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월] 서양화가 장태묵 "살아있는 풍경은 가슴으로 그려야죠" | ||||||||||||||||
장태묵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45년을 살아오는 동안 그림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그의 재능을 알아본 미술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그를 가르쳤다. 고교 시절엔 묘사를 좋아했고, 1학년 때부터 졸업 때까지 미술부장을 했다. 장태묵은 사실적인 그림에 탁월했다. 정물과 인물 등 본 것이라면 그대로 그려냈다. 마치 세밀화를 보는 듯했다. 1991년부터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실내의 탁자 위에 모델처럼 서 있는 정물이 아니라 자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살고 있는 것들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개울을 찾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풍경, 영감을 주는 풍경을 찾기 위해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경기도 양평의 집까지 걸어서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찾은 곳은 집 앞의 개울이었다. 그에게 충격 혹은 영감을 주는 풍경은 절해고도의 어떤 장소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주변의 소박한 풍경이었던 것이다. 장태묵은 그 개울을 열심히 그렸다. 이쪽에서도 보고, 저쪽에서도 보았다. 해 뜨는 아침, 해 지는 저녁, 구름이 밀려오는 오후, 부슬비 내리는 아침 등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일 뿐이었다. 애써 그린 그림은 그가 그토록 익숙했던 ‘탁자 위의 정물’이나 다름 아니었다. 다만 장소와 소재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나무와 풀을 그렸는데 감동이 없었고, 강물을 그렸는데 출렁대지 않았고, 발이 젖지도 않았다. 거기에는 바람소리도 풀 냄새도 없었다. “미칠 지경이었죠.” 죽은 그림을 그리던 장태묵은 눈을 감기로 했다.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느끼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해가 지고난 뒤 개울에 나가 귀를 기울였다. 물을 보는 대신 물소리를 들었고,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는 대신 바람에 살갗을 맡겼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그림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고 강물에 발이 젖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나무와 풀, 물을 그린다. 특히 물에 비치는 나무를 자주 그린다. 물에 비친 나무는 자연의 나무 그대로가 아니라, 작가의 심상을 반영한 나무다. 땅에 서있는 나무, 그러니까 물에 어른거리는 나무의 실제 형상은 화폭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이 여백은 관객들이 상상을 동원해 완성해야 할 부분이다. 장태묵이 그림에 액자를 하지 않는 까닭 역시 그림을 ‘종결형’이 아니라 ‘진행형’으로 두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 선 관객은 상하 좌우를 마음대로 이동하며 상상할 수 있다. 장태묵을 만난 것은 구름이 깔리고, 안개가 끼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안개 자욱한 폐교 운동장(경북 칠곡군 석적읍 양지 연수원)을 바라보면서 그는 “이런 날은 강가로 가야 해요”라고 했다. 강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날씨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는 빛에 따라 자연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한때는 그림이란 물감을 갖고 그리는 것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문득 자연이란 햇볕을 받아 빛나는 보석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가 유난히 날씨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날씨에 따라 자연의 풍경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여러 가지 모습을 받아들여 그 역시 여러 가지 자연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태묵은 십수년 동안 경북의 풍경을 그렸다. 1990년대 중반 지인을 만나러 안동에 자주 가곤했는데 그때 어느 장소의 풍경에 반한 것이다.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섞여 자라는 곳이었고, 개울이 있는 장소였다. 그 장소는 볼 때마다 달랐다. 날씨에 따라, 바람에 따라 물그림자가 달랐다. 그가 나무와 물에 몰입하고 고집하는 계기가 된 장소였다. “나는 자연만큼 경이로운 무엇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누구를 만나거나 헤어지는 것에 구애되지 않습니다. 오는 인연을 맞이하고 가는 인연을 보냅니다. 그림 소재 역시 그렇습니다. 한때 내 마음 가까이 왔다가 멀어진 것들은 많습니다. 왔다가 떠나는 것들에 대해 어떤 아쉬움을 가진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이라는 인연은 한번 맺으니 점점 빠져들게 되더군요. 한발 한발 더 깊이 들여놓을수록 경이롭습니다.” 경북 지역을 자주 다니면서 다시 눈으로 보는 버릇이 도졌다. 순간 마주친 풍경을 놓치기 아까워 언제부터인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충격적인 풍경을 만나면 카메라에 담을 궁리부터 했어요. 그러나 인화해서 보면 조금도 감흥이 없더라고요. 카메라에 담느라 가슴에 담지 못한 것이지요. 어떤 풍경과 마주하던 순간의 충격을 가슴이 간직해야 하는데, 사진에 남아 있는 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지만, 감흥이 없는 풍경이더군요. 그 속에서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요.” 사진을 보고 그리면 잘 그릴 수는 있었으나 살아있는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날 장태묵은 카메라를 버렸다. 눈으로 보는 대신 다시 귀와 가슴으로 자연 앞에 섰던 것이다. 장태묵은 말했다. ‘뿌리로부터 나오는 수액은 나를 통하고, 나의 눈으로 전달된다. 때때로 나는 나 자신이 나무의 줄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부서지고 흔들리면서 나의 비전을 작품에 쏟는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10년 01월 2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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