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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신비 "그곳에서 원시의 희망을 품다"…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낚아채는 순간 이곳이 아프리카란 사실을 잊게 한다 그리고 거침없는 파도와 바다 앞에서 당당히 도전하고픈 용기가 불쑥 솟는다
◇ 우뚝솟은 봉우리인 줄 알았는데… 가이드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들은 필자는 희망봉을 만날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희망봉은 아마 산꼭대기에 우뚝 솟은 희망의 봉우리 같은 것이리라 기대했죠. 하지만 아프리카 희망봉을 찾아 나선 여정에서 필자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바로 그곳은 봉우리가 아닌 평평한 해변가, 바로 곶(cape)이었습니다. 사실 이곳은 배가 처음으로 들어와 닻을 내린 곳으로, 영어로는 'Cape of Good Hope(희망의 곶)'라고 표기됩니다. 한국어로 정확히 번역을 하면 '희망봉'이 아니라 '희망곶'이란 이름이 더 적합하죠. 이름 때문에 잠깐 혼돈스럽긴 했지만, 육지에서 보는 희망봉 일대는 그 이름에 걸맞게 희망과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거친 듯 하면서도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신비롭고 빼어난 경관에, 잘 보전된 환경으로 인해 자연의 순수한 생명력까지 맛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죠. ◇ 깎아지른 절벽아래 푸른 대서양 희망봉에 이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립공원 주차장 입구에는 두 갈래로 길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먼저 언덕 위에 위치한 등대로 올라가는 길과 희망봉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해발 200m 언덕 위 절벽에 자리잡고 있는 등대에 오르면, 거의 삼면으로 돌아가며 넓게 트여진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보이는 넓고 푸른 바다는 대서양이란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희망봉이 아프리카의 최남단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이곳을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의 최남단 지점은 이곳으로부터 약 160㎞ 떨어진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라는 곳입니다. 건조하게 내리쬐던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바다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차가운 바람에 의해 곧 잊어집니다. 이번엔 등대를 뒤로 하고, 희망봉을 향해 내리막길을 거침없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해안선을 옆으로 끼고 깎아지를 듯 솟아 있는 절벽을 따라, 둘이서 오붓이 손을 잡고 지나갈 수 있을 만한 너비의 트레킹 코스가 30여 분 동안 펼쳐집니다. 주위에 이름 모를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남아프리카에서만 자생하는 프로티어(Protea), 에리카(Erica) 등 히스(heath·황야에 자생하는 상록 관목)류의 상록 관목들과 레스티오(Restio)라 불리는 갈대류의 골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춤추며 물결을 이룹니다. 저 멀리서 일런드(Eland·아프리카산 큰 영양)가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보다 평화로운 광경은 다시 없을 듯 싶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낚아채 버려서 이 곳이 아프리카란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이곳에서 장시간 햇살에 노출되었다간 화상을 입기 십상입니다. 햇볕을 피해 잠시 쉬어갈 그늘을 찾아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지만, 파란 하늘 아래 탁 트인 관목지대와 그 너머로 까마득한 절벽 아래 일렁이는 대서양 푸른 바다만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런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거칠고 광활한 바다와 개발되지 않은 원초적인 자연의 품안에서 이 한 몸 존재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대륙의 끝자락까지 내려와 거침없이 탁 트인 대양을 마주하고 서니, 자신감이 피어오르고 용기가 불뚝 솟아납니다. 부딪쳐서 깨지더라도, 과감히 도전하고픈 욕구가 생겨납니다. ◇ 다람쥐며 몽구스가 불쑥불쑥 오르락 내리락, 쉼없이 구불구불 이어지던 길도 이제는 서서히 저지대로 향합니다. 저 멀리서 해조류와 함께 일렁이는 바다와 해변이 보입니다. 아마도 저곳이 그렇게 가보기를 고대했던 '희망봉'인가 봅니다.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 내며, 얼마 남지 않은 길을 재촉합니다. 그때! 지나가는 행인을 응원이라도 하듯, 바위 틈새로 순식간에 다가와 얼굴을 불쑥 내미는 이가 있습니다. '아이, 깜짝이야!' 귀여운 다람쥐와 고양이를 반쯤 섞어 놓은 듯한 자그마한 동물 한 마리가 필자에게로 가까이 접근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몽구스 한 마리가 필자를 무슨 신기한 생물체를 발견한 마냥, 빼꼼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나 봅니다. 이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사람과 조화를 이루며, 말 그대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끊임없이 대면하게 됩니다. 흐뭇한 생각에,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집니다. 몽구스의 응원 덕에 희망봉을 향한 여정이 잘 마무리 된 듯 합니다. ◇ 인종과 언어를 넘어 하나로… 드디어 필자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에 발을 디딥니다. 'Cape of Good Hope-The most south-western point of the African continent(희망의 곶-아프리카 대륙의 최서남단 지점)'이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다지 특별한 바가 없어 보이는 이곳이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와 유럽 근대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세계사의 한 무대를 장식한 곳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을 만큼 이 곳은 여느 바닷가 해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평범해 보입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유럽인들에게는 '희망을 향해 진취적으로 내딛는 도약의 발걸음'이 되어 주었을 이 희망봉의 발견이,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이 땅의 진정한 주인, 아프리카인들에겐 '폭풍을 향해 나아가는 험난한 항해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희망봉의 발견으로 인해 후에 험난한 부침과 질곡의 역사를 겪었을 아프리카인들의 고통이 손에 만져질듯 자세히 전해져 옵니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독립을 쟁취하고 자신들의 땅과 나라를 되찾은 이들은 이제 인종간의 갈등을 접고 더 큰 세계를 향해 포효하며, 새로운 희망을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희망봉에 선 필자는 오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납니다. 피부색이 검디 검은 건장한 한 흑인 청년, 금발의 아리따운 외모를 한 여자 친구와 함께 유머러스하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인상적이던 백인 커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노란 피부에 동글납작한 외모를 한 필자도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의 실타래를 하나 둘씩 풀어 공통의 이야기를 엮어갑니다. 인종차별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은 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제는 하나 둘씩 인종과 언어를 넘어선 우정과 화해가 피어나는 걸 느낍니다. 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 필자는 이렇게 눈부신 빛과 희망 한 줄기를 발견합니다. (외국항공사 승무원) ohyeri@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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