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진 기자의 冊갈피] 곤충학자 파브르와 김진일 교수의 100년 만의 조우
곤충학자 파브르와 김진일 교수의 100년 만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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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나온 각 송충이가 지나가고 또 지나가면서 매번 실을 남겨 놓는 것은 둥지로 되돌아올 때 쉽게 찾아올 목적으로 남긴 표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표지라면 리본 하나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실의 용도는 아마도 둥지를 더 튼튼하게 하는, 즉 좀더 두터운 기초를 만들어 주고, 둥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수많은 줄로 묶어 주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새카만 머리에 몸통은 아름다운 장밋빛의 개미붙이 애벌레는 꺼멓게 변한 꿀 창고를 비집어서 여는 것 같다. 노동철에는 성충도 주홍색 바탕에 파란 장식으로 치장하고 땅속의 꿀떡 표면에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저기 갈라진 꿀통에서 새는 꿀을 핥으러 천천히 돌아다니는 것이다.”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과학자였던 장 앙리 파브르의 ‘곤충기’의 일부다. 파브르가 곤충학자이기에 그의 책은 곤충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루하게 나열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책은 이외에도 살아있는 먹이를 절묘하게 마취시켜 끝까지 신선도를 유지해 애벌레에게 먹이는 배벌, 뒤집힌 채 누워서 등으로 걷는 꽃무지굼벵이, 미장이벌의 집에 알을 낳는 가위벌살이가위벌의 둥지뺏기, 입 대신 원뿔 모양의 흡반으로 먹이를 빨아들이는 우단재니등에를 관찰한 이야기가 장편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곤충학의 바이블로 통하는 ‘파브르 곤충기’는 파브르가 56세 때인 1879년 제1권을 내고 꼭 30년 후인 1909년 10권까지 집필했다. 원문만 2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파브르는 이후에도 펜을 놓지 않고 11권을 준비하다 92세에 타계한다.
파브르가 연구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곤충 이외에도 절지동물, 척추·무척추동물, 식물, 하등식물 등 1500종이 넘는다. 평생 관찰하고, 평생 연구하고, 평생 집필한 것이다. 이쯤 하면 파브르가 위대한 과학자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파브르 곤충기’ 원전 탄생 100년 만에 혼자 전10권을 완역한 김진일(68) 성신여대 명예교수다. 번역에만 3년, 편집과정 4년 등 총 7년의 여정이었다.
“한국 사람 치고 ‘파브르 곤충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로 아는 내용은 원문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꼭 원문 그대로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김 명예교수가 밝힌 완역 이유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곤충기’는 대부분 어린이를 위해 흥미 위주로 골라 엮은 발췌본이거나 일어·영어 중역본이었다. 원본을 한 줄도 빼놓지 않고 완역한 것은 그가 이번에 내놓은 ‘파브르 곤충기’(장 앙리 파브르 지음, 김진일 옮김, 정수일 그림, 이원규 그림, 현암사)가 처음이다.
국내 최고의 분류학자이자 일반곤충학자인 김 교수는 파브르의 대학 후배다. 파브르가 졸업한 프랑스 몽펠리에 2대학에서 곤충학 박사학위를 받고 40년 넘게 곤충을 연구했다. 번역하면서 파브르의 오류(틀리거나 바뀐 학명)와 오판도 일일이 주석에서 밝혔다. 물론 미완성본인 11권도 포함됐다. 명실공히 ‘파브르 곤충기’의 완성본인 셈이다.
100년이라는 시차를 둔 두 거인 곤충학자의 아름다운 만남이자 풍성한 결실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기사입력 2010.03.05 (금) 17:03, 최종수정 2010.03.05 (금)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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