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5> 산성도시 몬테풀치아노-산조베세 와인
‘제우스의 피’ 토스카나를 풍요로운 대지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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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생리학’을 출간하면서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고 설파한 장 브리야 사바랭의 주장에 따라 만약에 어떤 사람이 김치, 막걸리, 비빔밥을 먹고 마신다면 그는 한국인임이 틀림없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빵과 와인 그리고 스테이크를 먹고 마신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그는 토스카나 출신일 게다. 그렇다면 토스카나는 어떤 땅인가. 토스카나인들에게 빵과 와인 그리고 스테이크는 어떤 의미일까.
◇몬테풀치아노 성 입구에서 깃발을 들고 손님을 맞이하는 촌부들.
영화 속 토스카나의 풍광은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다. 토스카나는 상처를 보듬고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로 그려진다. 또한 사랑에 버림받은 여인의 가슴에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불법 체류자에게도 고향 같은 구수함을 선사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런 정서는 모두가 바라는 것이라서 국적을 불문하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복판이 따뜻해짐을 느껴질 것이다. 드넓은 대지 위에 뾰족하게 자라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새벽에 송로버섯을 캐러 다니는 촌부의 일상이 한편의 수채화처럼 잔잔하게 그려진 아름다운 이 영화의 배경은 몬테풀치아노. 아주 오래된 작은 구릉 도시이다.
영화에서 특히 깃발 돌리기는 볼 만하다. 오래된 전통놀이인 깃발 행사를 통해 청년들은 마을을 지키는 책임감을 느끼며 그들의 체력과 용기를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몬테풀치아노인들의 빵과 와인 그리고 스테이크의 의미를 통해 토스카나인들의 삶을 논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이들의 생활이 토스카나의 전형성과 토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뉴문’ 포스터와 의상을 판매하는 상점 진열대.
몬테풀치아노 농민들은 하나같이 밀로 빵을,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소를 키워 스테이크를 만든다. 그들은 빵을 만들 때 소금을 넣지 않는다. 저장 음식인 프로슈토(돼지다리를 염장하여 건조시킨 것)나 살시체(전통 소세지)가 염분이 있기 때문에 빵에까지 소금을 넣을 필요가 없다. 소 품종은 키아니나. 이는 흰 종자인데, 타종보다 몸집이 커서 고기와 가죽이 많이 나온다. 토스카나의 스테이크는 아주 유명하다. 한 덩어리가 보통 2㎏이 넘고, 두께가 12∼15㎝나 된다. 티본 스테이크를 연상하면 되나, 거구 키아니나에서 나온 거라 보통보다 두께가 더 두꺼운 것이다.
스테이크를 토스카나에서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라고 한다. ‘피렌체식 스테이크’란 뜻이다. 요리하는 방법은 숯불에 올리는 것이다. 겉을 바싹 익혀 탄 듯이 보이지만, 새빨간 속은 그대로 유지되게 굽는다. 표면은 까맣게 보이지만 속은 미디엄 레어나 레어 수준으로 즐긴다. ‘뉴요커’ 기자 출신의 빌 버퍼드가 쓴 ‘앗 뜨거워’에는 이런 스테이크가 토스카나인들의 영혼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양조장 폰토디의 오너 조반니 마네티는 점점 사라져 가는 키아니나를 정성스럽게 키우면서도 와인의 품질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 실력자로 묘사된다. 육즙이 흥건한 접시에서 고기를 건져 입에 물고, 거기다가 레드 와인까지 곁들인 그 입에서 읊어 나오는 단테의 지옥편 구절은 인문학 산책이 아니라 섬뜩한 괴기영화 같을 수 있으나, 토스카나를 이해한다면 그건 바로 토스카나의 생활 예찬이 된다.
몬테풀치아노의 포도는 산조베세. 이는 ‘제우스의 피’라는 뜻이다. 토스카나 전역에서 재배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품종으로 인근 지방인 에밀리아 로마냐, 움브리아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품종이다. 그러니 이탈리아 반도 전역이 죄다 제우스의 피로 물든 땅인 것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피를 통해 반도 전체를 풍요로운 대지로 변모시켰다.
◇수백년 됨 직한 돌집과 목가적인 토스카나의 풍경. 뾰족하게 솟은 나무가 토스카나에 널리 분포하는 키프로스 나무.
선홍색 스테이크와 레드 와인의 고장 몬테풀치아노가 흡혈귀 영화의 로케로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큰 성공을 거둔 영화 ‘트와일라잇’의 2편 ‘뉴문’에서 선량한 흡혈귀들의 본향으로 몬테풀치아노가 뽑혔다. 여기에서는 레드 와인만 만들기에 흡혈귀 영화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흡혈귀를 추방한 날을 기념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붉은 옷으로 무장한 채 행진하는 모습 말이다. 흡혈귀를 쫓아낸 기념으로 걸친 붉은 가운에는 몬테풀치아노의 산조베세, 즉 제우스의 힘이 응축돼 있는 것 같다. 로마 이전 시대의 에트루리아 유적이 도처에 널려 마치 동면에 걸린 고대 박물관 같은 몬테풀치아노는 수천 년을 산다는 영화 속 흡혈귀의 고향으로도 딱 맞다.
◆추천 관광지
몬테풀치아니는 중세의 탁월한 인문학자 안젤로 암브로지니를 배출했다. 그의 필명은 폴리차노. 그는 메디치 가문의 선생이었으며, 메디치의 부탁으로 미켈란젤로의 가정교사도 했다. 폴리차노는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했는데,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카페는 그의 이름을 따서 폴리차노(www.caffepoliziano.it)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이곳은 1868년부터 당대의 철학자, 문학가들의 사교장소로 유명하다.
또한 폴리차노 양조장(www.carlettipoliziano.com)이 있다. 그의 시를 사랑하는 양조장 주인이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양조장 보스카렐리(www.poderiboscarelli.com)와 함께 몬테풀치아노 최고의 양조장으로 꼽힌다. 이들의 와인은 20년이 지나도 뻣뻣한 구조를 유지하며 깊은 맛과 온화한 질감을 준다. 아내를 위해 선물을 산다면 마제티(www.rameria.com) 가문이 5대째 운영하는 구리 수공예점에 들리면 좋다. 여기에서는 순구리를 전통 방식으로 두들겨 프라이팬이나 전골냄비 등을 만든다. 토속 음식을 즐기려면 아콰케타(www.acquacheta.eu)로 가자. 카페, 마제티, 식당 모두 몬테풀치아노의 중심 광장 피아차 그란데에서 도보로 1∼2분 거리에 있다. 아콰케타는 스테이크가 유명하며, 제철 재료로 올리는 파스타는 언제 먹어도 맛깔스럽다. 감자튀김보다 굵은 둥근 면발에 각종 고기로 다진 소스를 얹은 파스타 ‘피치 알 라구’는 꼭 맛보길 권한다. 구수한 고기 냄새가 하루 종일 골목 구석 구석에서 피어 오른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니스트(‘올댓와인’ 저자)
- 기사입력 2010.04.14 (수) 21:51, 최종수정 2010.04.14 (수)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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