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글로벌 쩐(錢)의 전쟁과 `좀비 증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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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쩐의 전쟁은 'S자'형 투자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이 이론은 사람의 성장 곡선에서 유래했다. 모든 제품은 시장점유율을 측정하지 않아도 서서히 틈새시장을 파고든다. 일단 소비자들에게 10% 정도 보급되면 급속히 퍼져나가 큰 줄기를 이룬다. 한 제품이 시장을 10% 차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후 90%를 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같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이 이론을 각국의 발전 단계에 적용하면 국민 1인당 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선진국은 중 · 장년기에,1000달러에서 3만달러에 속한 개도국과 선진 중진국은 청소년기에,1000달러 이하인 저개발국은 유아기에 해당한다. 투자의 3원칙인 수익성 · 안정성 · 환금성으로 볼 때 선진국은 안정성이 높으나 개도국은 이와 반대다.
미국의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동성이 워낙 풍부해 선진국과 개도국 자금 모두 환금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투자했다. 이 때문에 선진국 자금들은 높은 수익을 좇아 잉여자금은 펀드 형태로,잉여자금이 없을 때는 금리차이를 이용한 캐리자금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됐다.
또 개도국 자금도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았던 미국의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에 투자했다.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이를 개도국 자금이 메워주는 자금흐름 메커니즘이 잘 작동됐기 때문이다. 선순환 구도로 자산시장이 최대 수혜자가 됐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선진국 자금은 수익성을,개도국 자금은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투자함에 따라 글로벌 쩐의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개도국보다 선진국의 자산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우리를 비롯한 개도국들이 자국의 토종자본을 육성하고 세계적인 투자은행(IB) 만들기에 고심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선순환 구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심화되는 국제수지 불균형으로 미국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자 유가상승 등으로 과잉 축적된 중동 산유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저축분이 선진국 기업 인수와 같은 실물자산으로 투자 방향을 옮기면서부터다.
그 중에서 개도국 자본이 선진국의 기간산업을 인수함에 따라 선진국들은 경제 안보를 크게 위협당했다. 이 점이 2차 대전 이후 '세계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외쳤던 선진국이 모든 경제 현안을 자국의 주권 확보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제 애국주의'를 불러오는 가장 큰 요인이다.
최근에는 금융 분야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보호주의 움직임이 글로벌 쩐의 전쟁 구도를 악순환으로 바꿔 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금융 보호주의란 모기지 사태와 유가 급락 등으로 자금의 여유가 없어진 선진국과 개도국들이 자국의 자금을 움켜지는 과정에서 서로 '준다,못준다'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자국의 자금 회수를 놓고 벌이는 글로벌 쩐의 전쟁에서는 증시를 비롯한 자산시장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글로벌 자산가격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데다 이를 구제하기 위한 어떤 신호에도 좀처럼 반응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좀비 증시' 혹은 '좀비 경제' 논란으로 살아 있어도 죽은 시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다.
앞으로 세계증시와 경제가 지금의 좀비 국면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글로벌 쩐의 전쟁을 '악순환'에서 '선순환' 구도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세계 각국 간 배려와 협조를 통해 무너진 금융시스템과 시장의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물론 그때까지 시간은 오래 걸릴 것이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입력: 2009-03-08 18:15 / 수정: 2009-03-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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