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베이컨 - 배 위의 풍경을 좋아 하세요? 그림 여행
2009/06/09 15:11 http://blog.naver.com/dkseon00/140069557414 |
그림을 보다가 답답한 경우가 있습니다. 작가 이야기가 재미 있어서 그의 작품을 찾다 보면 작품을 구하기
어렵거나, 작품이 좋아서 작가 이야기를 찾다 보면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정도의 기록만 달랑 남아 있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남겨 놓은 작품에 비해 작가 이야기가 아주 빈약한 사람 중의 한 명이 지금 소개할
미국 화가 헨리 베이컨(Henry Bacon / 1839~1912)입니다.
세느강을 따라서 Along the Seine
맨 발에 커다란 키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처녀 뱃사공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니군요. 아무리 봐도 배의 높이가 너무 높아 다리를 지나기 어려울 것 같은데 --- 그만 따지기로
했습니다. 강물에 흔들거리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울 것 같은
얼굴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를 알아?’
누가 안다고 했습니까 --- 그런데요, 흔들린다고, 흘러 간다고, 운다고 달라 진 것들이 있던가요?
베이컨은 메사추세츠주 신시네티에서 태어났습니다. 보통 화가들은 어려서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는 기록이
많은데 베이컨에 대한 그런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태어날 때부터 화가는 아니었다’라는 말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태어날 때 손에 붓을 들고 태어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집중해! Pay Attention / 41.28cm x 33.02cm
모두들 간절하게 머리를 숙여 기도를 하는데 아이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앉아 있을 때는 그나마
참을 만 했는데 어른들이 모두 일어서자 갑자기 절벽 속에 갇힌 기분이겠지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한참
기도 중인 아빠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라파엘라, 기도할 때는 정신을 집중해야지. 부스럭거리면 되겠니?’
‘나는 기도할 것이 없는데 ---‘
‘무슨 소리야. 사람들은 일주일마다 그 동안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거야’
‘난 정말 없는데 ---‘
여보세요, 아저씨. 천사가 죄 짓는 것 보셨습니까?
저 나이의 아이들이 천사인 걸 모르는 사람은 그들 부모들 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베이컨을 화가가 아니라 군인으로서 처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시 특이한 경력입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베이컨은 22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합니다. 자료에 따라서는 징집으로도, 지원으로도 되어 있어서
어떤 것이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그가 화가의 재능을 꽃 피우기 시작한 것은 전쟁터였습니다.
우물에서 At the Well / 48.26cm x 71.12cm
물을 길러 오면서 빵 한 조각을 가져다가 풀 밭에 내려 놓았습니다. 계절로 봐서는 굳이 빵을 주지 않아도
새들이 굶주릴 것 같지는 않은데 아마 여인이 오랜 기간 동안 새들을 불러 모은 것 같습니다. 적막한 생활
속에서 저렇게 새들이라도 가까이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겠지요. 그런데 그림 속 새들을 보니까 빵을
먹는 새와 옆에서 그 것을 지켜보는 새가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질서이겠지요. 새로부터도 배워야 할 것이
있는 지금 세상입니다.
베이컨은 전쟁터에서 주간 레슬리 (Lesilie’s Weekly)에 실릴 스케치를 그렸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종군
화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족한 자료의 행간을 뒤져보면 입대 전에 어떤 형태로던가
베이컨이 미술관련 교육을 받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림이 필요하다고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에트르따 해변 Beach at Etretat / 45.72cm x 55.25cm / 1881
에트르따는 노르망디에 있는 작은 해안 도시 이름입니다. 에트르따는 쿠르베와 모네와 같은 화가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화가들 사이에는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해변에서 몸을 큰 수건으로 감고 들어 오는 여인을 보다가 해변가에 가면 볼 수 있는 요즘의 탈의장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샌달 끈을 묶어 주는 여인의 손 끝에 정성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아가씨, 돈 많이 벌어서 언젠가는 탈의장 속 여인처럼 누구엔가 발을 내밀어야지?
됐거든요. 저는 돈 많이 벌어도 제 신발끈은 제가 묶을 거예요. 신발 끈을 묶다 보면 각오도 함께 묶게
되거든요.
그러나 베이컨의 군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년 반 만에 심한 부상을 입고 제대를 하게 된 것이죠.
군에서 제대 후 얼마 있다가 엘리자베스 로드라는 보스턴 출신의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1864년, 25세의
나이로 베이컨은 아내와 함께 파리로 가는 배에 몸을 싣습니다.
에트르따 Etretat / 60cm x 50cm / 1890
햇볕이 좋은 날 동네 여인들이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는지 제 머리로는 알 수 가 없습니다.
빨래하는 모습인가요? 바닷물로? 혹시 배에 걸리는 돛을 빠는 것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옆에 보따리에 담아
온 것을 보면 그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궁금증만 잔뜩 키워놓고 여인들 웃음 소리가 눈부시게 빛나는
건너편 벽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에트르따를 다녀 온 분들이 올려준 사진을 보면 정말 근사하더군요. 그림 속 절벽의 건너편에는 코끼리
바위가 있는데 모네의 작품이 몇 점 있습니다. 참고로 아래 그림은 모네가 그린 에트르따입니다.
에트르따 / 모네
파리에 도착한 베이컨은 에콜 드 보자르에 입학해서 처음 카바넬의 지도를 받게 되는데 에콜 드 보자르에
처음으로 입학이 허용된 미국 화가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 것을 보면 이미 이 때 그의 실력이 좋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나중에는 에두아르 프레르의 지도를 받는데 프레르는 바로 다음에 소개할 까 합니다.
아이들을 묘사한 프레레의 그림이 아주 따뜻하거든요.
갑판 위 On shipboard / 48.9cm x 72.39cm / 1877
큰 바다를 건너는 배의 갑판 풍경입니다. 멀미가 심한지 한 여인은 눕고 말았습니다. 옆의 남자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배에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고수’임이 분명합니다. 몇 명의 여인들은 고리 던지기 놀이에 열중입니다. 4개를 던져 1개가
들어간 걸 보면 실력은 별로 인 것 같습니다. 그건 제 생각이 아니고 고리를 내려다보는 아이의 생각입니다.
나도 좀 끼어주지 ---
오른 쪽 여인은 멀미보다 몸이 아픈 것 같습니다. 옆에 놓인 컵을 보면 약을 먹고 난 뒤의 모습인 것
같은데, 좋아지겠지요.
파리에서 거주하는 동안 베이컨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프랑스 아카데미 화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베이컨은
특이한 작품 내용의 구성이라든가 삽화의 여백을 정리하는 크래핑 기법을 여러 가지로 실험하고 적용합니다.
그의 주요 주제는 교외의 풍경 속에 녹아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베이컨은 노르망디 해변가
사람들의 삶을 많이 그렸는데 그가 명성을 얻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됩니다.
뉴욕에 도착하는 배 위의 스코틀랜드 여인 (뉴욕 항을 떠나며)
A Scottish Lady on A Boat Arriving In New York (The Departure from New York Harbor)
그림을 보다가 이렇게 상반된 제목이 달린 작품은 처음 만납니다. 물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새로운
어디론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가끔 공항이나 항구에 가서 출발하는 곳과 도착하는 곳이 위 아래든,
옆으로든 나란히 있는 것을 보면 떠나는 것과 돌아 오는 것이 그렇게 다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주 떠 나는 것은 자주 돌아 온다는 말과 같은 것 아닐까요? 사랑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림을 드려보다 저는 이 여인이 떠난 배를 탔다는데 손을 들기로 했습니다. 손에 든 손수건 그리고
의자에 놓인 꽃 다발과 갑 판 위에 떨어진 장미 한 송이 ---–
갑판 위를 지나 뒤 쪽으로 날리는 연기는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여인의 속마음이겠지요.
베이컨은 파리의 살롱에 빈번하게 작품을 출품하고 전시되는 화가 중의 한 명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의 작품의 또 다른 주제는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었습니다. 그 것이 역사적인 내용이든 풍부한 상상력에
의한 것이든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인가에 대해 끝없이
노력했습니다.
출발 The Departure / 72.39cm x 50.80cm / 1879
불어오는 바람이 여인의 손에 들린 스카프를 거칠게 날리고 있고 높아진 파도는 돛을 내린 배를 기우뚱
거리게 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면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일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사는 것도 그와 같겠지요. 뱃전에 몸을 기대고 이제 어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배야 좀 흔들리겠지만 깊어진 생각에 몸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얼굴에는 두려움과 슬픔이 떠 오르고 있습니다. 가방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꽃다발 --- 섣부른 각오만
아니면 그 슬픔을 이겨내는 것은 꽃다발을 던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베이컨의 작품에는 여객선의 갑판을 묘사한 작품이 많습니다. 아마 베이컨 자신이 여행 경험이 많았기 때문
인 듯싶은데, 어쨌거나 이 주제는 파리와 미국 양 쪽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림 속 뱃전의
풍경이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데는 베이컨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살핌 Romantic observations / 75cm x 51cm / 1880
오랜 시간 배를 타고 여행을 하면 없는 사랑도 생길 것 같다고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배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일종의 연대감 같은 것이 생기겠지요. 거기에 콧수염도 근사하고
단추도 몇 개 풀고 있는 마도로스가 호의를 보인다면 적어도 여인에게 그 여행은 아주 낭만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인의 시선은 망원경을 통해 바다로 나갔지만 남자의 시선은 여인의 얼굴에 고정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요 ---, 왠지 ‘프로’ 느낌이 들지 않으신지요? 입에 살짝 걸린 미소나 약간 거슴츠레 한
눈이 좀, 그래 보입니다. 망원경이 뭐 무겁다고 들어주고 --, 제가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시는 가요?
파리에서 대부분 작가 생활을 한 베이컨이었지만 여행을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런던, 그리스, 이태리, 이집트와 같은 다양한 지역이 등장합니다. 한편 베이컨은 유화에서 수채화로 표현
방법을 바꾸는데 이 것이 또한 그에게 많은 명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배를 끌어 당기다 Hauling a Ship / 51.44cm x 77.47cm / 1887
항구가 아닌 곳에 정박한 배를 뭍으로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선착장이 없으니까 배를 묶을 곳이 없고,
그래서 간밤에 밀려 오는 바닷물에 떠내려가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별 수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서
배를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아마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이겠지요. 삶은 어딜 가도 이렇게 치열합니다.
몸과 마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이 그래도 배를 끄는 힘이
됩니다. 혹시 저 뒤에 배가 넘어질 까봐 등을 대고 있는 노인이 보이시는지요?
코엘류에 책에 있던 이야기이던가요 --- 아침에 나와 같이 일어나서 하루 종일 만신창이가 되고 저녁이면
죽어버리지만 다음 날 다시 살아 나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 이름이 희망이라던가요?
몸이 불편 했던 베이컨은 말년에 10년 가까이 추위를 피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매년 겨울을 나곤 했습니다.
1912년 73세의 나이로 베이컨은 카이로에서 건강 문제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한 명은 엔지니어였고 또 다른 한 명은 뉴욕에서 발간되는 신문의 편집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을
따르지는 않았군요.
이집트 피라미드 Egyptian Pyramids / watercolor over graphite / 1897
1900년 카르낙 신전의 오벨리스크 Obelisk-Karnak in 1900 / watercolor over graphite / 1900
헨리 베이컨의 자료가 많지 않은 이유는 그가 오랜 기간 동안 파리에서 생활했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베이컨 선생님에게 위로가 될 지 모르겠지만 ‘화가는 그림으로 이야기 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속 살을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랍니다.
베이컨 선생님, 동의 하시는지요?
[출처] 헨리 베이컨 - 배 위의 풍경을 좋아 하세요?|작성자 레스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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