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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방콕<세계일보>'방콕' 활기 넘치는 황금빛

눌재상주사랑 2010. 6. 19. 02:38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방콕<세계일보>
'방콕' 활기 넘치는 황금빛 도시
  • 방콕을 찾은 여행자는 모든 것을 그저 즐긴다. 지도를 들고선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동그라미를 치지도 않으며 쇼핑에 눈을 반짝이지도 않으며 무엇을 먹어야겠다고 식당을 찾아가는 일도 별로 없다. 사실 계획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방콕으로 갈 때까지 세운 계획은 모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라지고, 그저 방콕에 몸을 던진 채 즐긴다. 어느 곳에 있든 눈에 들어오는 황금빛 사원을 바라보며 걷다가, 세계 각국에서 찾아든 여행자의 기운에 덩달아 흥분해 무엇에도 아랑곳없이 신나게 소리치고 웃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출발·도착 알리는 카오산 로드

    ◇세계 각국에서 찾아든 여행자들로 언제나 활기찬 카오산 로드.
    복잡하고 시끄러운 방콕에선 뚝뚝이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신나게 구경하며 달리다 보면 정신을 잃고 있었던 듯 금세 하루가 간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이 활기 넘치는 황금빛 도시로 모여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처음 달려간 곳은 왕궁. 입구로 들어서면 황금빛 탑인 프라씨 라따나쩨디를 제일 먼저 보게 된다. 스리랑카 양식의 범종인데 안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지만 공개되지는 않는다. 그저 온통 황금빛이라는 것에 놀랄 뿐이다. 그리고 왕궁과 함께 그 옆의 라마 1세 때 만들어진 왕실 사원인 왓 프라깨우를 둘러보게 되는데 어느 곳에 가든 그 화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황금과 에메랄드로 장식된 건물 사이에서 햇살을 받고 있자면 눈이 부실 정도. 그중에서도 왕실의 도서관으로 쓰였던 프라몬돕은 현재 불교 서적을 보관 중이라는데 그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황금빛 프라씨 라따나 쩨디가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왕궁.
    그리고 방콕의 많은 사원 중에서도 태국 동전에 새겨져 있는 왓 아룬으로 간다. 차오프라야 강변에 있는데 3분 정도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야만 사원에 닿을 수 있다. 탑은 도자기 조각이 붙여져 있어 다른 사원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햇살엔 색색으로 빛난다. 그리고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무서움을 물리치고 가파르기 이를 데 없는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탑 위에서 해지는 아름다운 방콕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여행객들은 모두 카오산 로드로 모여든다. 400m 정도 되는 카오산 로드는 여행자의 베이스캠프로 불릴 정도로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붐빈다. 낮에도 북적이는 곳이지만 밤에 더욱 활기를 찾으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 숙소와 편리한 교통편 비롯해 태국 문화를 알 수 있는 시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국의 여행자들은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더 즐거워한다. 게다가 태국 여행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이 카오산 로드엔 언제나 시작하는 자의 설렘과 흥분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자의 아쉬움이 난무한다. 그러니 밤은 늘 길게 이어져 아무도 불을 끌 생각을 않는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늘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거리에서 우린 휘황찬란한 밤을 즐긴다.

    물건을 실은 배들은 하나의 상점

    방콕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진 랏차부리.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 운하엔 수상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낡고 작은 가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문을 열면 바로 발 앞에 초록을 머금은 황토 빛 물줄기가 흐른다. 그러니 이 물 위의 마을에선 누구든 배를 타고 움직인다. 그래서 커다란 나무 둥치 같은 집마다 나무배가 한 척씩 매어져 있다.

    ◇왕실의 도서관으로 쓰였다는 프라몬돕.
    새벽 다섯 시, 나무배를 타고 마치 산동네의 골목을 돌아보듯 좁은 수로를 여기저기 둘러본다.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한 안개를 헤치는 동안 집들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멀어졌다 불쑥 눈앞으로 다가온다. 가끔 과일과 채소를 실은 배가 지나가지만 안개 속에서 소리없이 흘러왔다 흘러가니 마치 꿈결 같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의 표정엔 아스라함이 묻어 있다. 고단함과 단호함이 섞인 듯한, 그래서 안개 속으로 들어가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러나 해가 뜨자 금세 안개가 걷히고 여기저기서 배들이 흘러나와 북적이기 시작한다. 열대 과일을 실은 배, 채소를 실은 배, 음료수를 실은 배, 기념품을 실은 배…. 점점 많은 배들이 나와 수로를 가득 채워 빽빽해지니 그때부터 물 위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시끄러워진다. 물 위의 삶이니 물건을 실은 배들은 하나의 상점이 되는 셈이다.

    그렇게 이곳의 수로는 금세 담넌 싸두악 수상시장이 된다. 한곳에 머물며 국수를 말아 팔거나 바나나를 튀겨 파는 이들도 있고 과일이나 채소, 생선을 싣고 물 위를 흘러다니며 장사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 사이로 배를 타고 구경을 하는 여행자들까지 모여드니 수로는 장사진을 이루는데, 다리 위에서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배들은 그 복잡한 수로에서 절대로 부딪치지 않는다. 물에서 태어나 물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들인 것이다.

    사람들은 배 위에서 물건을 사고판다. 손이 닿지 않으면 상인들은 긴 막대기에 망이 달린, 잠자리채처럼 생긴 막대를 이용해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상인들은 자신의 물건을 필요한 물건으로 맞바꾸기도 한다. 여행객은 배 위에 앉아 배 위에서 직접 튀기는 바나나 튀김, 코코넛 팬케이크, 코코넛 주스, 그리고 망고스팀 같은 과일을 사먹고 기념품을 사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면서 상인들과 인사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현지인들의 삶은 그곳의 시장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다더니, 수상가옥 사람들의 삶은 수상시장에서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아침이면 상인과 여행객을 태운 배들로 북적이는 담넌 싸두악 수상시장.
    한 소녀가 배 한 가득 꽃을 싣고 와 판다. 몇몇 상인들이 배를 몰고 다가와 소녀에게서 꽃을 산다. 상인들은 뱃머리에 그 꽃을 올리며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다. 오이와 파프리카를 파는 배에도, 장신구를 파는 배에도, 모자를 파는 배에도 싱싱한 꽃이 놓인다. 이곳 수상시장에서 뱃머리에 꽃을 올리지 않는 배는 없다. 태국 사람들은 늘 집에도 차에도 배에도 꽃을 올리며 두 손 모아 아침을 시작한다.

    매일 시작되는 아침인데도 우린 매일같이 다짐을 하고 기도를 하며 산다. 비록 저녁이면 잊힐 다짐이라 해도 바란 만큼 이루어진 게 없는 기도라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담넌 싸두악 사람들은 아침마다 뱃머리에 꽃을 놓는 것이다. 그렇게 바람의 연속인 곤궁한 삶이 뜨겁고 아름다워 보이는 아침이다.

    오래도록 주저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소녀가 꽃을 내민다. 안 사겠다고 하자, 선물이란다. 

    시인·여행작가

    〉〉 가 볼만한 곳

    방콕에서 버스를 타고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다. 방콕 남부터미널에서 버스로 두 시간을 가면 되는데, 중요한 것은 시장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오전 10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건을 가득 실은 배들이 수로를 가득 채울 만큼 나와 활발하게 움직이며 북적이는 것은 오전 시간이기 때문이다. 방콕에서 칸차나부리로 가는 여행자라면 그곳에 머물며 다녀오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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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목) 21:58, 최종수정 2010.05.13 (목)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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