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기행] <1> 람세스 2세·이시스 신전
불멸의 파라오·여신들의 땅… 시간이 멈춰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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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0003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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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불멸’을 유산으로 간직해온 땅 이집트.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제일 먼저 상징적으로 꼽히는 그 땅. 수많은 관광객이 거쳐간 그곳을 새삼스럽게 소개하는 이유는 누천년의 시공을 간단히 무너뜨리며 티끌처럼 살다가는 우리에게 늘 감동과 비원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목요일자 이 지면에 격주로 4회에 걸쳐 이집트 고대문명 답사 에세이를 사진과 함께 싣는다.
◇아부심벨의 람세스 신전. 20미터가 넘는 4명의 람세스가 거대한 사암 절벽 앞에 앉아 있고 가운데로 신들을 모신 전당의 동굴 문이 뚫려 있다. 이집트를 가장 넓고 강력하게 장악했던 파라오 중의 하나인 람세스 2세는 3000여년 전 생전에 이 신전을 건립해 ‘기’를 얻었다. 1997년 국내에도 소개되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집트, 그중에서도 3000년 전에 살았던 람세스2세라는 파라오를 21세기 사이버 공간 인기 검색 1순위에 올려놓았던 소설 ‘람세스’의 ‘카’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카’란 육신을 빚어낸 영혼의 조각품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카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무덤에 머물면서 시신 곁을 지킨다고 믿었고, 그 시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무덤의 온갖 부장품들은 바로 이 ‘카’를 위한 것이었다.
뜬금없이 솟아난 거대한 모래언덕쯤으로 생각했는데, 그 언덕을 돌아들자 끝없이 펼쳐진 푸른 호수가 나타난다. 나세르가 나일강을 막아 아스완하이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나세르 호수’인 모양인데, 람세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호수를 끼고 다시 언덕을 지나자 아침 햇빛에 붉게 빛나는 거대한 사암 덩어리가 보인다. 그 사암 절벽 앞에서 근엄하게, 자애롭게, 혹은 쓸쓸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20미터가 넘는 3명의 파라오가 나일강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동일인물인 람세스 2세의 좌상이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신전 좌상 옆에 세워놓을 정도로 끔찍이 사랑한 왕비 네페르타리.
금세기 인류가 되살려낸 람세스 2세. 그 3000년 전 파라오가 우리에게 대체 무엇이기에 그 많은 국가가 참여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감내한 것일까. 그가 대단해서라기보다는 누천년의 시간을 이겨낸 경이 그 자체에 대한 존경과 슬픔 때문은 아닐는지, 그날 나세르 호수 푸른 물 곁에서 생각했었다.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운 얼굴을 보니, 이집트의 파라오라는 존재는 단순히 고대 문명기의 ‘왕’ 차원을 넘어서는, 신의 대리인답게 모든 품행을 조율해야 했던 대단한 이상적 존재였다는 실감이 왔다. 그래서였을까.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 신전, 사암 절벽에 앉아 있는 람세스의 카들이 짓고 있는 표정은 비슷하지만 모두 달랐다. 근엄하고 자애롭고 쓸쓸한…. 한 명의 람세스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 파괴된 상태여서 표정은커녕 자태조차 남아 있지 않다. 람세스 생전에 지진으로 이미 무너졌을 것이라는 추측만 남아 있다.
람세스2세는 100여명의 자녀들을 남겼지만 평생 한 여인 ‘네페르타리’라는 왕비만큼은 끔찍이 사랑했던 모양이다. 모든 신성문자 기록에 이 여인이 공식으로 등장하고, 심지어 아부심벨 람세스 신전 곁에 이 왕비를 위한 작은 신전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람세스 좌상 다리 곁에 그네가 작은 형상으로 서 있고, 왕비의 신전 앞에는 람세스와 그네 입상 곁에 아들딸들이 작은 부조로 서 있다. 사랑이 넘치는 가족사진의 화석 같다. 엄청난 권력을 쥐었을 파라오라도, 생애 결국 하나만 남을 여인과 자식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3000년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중요한 가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람세스 신전 안에 들어서면 ‘오시리스’ 형상으로 변한 파라오가 열을 지어 지성소를 향해 서 있다. 지성소에는 파라오를 비롯한 4명의 신들이 앉아 있는데 연중 2월 20일, 10월 20일 오전 5시58분부터 20분 동안 이들 중 어둠의 신 ‘프타’를 제외한 3명에게 빛을 드리운다니 고대의 건축 설계가 신비할 따름이다.
◇사랑과 부활의 여신 이시스 신전 제2탑문 앞에 관광객들이 서 있다.
붉은 사암 언덕을 돌아서 다시 아스완 시내까지 하얀 사막을 관통하여 나왔다. 나루터로 버스가 간다. 필레 섬의 이시스 여신을 만나러가는 여정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필레의 이시스가 아니다. 부활과 사랑의 상징인 그 여신도 1904년 영국 식민지 시절 아스완댐이 건설되면서 1년 내내 물에 감겼고 8월에만 반짝 여신의 신전 윤곽을 조각배 위에서 볼 수 있었을 뿐이다. 다시 나세르가 아스완하이댐을 건설하면서 아예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것을 다국적 연합으로 150미터 북쪽의 레젤리카 섬으로 해체해서 옮겨 조립했다.
◇암소의 두 뿔 사이로 태양을 관처럼 이고 서 있는 하토르 여신. 이시스 여신과 종종 동일시된다.
첫날 내린 곳은 카이로였지만, 그곳에서는 잠시 잠만 잤을 뿐 우리의 여정은 이집트 남부 ‘누비아’ 지역에서부터 배를 타고 나일강 하류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다. 유물이나 사람 조형물을 대할 때마다 갤러리에서 현대 미술품을 감상하는 느낌이었는데, 그것들은 ‘간단히’ 3000년 혹은 5000년 전의 것이어서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다시 눈을 크게 떠야 했고 만져보고 싶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0년을 넘기지 못하는 현생 인류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체, 시간이란, 흐르지만 흐르지 않는 신비한 그 무엇이었다.
나일강의 나룻배에서 내려 섬에 오르자 이시스 신전의 첫 탑문이 열주들 사이에서 선명한 그림을 몸에 새긴 채 객들을 맞는다. 그 그림이란 ‘하토르’(암소 형상이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 사이에 태양을 인 관을 쓰고 있다)신이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에게 무언가 헌정하는 장면이다. 이시스와 하토르를 종종 같은 존재로 헛갈리는 게 수많은 신전의 그림인데, 그들이 사랑과 기쁨과 부활의 여신인 것만은 분명하게 같다.
나일의 작은 섬을 돌아나가는데 아스완 댐과 푸른 강물과 코발트블루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백인 여성이 길게 드러눕듯이 기대 앉아 담배를 피우는 중이다. 붉고 노란 꽃들이 그네를 감싸고 있다.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랑의 여신 집에 누워 그네는 어떤 찰나의 사랑으로 저리 번민하는지. 두고 온 이들이 그리웠다.
아스완=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 기사입력 2010.03.10 (수) 23:04, 최종수정 2010.03.11 (목)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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