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여성] 에드워드 호퍼―뉴욕영화관
넘쳐나는 물질·사람 화려한 도시 속 개인의 고독
2009061100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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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이는 영화관. 뒤통수만 보이는 사람들은 침묵을 지킨 채 오직 스크린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유일한 공간. 상영관 입구엔 한 여성이 벽에 기대어 무언가 골똘히 상념에 잠겨 있다. 잘 손질된 머릿결, 좋은 소재의 드레스와 고급스러워 보이는 백과 구두. 한껏 치장하고 외출한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은 너무도 고독하게 홀로 단절되어 있다. 같은 공간임에도 기묘하고 영화 같은 화면구성으로 여인과 관중을 분리해 보여주며 화려한 도시 속 개인의 고독을 농축해 보여준 마술사는 20세기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화가로 손꼽히는 에드워드 호퍼다.
1882년 뉴욕에서 태어난 호퍼는 산업화와 1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을 겪은 미국의 모습을 담담하게 화폭에 담았다. 그의 작품에선 도시라는 공간에 숨겨진 에너지와 힘, 생동감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 늘 작품의 주인공이었건만 거리 속에서, 상점가에서, 집 안에서의 그들은 불안, 고독, 적막, 공허, 쓸쓸함에 푹 잠겨 있다. 호퍼의 작품세계는 보는 이들마다 호, 불호가 비교적 명확하다. 그렇지만 호퍼의 작품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도, 답답하거나 음산하다고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그림이 읊조리고 있는 ‘현대인의 고독’에 대해선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도시에 살아본 누구든 경험해 본 낯설지 않은 감정일 테니.
호퍼가 그린 세상에서 한 세기가 지났다. 그때보다 우리네 삶은 더 편리해졌고 더 풍요로워졌다. 통신수단이 발달해 언제 어디서든 연락이 닿을 수 있고, 원한다면 어디든 떠날 수 있다. 개인 역시 다양한 조직의 수레바퀴에 소속되어 매일 수많은 이들과 마주치며 산다. 거리와 상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넘쳐나는 물질, 넘쳐나는 사람이 오히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겐 역설적인 마음의 빈곤을 가져온 모양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코쿤 족’, ‘글루미 족’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최근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까지 맞물리면서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젠 더 이상 커피숍이나 영화관에서 홀로 노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홀로 떠나는 여행상품도 늘어나고, 고깃집에서도 홀로 식사할 수 있도록 바형 테이블을 도입하는 등 ‘1인용 상품’들도 발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통제 가능한 우울을 감성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 일부러 쓸쓸해지고, 그런 쓸쓸함을 세련되게 즐기려는 사람들. 이들의 ‘혼자 되기’를 두고 바쁘고 복잡한 일상과 팍팍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 유행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시간,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을 더 사랑하는, 평온함을 되찾고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들 한다.
뉴욕영화관에서 고독에 잠겨 있던 그녀도, 어쩌면 우리보다 한 세기 전에 이렇게 ‘혼자 되기’의 진수를 경험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영화관을 나선 뒤 얼마나 홀가분하고 행복해졌을지는 의문이다. 예쁘게 치장해도, 화려한 영화관에 와도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지 못하고 혹시나 혼자 되기의 가장 큰 위험인, 외로움과 절망을 깊이 껴안아 버리진 않았을지. 그녀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며, 우리 주변에 하나 둘 늘어가는 ‘혼자 되기’ 움직임이 고독과 외로움으로 흔들리는 현대인의 불안과 방황의 자화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 기사입력 2009.06.11 (목) 18:43, 최종수정 2009.06.11 (목)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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