다고 한다. 박물관 소장 신장상과 최근 출토된 조각들을 맞춰 복원하려는 뜻을 비쳤지만, 연구소는 거절했다. 지병목 연구소장은 “제도상에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12월11일 발굴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를 마치고 한 달 가량 연구소에서 전시를 한 뒤 빌려주려 했다. 하지만 유물들은 법적인 국가 귀속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귀속이 안 되니 대여할 수가 없다.”

발굴 유물의 귀속 관리 주도권을 놓고 박물관, 연구소 쪽은 오랜 신경전을 벌여 왔다. 어느 쪽의 주장이 타당한 것이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전시 비용을 세금으로 대는 국민들은 한자리에서 온전한 명품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병목 소장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국립경주박물관과 내년 3~4월에 발굴 신장상 조각들을 같이 모아서 특별전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꽃피는 봄에 사천왕사터 신장상 조각들은 한몸이 될 수 있을까.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