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18003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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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 최고의 바람둥이던 제우스의 찬란한 애정사를 묵묵히 인내하며 가정을 수호하던 여신 헤라에게도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찾아왔었다.
상대는 테살리아의 왕인 익시온으로, 탐욕스러운 남자였다. 부귀영화에 눈이 어두웠던 그는 장인에게 약조한 재물을 주지 않아 비난을 받게 되자 홧김에 장인을 장작불에 타 죽게 만들었다.
순간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살인자가 되고만 익시온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속죄 의식을 거듭하였다. 괴로움의 수레바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익시온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의 죄를 씻어주고 올림푸스 궁에 데려가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대접하였다. 신들의 음식을 먹은 인간 익시온은 불사의 몸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신이 고쳐놓아도 사람의 근본만큼은 변하기 어려운 법이런가. 올림푸스에서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던 익시온은 헤라의 목욕 장면을 보고 불 같은 욕망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는 제우스가 베풀어준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으나, 연모의 정을 억누를 수 없어 결국 배은망덕하게도 하룻밤 동침해달라며 헤라를 쫓아다녔다.
그의 행각은 마침내 제우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고,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제우스는 구름으로 헤라의 모습을 만들어 익시온을 시험해 보았다. 그런 사정을 알 수 없는 익시온은 헤라가 나타나자 이때다 싶어 그녀를 덥석 안고 말았다.
루벤스는 욕정에 눈이 먼 익시온이 구름으로 만들어진 헤라와 정신 없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재미있는 작품으로 남겼다. 진짜 헤라여신은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곁에서 혀를 차며 바라보고 있다.
익시온의 파렴치한 욕망이 사실로 드러나자 제우스는 그를 불붙은 수레바퀴에 묶어 지옥의 밑바닥으로 내려보냈다. 수레바퀴는 돌면서 몸을 태웠고, 죽지 않는 몸이 되어버린 익시온은 우주가 존재하는 한 자신의 욕정보다 뜨거운 불에 시달리는 형벌에 처해지고 말았다.
익시온의 인생은 고통과 욕정이 뒤엉킨 수레바퀴 아래의 삶이다. 부(富)와 색(色)을 쫓던 그는 욕망을 달성해 잠시 자유를 누리지만, 자유를 남용하면서 뒤따르는 책임과 정죄의 무게를 감당해낼 수는 없었다. 곧 인생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거침없이 굴러오고 그를 삼켜 태우기에 이른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에서도 제목만큼이나 고단한 수레바퀴 아래의 인생이 등장한다. 부모의 기대, 주변의 시선, 원하지 않는 것을 해내야 하는 부담감 등 어린 소년이었던 한스를 향해 굴러오는 수레바퀴는 익시온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진정한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무력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인생의 쓴맛 그 자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바퀴는 둥글다. 가끔 바퀴가 삐걱댈지라도, 원하던 방향에서 조금 비껴갈지라도 수레 위에 자신의 전부를 싣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모으기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방향을 살피며 자신의 수레를 이끌고자 하는 의지에 불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불붙은 수레바퀴를 소극적으로 피하다 바퀴에 치일 것인가. 이 시대 청춘들의 선택을 기대해 본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기사입력 2008.12.18 (목) 17:53, 최종수정 2008.12.19 (금)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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