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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파 이하응 ‘병란도’ 정초한 새해에 딱 어울리는 한국 서화전이 열린다. 어려운 시기 어지러운 눈과 마음을 차분하고 고결하게 정화해주는 전시다. 특히, 일본에서 건너와 국내 처음 선보이는 근대 서화전이라 더욱 반갑다.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는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전을 7∼24일 연다. 학고재 우찬규 대표가 10여년간 일본에서 수집한 500여점 중 119점이 선보인다. 19세기 말부터 일본을 왕래하며 활동한 작가의 서화나 일본으로 옮겨진 작품들이다.
대부분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1880년∼1940년대 근대 작가 37명이 그리거나 쓴 작품들이다. 구한말 마지막 조선 ‘선비’들의 기개와 힘이 느껴지는 작품도 있고, 현대 추상화의 모던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작가의 면면을 보면 일본에 유학했거나 일본인과 친교가 두터운 문인도 있지만,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사도 있다. 반면 일제의 관직이나 작위를 거부한 윤용구나 황철, 3·1 독립선언서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 광복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김진우 등도 포함됐다.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한국의 근대 서화는 주제 면에서는 고루할지라도 형식 면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파격적인 화면 구성과 필묵법 등 개성미가 두드러진 게 특징이다.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일컫는 사군자 용어가 정립된 것도 이 시기”라며 한국 근대서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 해강 김규진 '월하죽림도' 항일운동의 군자금 조달에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는 김진우(1882∼1950)의 ‘묵죽도’(墨竹圖)는 대나무 2개의 명암을 극적으로 대비해 하면서 기개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현대적이다.
몽인 정학교(1832∼1914)의 ‘죽석도’(竹石圖)는 기이한 암석 그림에 능했다는 후세의 평을 확인해주고 황철(1864∼1930)의 ‘묵죽도’는 먹을 대담하게 구성하고 대나무와 시를 한 화면에 넣은 형식이 신선하다. 지운영(1852∼1935)의 ‘산수도’(山水圖)는 묵을 수직으로 반복해 찍어 인상파의 점묘법을 연상시킬 만큼 독특한 필법을 사용했다.
한편 김응원(1855∼1921)의 ‘묵란도’에는 이완용의 글이 곁들여져 근대서화를 둘러싼 친일 문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밖에 의친왕 이강(1877∼1955), 김윤식(1835∼1922), 김옥균(1851∼1894), 박영효(1861∼1939), 조석진(1953∼1920), 안중식(1861∼1919), 허백련(1891∼1977), 김은호(1892∼1979), 이한복(1897∼1940) 등 역사 속 인물이나 근대 유명 서화가의 그림과 서예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근대 서화는 한동안 서양미술과 현대미술 등에 밀려 변변한 전시도 없었다. 이번 전시는 근대 서화전으로는 10여년 만에 열리는 전시다.
이 교수는 “1980년대까지도 인기가 높았던 고서화는 미 의식 변화와 함께 현대적 대중 기호와 멀어져 밀려나게 됐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근대인들의 예술적 발자취와 한국 근대미술사를 새롭게 조망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739-4937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 기사입력 2009.01.06 (화) 18:09, 최종수정 2009.01.07 (수)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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