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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기운 누르기 위해 심어…사찰과 300년 동고동락
성철 스님이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 취임 법어 중 한마디다. 이 법문으로 인해 사바세계는 시끄러웠다. 술집에서, 대학에서, 거리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중생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성철 스님의 흔적을 간직한 대구시 동구 중대동 파계사 성전암(聖殿庵)을 찾았다. 전나무를 만나보려 함이다. 파계사에 차를 세우고 성전암으로 오르는 길에는 생강나무가 이제 막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생강나무는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보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새, 딱새, 어치 등 산새들이 봄을 맞아 짝을 구하려는지 연거푸 울어대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니 성전암의 담벼락이 보인다. 그 앞에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 있는 전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전나무의 높이는 어림잡아 20m는 넘어 보인다. 강원도 월정사 전나무 숲에서 보던 전나무와는 달리 담장 아래 가파른 곳에 홀로 하늘을 벗 삼아 자리잡고 있으니 더욱 돋보인다. 전나무가 성전암 방향으로 조금 기울어 있는데, 넘어질 것에 대비해 반대 방향으로 쇠줄을 매어 두었다. 가파른 지형에 있지만 전나무는 줄기 아랫부분의 외과수술 자국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생육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대구시 자료에 따르면 수령은 300년이 넘었고 가슴높이 둘레는 360㎝ 정도다. 이곳의 전나무는 언제 심어졌을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 숙종때 성전암 터의 기(氣)가 너무 세어 기를 누를 목적으로 전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는 고사하고 남은 한 그루가 거목으로 자라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전나무와 동고동락한 성전암은 2년 전 화재를 입어 아직 보수를 하지 못한 채 가리개로 지붕을 덮어 놓았다. 성전암 주지 벽담 스님은 "원래 9칸이었는데 성철 스님이 5칸으로 줄였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올해 새롭게 단장을 한다고 한다. 이곳 성전암은 조선 영조의 탄생 설화와 관계가 있는 현응 스님이 창건한 절로 경북 3대 도량 중의 하나라고 한다. 또한 근현대 한국 불교의 선풍을 진작한 고봉·성철·법전 선사 등이 수행했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성철 스님의 이야기가 세간에 많이 전해진다. 성철 스님은 1955년 성전암으로 거처를 옮기고는 그 둘레에 철조망을 두르고 10년 동안 일절 바깥 출입을 삼가고 수많은 불경, 조사어록 등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전나무는 외부와 접촉을 끊고 수행하던 성철 스님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지난 세월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수행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전나무는 대구의 시목(市木)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대구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전나무는 이 나무가 유일하다. 전나무는 소나무과의 늘푸른 큰키나무로 젓나무라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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