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로서의 교동도
교동은 지정학적 가치가 충분한 대신 고려시대부터 최적의 유배지가 되었다. 정쟁에서 패한 인물은 서울에서 먼곳으로 보냈으나 정말로 제거해야 될 인물, 늘 동정을 살필 필요가 있는 인물은 견고하면서도 수도로부터 가깝고 안전하고 주민들과도 격리된 곳에 두는 것이 좋았다. 교동은 수도에서 이틀 정도의 거리이고 바다로 둘러 싸여 있고 막상 해안과의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조류가 빠르기 때문에 유배지로 적정한 곳이었다.
교동도에 유배된 역사인물 ○ 희종(1181-1237) - 고려 21대왕. 최충헌에 의해 1211년 왕위를 쫓겨나 처음 강화에 유배되고 1215년 자연도 (영종도)를 거쳐 교동에 유배된 후 복위운동 펼치다 1227년 다시 교동에 유배되어 사망. ○ 안평대군(1418-1513) - 세종의 3남 1453년 계유정란때에 세조에 의해 아들 우직과 함께 교동으로 유배되어 사사됨 ○ 임해군(1574-1609) - 선조의 첫째 서자 608년 광해군에 의해 처음 진도로 유배되고 다시 교동으로 옮겼다가 1609년 사사됨. ○ 광해군(1575-1641) - 인조반정(1623)에 의해 폐위되어 처음 강화도에 유폐됨. 1624년 이괄의 난때 태안으로 옮겼다 가 난이 평정되자 강화도로 다시 데려옴. 1636년 청나라가 쳐들어와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고 하자 다시 보내졌다가 1641년 제주도에서 사망 ○ 능창대군 - 조선조 선조의 손자이며 인조의 동생 능창군 추대사건인 신경희의 옥사사건으로 광해군에 의해 1615년 교동에 안치 된후 사형. ○ 숭선군 - 인조의 5남 1651년의 무고로 1652년 처음 강화에 안치되었다가 다시 교동으로 안치되었다가 1656년 석방됨 ○ 익평군 - 철종의 사촌으로 헌종12년(1847) 교동에 유배됨. ○ 이준용(1870-1917) - 흥선대원군의 손자, 고종의 조카 1895년 법무 현판 김학우의 피살사건에 연루되어 교동에 유배되었다가 2개월만에 석방. ○ 민영준, 민형식(1875-1947) - 을사오적 암살 계획이 발견되어 1896년 2월, 교동에 유배
#.1 교동도의 이름모를 문인석
#.2 새마을운동때 변화의 물길을 피해 일동 집합한 교동비석군(兼府使 善政碑)
#.3 교동향교 하마비
#.4 교동향교 내삼문을 지나 대성전으로 가자.
#.5 제자리를 잃고 향교에 있는 노룡암비
#.6 교려말 말 문신 목은 이색의 독서처인 화개사
#.7 조선 연산군과 폐비 신씨를 모신 부근당
#.8 폐비신씨 앞에 있는 여인상이 애처로운 감정을 자아낸다.
#.9 교동부지 안해루 석주
#.10 상상의 길로 가는 길
#.11 연산군 적거지(철종잠저소).... (교동에 연산군이 2개월간 위리안치를 당하고 학질에 걸려 승하한 장소로 추정하는 곳이 3곳이 있다.)
#.12 교동부지 남문
#.13 교동부지 홍예문의 아름다움
#.14 교동도 동진나루... 이곳으로 통해 인천, 서울로 가는 정거장이 아닐까?
#.15 삼도수군통어영지 남선포구
#.16 남선포구에서 바라본 일몰
#.17 교동부지에 안해루 석주... 2개는 교동초등학교에 있다.
#.18 화개산 연산골의 연산군 유배지(고구리)
#.19 교동도 한증막
#.20 화개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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