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음악은 인문학이다 | ||||||||||
반그리스적 시대였던 중세에도 음악은 7개 교양학과 중에서 수학 4과(산수, 기하, 천문, 음악)의 하나로 수도원과 대학에서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과목이었다. 중세 지식인들은 음악을 지적 인식의 학문으로 가르쳤지만, 음악이 진리 탐구의 영역을 넘어 인간을 善(선)으로 향하게 하는 윤리적 힘을 가진다고 믿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음악과 문학은 서로를 동경해 왔다. 사람들은 흔히 감동적인 음악에 ‘시적’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마음을 홀린 한 편의 문학작품에는 ‘음악’이라는 찬사를 바쳐왔다. 음악과 문학은 기본 질료인 소리, 언어에서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둘 다 청각 이미지에 호소하는 것으로, 음악은 악보라는 음악 문자로 기록되어지고 문학은 다의적이기 때문에 多聲的(다성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음악은 문학과 마찬가지로 묘사와 서술로 이루어진다. 보고 느낀 것을 그림 그리듯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사실을 구체적인 소리로 말한다. 형식과 논리적 구성을 앞세우는 고전주의에서, 자기 고백적인 낭만과 감각적 극적 구성이 뚜렷한 후기 낭만을 거쳐, 형식을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늘 문학사조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왔다. 문학은 늘 음악의 텍스트가 되어왔으며 반대로 음악이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되거나 음악의 구조가 문학작품의 형식 원리로 변환되기도 했다. 최초의 음악이 바람소리, 물소리, 숲의 소리였다면 최초의 문학인 시도 이런 자연의 속삭임이었다. 또한 음악 속에 존재하는 소리의 울림이 문학에서도 리듬과 감동의 여운으로 존재한다. 문학이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이듯 음악 역시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이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유토피아적 성격을 띠고 있긴 하지만 기쁨과 슬픔, 비탄, 공포, 우울, 분노, 신경질, 질투, 오만, 유머, 익살, 변덕, 우아함과 발칙함, 수다스러움까지 삶의 온갖 모습을 그려낸다. 소박한 선율의 민요에서 최소 30분 이상 소요되는 화려한 콘체르토나 교향곡까지, 나른한 권태에서 번뜩이는 직관까지, 이 모든 것들이 삶을 이야기하고 논의하는 것들이다. 그동안 문학과 문학인들의 역사적 사회적 역할은 강조되어 왔지만 음악과 음악인들에 대한 역할은 무시되거나 한낱 정서적 차원의 것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음악을 예능으로, 연주자들을 재주 있는 단순한 예능인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니체의 초인 차라투스트라는 슈트라우스의 교향시에 의해 더 쉽게 이해되고 해석되어졌으며, 실제로 게르만 전설과 영웅신화는 베토벤과 바그너의 극음악을 거쳐 히틀러에 이르러서는 정치적 현실로 재현되었다. 세계적인 문예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음악은 사회적이다'라는 책에서 음악이 수행하는 역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다양한 문화를 통합해 사회를 보다 세련시키는 음악의 사회적 맥락에 주목하였다. 최근 내 것, 우리 것을 강조하고 숭배하는 분위기에 맞물려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클래식 음악에 대해 ‘유통기한이 다한 음악’이니 ‘제국 음악’이니 ‘죽은 서양 귀신의 관을 떠메고 다닌다’는 등의 거센 비판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일찍이 서구의 허구를 알아차린 서양 지식인들이 동양 정신에 열광하는 것이나, 동양인들이 서구를 동경하고 서양음악에 대해 심취하는 것이야말로 충분히 납득 가능한 동일 현상이 아닌가. 문화다원주의 시대에 무조건적 서양 비판이야말로 편견과 왜곡으로 가득 찬 옥시덴탈리즘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 서영처(시인)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09년 05월 2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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