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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듯 내려오는 투박한 곡선, 어디 이만한 곡선 있기나 할까, 세상에 곡/선/미/감 (제자: 一思 석용진)
갑자기 옹기 하나를 툭 깬다. 거무스레한 색깔. 검소하고 질박한 색감이다. "속이 이렇게 검어야 좋은 옹기 라요"하며 "강도가 셀수록 좋은데 요즘 것은 거의가 약하고 반질거리는 것이 광면단을 사용했다"며 불평이다. 흡사 오지그릇 흉내를 내 많은 옹기 좋아 하는 사람들이 납을 마시는 꼴이라는 것. 대갱불화(大羹不和). 대갱이 고깃국이니 고깃국에는 양념을 하지 않는 법. 질소한 생활로 담박한 삶을 즐기라는 '예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옹기인들 뭐 그리 현란하고 싶어 납덩이 광명단을 먹인 옹기가 시중을 휘어잡을까. 옻그릇도 아닌 것이. 그동안 흐드러지게 만들어 놓은 온갖 독들 사이를 조금은 느긋하게 걸으며 간혹 지그시 눈을 감는 옹기장. 한 때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제품으로 호구마저 위협받으며 그래도 지켜온 이 길이 스스로 대견해서일까. 아니면 이겨낸 그 한들이 지금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벅차올라서 일까. 자신의 손 때 자국 묻은 독들을 어르고 만지작거리는 동작이 아름답다. 지난날들의 추억을 되새김질해 주기라도 하는 듯. 박재삼이 읊었다.'추억(追憶)에서'.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전(生魚物廛)에는/ 바닷밑에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 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다가 손시리게 떨다가.// 진주(晋州) 남강(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달빛 받은 옹기를 상상해 본다. 장독대를 꽉 채워 나란히들 앉거나 옹기종기 모여 있을 키 크고 낮은, 주둥이 넓고 좁은, 펑펑하고 삐쭉한 옹기들. 젓독이며 장독, 시루에서 온갖 옹가지들. 그렇지만 옹기라면 무어니 해도 큰 장독이라야 그 맛이 제대로 평가된다. 지금 집집마다 된장, 고추장 익는 소리 들리면 그 옹기는 제대로 구워진 옹기. 위 아래는 약간 오목하고 가운데가 볼록한 옹기. 전통 옹기. 선사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쓰던 옹기. 옹기만큼 전통이 잘 보존된 것도 드물지 않는가. 간혹 옹기장들이 흙 띠를 곱게 나란히 두 개, 세 개 붙여 멋을 내거나 그 솜씨로 훑어내림이 미끈하면 멋은 더욱 멋들어진다. 당초문이나 고기 마리를 그리면 그건 훌륭한 옹기 캔버스. 화폭이 따로 없다. 그래서 옹기는 너무 반반해도 멋이 없다. 미역줄거리가 생겨야 제멋이다. 몇 날을 옹기굴에서 구운 후 또 몇 날을 식혀 윗부분과 가운데 볼록한 부분 근처에 파장이 이는 듯 멋드러진 미역줄기 곡선이 나타난다. 간혹 이 미역줄기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불속에서 자연히 나타나는 옹기의 특성이다. 이물질이 없다는 증거다. 잘 구워졌다는 흔적이다. 그런데. 비로소 미역줄기를 바탕에 그리는 그 허리의 둥그스럼한 곡선도 함께 눈에 든다. 아무렇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저 곡선. 손바닥으로 옹기의 아래쪽으로 쓸어보아도, 부둥켜안아 보아도, 손바닥과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 정겨움. '이게 우리 옹기다'라는 환희와 즐거움. 밋밋하기도 하고, 너무 평범해 곡선인가 싶지 않을 정도로 멋쩍기도 하지만 어디 이만한 곡선에 취할 곡선이 쉽게 있기나 할까. 세상에. 장맛 알맞게 들면 더욱 감칠 나게 손바닥으로 훑으며 취해 보는 옹기의 그 곡선미. 어찌 웰빙시대의 미래가치만 따질 일인가. 저렇게 아름다운 옹기단지의 저 곡선! 청송 가는 길에는 바람이 그날따라 유난했다. 사나웠다. 왜 그랬을까 궁금도 했지만 도시 그 원인 알리가 없다. 알아보았자 그 역시 바람 일 테지. 그저 세차게 불면 움츠리고, 그러다 잦아들면 고개 들어 봄 산천 둘러보려는데 그럴 때 마다 여지없이 바람은 허용을 않는다. 세상에 원 이런 날씨가 다 있을까. 원망스럽도록 거칠다. 직선이다. 귀청 따갑도록 들어 온 노무현-박연차이야기가 문득 떠올려 지지만 그럴 리가. 그들이 오늘 이 세찬 바람과 관련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폭풍 같은 바람은 여전히 불고. 유향(劉向)이 찬한 '신서(新序)'에 "폭풍 같은 바람도 그 힘이 쇠약해지면 털끝 하나 못 움직인다 (衝風之衰也不能起毛羽)"는데 아직은 힘이 있어 그러는 걸까. 무슨 힘? 대체 힘이란 뭘까.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은 '삼봉집(三峰集)'에서 "대저 힘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은(恩)은? 삼봉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어루만지는 것이니, 서로가 갚는 것이다"고 풀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사정을 둘러 볼만하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겼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어루만졌다. 서로 갚았다.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왜 이리 혼란스러울까. 다들 '삼봉집'을 거꾸로 읽은 것은 아닐까. 섬기고 어루만져도 끝없이 이어지는 부패스토리. 늘 다음 라운드를 기다려야 하는 생민의 가슴에는 생채기만 남는다. 부질없도록. 협찬 : 대구예술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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