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여성]왕궁의 화려함 이면에 숨은 ‘여성의 굴레’
윌리엄 블레이크 -캐서린 왕비의 꿈
20090305003942
왕비는 꿈을 꾼다. 흰옷을 입은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며 그들만의 연회에 초청한다. 잠에서 깬 왕비는 천사들의 초대에 응했던 것인지 다음날 세상을 하직하였다.
영국의 시인 겸 화가로 신고전주의적 예술경향에 반발해 자신만의 상상력 넘치는 작품세계를 추구해 온 윌리엄 블레이크는 왕비의 꿈을 환상적으로 화폭에 재연해 냈다. 블레이크가 묘사한 아름다운 꿈의 주인공은 초기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절대군주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 왕비다. 그녀가 출생했던 지명을 딴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헨리 8세의 형 아서와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그가 결혼 전 요절하자, 18세에 왕위를 물려받아 정치적 세력을 키워야 했던 헨리 8세와 정략결혼을 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유산 후 탄생한 후세가 딸인 까닭에 캐서린 왕비와 헨리 8세의 관계는 자연히 멀어져 결국 별거에 이르고 말았다.
이때, ‘천일의 스캔들’로 유명한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열애사건이 터졌다. 헨리가 캐서린과 이혼하고, 당시 시녀였던 앤과 재혼하면서 영국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영국의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꾸는 종교개혁까지 이르게 되고 결국 캐서린과의 결혼은 ‘형의 아내였던 여인과의 결혼이었으므로 무효’로 판결이 나고 말았다.
이혼 후, 변경에서 거주하면서도 왕비로서의 위엄과 인품을 잃지 않았던 캐서린은 거만하고 드센 앤과 달리 백성들의 신뢰를 얻었다. 일방적이었던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녀의 차분하면서도 굳센 성품은 앤이 왕비가 되고 나서도 줄곧 ‘왕비 캐서린(Catherine the Queen)’이라고 문서에 서명하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한편,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기도 한 앤의 ‘1000일 천하’는 그녀의 강한 기질과 성격에 질린 헨리 8세가 간통 혐의로 그녀를 참수형에 처하면서 막을 내렸다. 헨리는 그 이후로도 4명의 여성과 차례로 결혼했지만, 어떤 결혼도 해피엔딩은 되지 못했다.
얼마 전, 헨리 8세가 앤과의 열애로 불타오르던 시절의 러브레터가 공개되어 화제다. 지난 500여년간 바티칸이 보관하던 연서에는 마음을 뺏긴 여성 앞에 선 절대군주의 어쩔 줄 모르는 심경이 절절하다. 헨리는 “이제부터 내 심장은 당신만을 위해 뛸 것이고, 몸 또한 당신을 위해 존재하오”라는 달콤한 말도, ‘왕비’가 될 수 있다는 통 큰 제안도 서슴지 않았다. 앤 또한 “이 행복 안에서 지금 내 사랑이 변치 않길 바라요”라며 화답했다.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앤과 캐서린 모두 왕비의 권좌에 올랐지만, 구애기간이나 결혼 초기에만 사랑의 주도권을 쥐었을 뿐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 여성들의 삶의 굴레를 답습했다. 당시 가톨릭 교리의 가르침대로 여성은 “원죄의 창조자로서 남성을 유혹해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요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떠한 혐의를 받든 그녀들은 항변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녀들에겐 결혼반지가 행복한 가정생활의 시작을 약속하는 것이 아닌, 몸과 재산이 남편에게 소유된다는 단순한 증표에 불과했던 것이다. 캐서린이 눈을 감기 전 천사들이 꿈에 나타나 씌워준 월계관은 스스로 삶을 쟁취하라는 격려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일방적으로 귀속된 사랑은 그 빛을 잃기 십상이라는 것, 그녀들이 왕궁의 화려함 이면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진실이자 후세를 향한 조언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기사입력 2009.03.05 (목) 18:08, 최종수정 2009.03.05 (목)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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