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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베토벤 숨결 담은 오스트리아 와인<세계일보>

눌재 2011. 6. 28. 18:59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1> 베토벤 숨결 담은 오스트리아 와인<세계일보>
  • 입력 2010.07.07 (수) 22:15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首都가 품은 드넓은‘포도밭 정원’에서 귀 멀어가는 樂聖, 와인 한 모금으로 시름을 잊다
  • 오스트리아 와인업계에서 월드컵 축구대회 못지않게 의미 있는 축구대회 비비눔컵의 승리가 처음으로 국제 기자단에게 돌아갔다. 지난 6월 초 빈의 한 천연 잔디 경기장에서 벌어진 친선대회에서 외국 기자팀이 오스트리아 와인 메이커팀을 꺾었다. 격년제로 치르는 와인 박람회 비비눔(VieVinum)은 오스트리아 와인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국가 즉 이탈리아·헝가리·슬로베니아 와인까지 맛볼 수 있는 자리로 프랑스의 ‘비넥스포’, 이탈리아의 ‘비니탈리’, 독일의 ‘프로바인’ 같은 와인 전시회다.

    ◇포도밭 누스베륵(Nussberg)에서 바라본 비엔나 시내 전경. 사진제공 Credit AWMB, Gerhard Elze.
    # 베토벤의 숨결이 남아 있는 빈의 호이리겐


    둥근 공 자블라니를 둥근 몸매로 이러 저리 굴리는 수준이었지만 선수들의 눈매에는 정열이 끓었다. 시합이 아무리 중해도 중년들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언제나 먹고 마시는 자리다. 어디로 가야 할까. 장소는 당연히 호이리겐이다. 빈에서 뒤풀이 장소로 이만 한 데가 없다. 호이리겐은 외형상 와인 선술집 비슷하지만, 전년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신선한 와인 혹은 그 와인을 마시는 장소를 뜻한다. 호이리겐으로 가자는 말은 곧 회식하러 가자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 호이리겐은 양조장이며 연회장이요 그리고 와인바인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와인 마케팅 보드(AWMB)는 매년 세계 와인 관계자들을 초대해 자국 와인을 홍보하는 조직이다. 그들은 빈이 수백 년간 유럽의 중심이었던 사실을 방문자들에게 깨닫게 하는 재주가 있다. 매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내용으로 행사를 준비하며 호이리겐에서의 디너 계획도 그들이 준비한다.

    빈은 유럽 국가 중에서 드물게 수도에서도 본격적으로 와인이 생산된다. 그냥 포도로 만든 게 아니라 원산지 ‘빈’을 표시하는 품질 와인이다. 시내에서 이십리 떨어진 곳에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멋진 경관이 아닐 수 없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에서 강남역 사거리나 수유리까지의 거리인데, 거기에 700ha(약 200만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83%에 해당) 넘는 포도밭이 조성됐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또한 그 포도밭에서 무명의 벌크 와인이 아니라, 전통과 역사가 담긴 고품질 와인이 나온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축구 뒤풀이는 노이스티프트 마을의 호이리겐 푸어가슬-후버(www.fuhrgassl-huber.at)에서 열렸다. 널찍한 건물과 뒷동산까지 모두 이용하면 한번에 1000명의 연회도 가능하다고 한다. 빈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합스부르크 시대부터 호이리겐은 수많은 유럽 관광객들로 붐볐을 터라 그 정도의 규모가 필요할만도 하겠다.

    ◇베토벤이 거주했던 호이리겐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의 입구로 그는 여기서 천상의 소리를 재현한 합창교향곡을 만들었다. 
    사진제공 Credit Meyer am Pfarrplatz
    호이리겐 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하일리겐슈타트 마을의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Mayer am Pfarrplatz, www.pfarrplatz.at)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이유는 베토벤(사진)이 이곳에서 잠시 거주했기 때문이다. 빈 여러 곳을 옮겨다닌 관계로 베토벤 하우스는 유일무이하지 않지만, 호이리겐으로는 이게 유일하다. 베토벤은 마을에 있던 온천에서 쉼을 얻었으며, 귀가 점점 멀어져 가는 아픔을 삭이며 작곡에 몰두했다고 한다. 이 마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그는 전원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바로 이 호이리겐에서 불세출의 교향곡 ‘합창’을 작업했다. 청음이 곤란한 상태인데도 어쩌면 그토록 천상의 소리 같은 곡을 지었던 것일까. 베토벤은 독일 태생이지만, 하이든의 제자 시절부터 빈의 인물로 성장했기에 빈 사람들은 그를 자국인으로 여긴다.

    ‘합창’은 1824년 완성됐는데, 베토벤이 마이어 암 파르플라츠에 기거한 때는 1817년 여름이었다. 그는 호이리겐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포도밭이 있고, 음악이 있고, 풍성한 먹거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고 여긴 주민들에 의해 그는 또 다른 집을 찾아 떠나야 했다. 

    ◇호이리겐에서는 늘 이런 풍악이 흥겹고 경쾌하게 분위기를 이끈다.
    사진제공 Credit AWMB, Anna Stocher
    호이리겐은 언제나 떠들썩함이 매력이다. 옛날에는 소시지 장수가 호이리겐에 들어와 소시지를 팔았지만, 이제는 호이리겐이 다 만들어 판다. 다만 떠돌이 아코디언 연주자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경쾌한 음악은 변함없다. 음식은 뷔페식인데 특별히 주문하면 코스 요리도 가능하다. 슈니첼(송아지 고기에 밀가루를 입혀 튀긴 음식으로 돈가스와 모양이 흡사), 소시지, 훈제된 돼지 다리, 감자 샐러드 등이 나온다.

    호이리겐을 즐기는 방법은 격식을 던지는 것이다. 더운 날 호이리겐으로 피서 겸 회식을 하러 갈 때에는 스프리처를 만들어 먹는다. 와인은 와인만을 즐겨야지, 무엇을 첨가하면 예의가 아니라거나 와인은 으레 다리가 긴 잔에 따라야 제 맛이라고만 여기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호이리겐 풍경은 와인 매너가 전혀 없게 보일지 모르겠다. 스프리처 먹는 게 무슨 와인 문화냐 할 지 몰라도 문화는 생활의 총화이니 와인 문화는 보이는 대로다. 틀에 박힌 게 아니다. 현실인 것이다.

    스프리처는 화이트 와인에 소다수나 거품이 나는 물을 반반씩 섞어 소시지, 치즈, 빵과 함께 먹는다. 도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마시기에 부담이 없으니 이를 ‘레이디 스프리처’라고도 한다. 두꺼운 유리 잔을 부딪쳐가며 스트레스를 내던진다. 베토벤 하우스 호이리겐에서는 베토벤이라고 써 놓은 큰 오크통에 수도 꼭지를 연결해서 유리병에 와인을 담아낸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AWMB의 책임자 빌리 클린거가 약식으로 비비눔컵 시상식을 마련했다. 우승한 기자단을 앞에 세우며 그는 “우리 오스트리아 와인메이커들이 기자단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함으로써 대망의 와인 마케팅에 성공했노라”고 외쳤다. 좌중에는 폭소가 넘쳤고 기자들 역시 유쾌하게 웃었다. 만약 와인 메이커들이 승리했다면 그는 아마도 ‘기자단이 오스트리아 와인 기사를 준비하느라 제대로 훈련을 못 했기 때문’이라고 능청을 떨었을 것이다.

    ◇와인박람회 비비눔이 열리는 궁전 호프부륵.
    # 빈 와인(Wiener Wein 독어식 표현)


    빈 포도원에는 그뤼너 벨트리너, 리슬링, 바이쓰부르군더, 샤르도네 등의 화이트 와인뿐 아니라 레드 와인도 양조하는데 특이한 점은 비너 게미슈터 잣츠(Wiener Gemischter Satz)라는 방식이다. ‘빈의 게미슈터 잣츠’라는 말은 여러 종류의 포도를 공동으로 심고 따고 즙을 짜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종류의 포도를 섞어 만드니 당연히 와인의 향기와 맛에서 여러 가지 맛이 난다. 이 전통적인 생산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행된다. 빈 와인은 정해진 면적 내에서만 생산되고, 빈 시민들뿐 아니라 관광객들이 마시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빈의 문화적 기운이 농축되어 있기에 와인을 살 때에는 이 모든 걸 다 감안해서 지불해야 하므로 값이 아주 싸지는 않다.

    # 추천-빈 시내에서 멋진 밤을 보내는 방법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김소희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킴코흐트(www.kimkocht.at)’에서 밤이 늦도록 정찬을 즐기는 유로피안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간단히 요기만 하고 와인바로 옮겨 와인으로 4차까지 가보는 코리안 방법이 있다.

    ◇마이늘 와인카페.
    한국식 옮겨다니기로 저녁을 보내려면 1차는 바인앤코(www.weinco.at)를 찾는 것이 좋다. 체인망으로 구성된 바인앤코 지점망 중에서 슈테판 성당 바로 맞은편을 들러보자. 문을 열고 왼쪽으로 돌면 와인숍, 오른쪽은 레스토랑이다. 와인을 사서 2유로만 내면 자리에 앉아 마실 수 있다. 2차로는 금요일 밤 물 좋기로 소문난 스카이 카페(www.skybar.at)를 가볼 만하다. 슈테플 백화점 꼭대기에 있으며 슈테판 성당 지붕을 입체적으로 관망할 수 있다. 3차는 하스 하우스의 오닉스 바(www.doco.com)로 가자. 바로크식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빈틈이 없는 빈 중심 케안트너 거리에서 유별난 현대적 모양의 하스 하우스는 슈테판 성당과 마주 보고 있지만 묘하게도 서로 잘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4차는 마이늘. 율리우스 마이늘(www.meinl.at)은 비엔나에서 가장 럭셔리한 슈퍼마켓으로 타워 팰리스의 스타 슈퍼를 연상시킨다. 마이늘의 지하 와인바는 오크통으로 장식된 목재 인테리어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화려했던 네 번의 와인 바 순례를 마무리하기에 좋다. 와인 선물을 살 생각이라면 슈테판 성당의 마차 정거장으로 가자. 빈 최고의 와인숍, 비노테크 상크트 슈테판(www.vinothek1.at)을 찾기 위해서는 와인 향기뿐 아니라 말똥 냄새에도 친숙해져야 한다. 여기에는 오스트리아산뿐 아니라 다양한 수입 와인들도 갖추고 있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