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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3> 로마네 콩티

눌재 2011. 6. 28. 19:04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13> 로마네 콩티<세계일보>
  • 입력 2010.08.04 (수) 22:32, 수정 2010.08.04 (수) 22:51  
             한 병 값이 숙성년도따라 수천만원까지…세계에서 가장 비싼 ‘명품와인의 전설’
  • 경기 침체의 혹독한 시련의 비 사이로 왔다갔다하면서 비를 피하는 신비로운 와인 로마네 콩티는 와인 세계에서는 최고가 와인으로, 럭셔리 와인의 상징이다. 낱 병 하나가 이미 자동차 값을 넘어섰으니 말이다. 점과 선으로 유명한 화가 이우환의 세 자녀가 부모 결혼 기념 선물로 바친 로마네 콩티 1990년산 한 병. 세 자매는 부모님의 진주혼식을 위해 가진 돈을 몽땅 털었다. 와인 심미주의자인 이우환은 그 와인을 받아 들고는 그 정성에 감복한 나머지 도저히 그 병을 딸 수 없었다고 그의 저서 ‘시간의 여울’에서 고백한 바 있다. 세상에서 가장 열망하는 와인을 하나 꼽으라면 누구라도 서슴없이 로마네 콩티(Romanee-Conti)를 꼽을 것이다.

    ◇지하 숙성고에서 익어가고 있는 2008 빈티지 와인들.
    그 맛의 특징은 벨벳, 고혹, 미스터리로 요약된다. 비단 같은 질감은 벨벳에 해당되고, 장미꽃 이파리 같은 신선한 식물성 내음은 고혹적이다. 향과 맛이 도대체 몇 가지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포도밭과는 사뭇 다른 특유의 우아함과 세련됨이 대체 어디서 비롯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로마네 콩티 2008로 채워진 오크통. 모두 11통이 만들어졌다.
    와인 기행이야 가을이 최적기이지만, 부르고뉴만큼은 2월에 방문하는 게 좋다. 양조장에 있는 통마다 전년에 담근 와인들이 가득 들어 있어, 통을 차례로 돌면서 한 모금씩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봄이 되면 병입 처리를 하기 때문에 시음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부르고뉴 와인 생산자들은 같은 포도라도 밭에 따라서 다른 와인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한 양조장에 적게는 열 가지, 많으면 스무 가지 이상 와인을 만든다. 그러니 각각의 와인 수량은 보통 몇 백병에서 몇 천병 밖에 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찾아 드는 와인 저널리스트들에게 병입된 와인을 시음하게 해서는 와인이 남아나질 않는 것이다.

    지금이야 어쨌든 거금을 들이면 구할 수 있지만, 이전에는 왕자만이 마실 수 있었다. 왕자의 밭이었으니 말이다.
    ◇지하 프라이빗 셀러에서 잠자고 있는 로마네 콩티.
    애호가들이 부르고뉴를 여행할 때에는 누구나 로마네 콩티의 포도밭을 찾는다. 양조장은 무척 폐쇄적이라 발을 들이기도 어렵지만, 포도밭은 그냥 밭이니 관심만 있다면 언제나 찾을 수 있다. 본 로마네 마을 바로 뒤편에 위치한 이 밭을 찾는 일은 아주 쉽다. 언제나 사람들이 그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설사 날이 궂어 사람들이 없더라도 돌십자가를 찾으면 된다. 멀리서도 금방 눈에 들어오니 밭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로마네 콩티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2002 로마네 콩티.
    신동와인 제공
    “피노 누아 100%로 만든 것이다”, “그랑 크뤼 포도밭이다”, “제일 비싸다”, “비오디나미(Bio-Dynamie) 방식으로 포도밭을 가꾼다” 등등…. 하지만 그들은 애석하게도 맛에 대해서는 모른다. 맛을 보지 않았으나 그 밭에 가보는 일은 쉽고, 그 와인의 정보를 얻기는 쉬운 세상이다.

    지구상 최고의 와인 맛을 찾는 여행은 이런 특별한 혜택을 느끼는 일이다. 그러니 설레는 마음으로 본 로마네 마을에 당도했다고 한다면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양조장 앞에 서면 놀랄 것이다. 평범한 외양, 너무도 보통 양조장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 철문이 있고, 그 왼편 돌벽에 작은 초인종을 누르면 주식회사 로마네 콩티와 연결된다.

    오너의 성격과 태도는 건물 외양과 비슷하다. 오베르 드 빌렌(71)은 겸손하다. 잡지 ‘디캔터’가 ‘2010 올해의 인물’로 그를 선정하려 했을 때, 디캔터 담당자들은 혹시 그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나 고심했다고 할 정도다. 자신을 그저 ‘로마네 콩티의 한 시대를 책임 맡은 청지기’라 여기는 그는 포도밭을 귀중히 여겨 화학 약품이나 현대적 조치법들을 마다하고 재래식으로 가꾼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 무사히 인계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음력 달력을 기준해 밭을 돌보는 비오디나미 농법을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어도 그 농법으로 만들었다는 홍보나 마케팅은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실질적으로 지력 유지가 목적이지 그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로마네 콩티 포도밭은 십자가를 보고 찾아가면 된다.
    2008년 빈티지를 한 자리에서 시음했다. 맨 처음 맛 본 와인 뒤보 블로셰(Duvault-Blochet)는 이곳에서 만드는 유일한 프리미어 크뤼(상급 포도밭) 와인이다. 뒤보 블로셰는1869년에 로마네 콩티를 사들였던 사람으로 그의 직계 후손이 현재의 오너 오베르이다. 색깔이 아주 분홍색이랄까, 맑고 단아한 느낌의 질감이다. 다음은 에셰조(Echezeaux). 이제부터는 그랑 크뤼(최상급 포도밭) 와인이다. 12도밖에 되지 않는 차가운 상태에서도 본로마네 특유의 농염함이 느껴진다. 매력적인 향기와 입맛이다. 두 번째 그랑 크뤼는 그랑 에셰조(Grands Echezeaux)인데, 왜 에셰조에 ‘위대한’이란 의미의 그랑을 붙었는지 이해가 된다. 에셰조보다 진한 색깔에다 흠뻑 풍기는 딸기 향기, 보드라운 타닌, 그리고 농염함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로마네 생 비방(Romanee St-Vivant)이다. 약간 쓰면서 억센 맛이 난다. 이제 리슈부르(Richebourg) 차례. 아주 맑은 향기가 났다. 정연한 질감과 순수한 향내. 밭에 흘린 굵은 땀방울이 와인의 거칠고 둔한 막을 걷어내어 이토록 맑은 기운이 퍼지게 한 것일까. 아, 이런 와인만 마시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다음은 라타슈(La Tache). 우선 단내가 풍긴다. 진한 색깔, 강렬한 향, 체리, 블루베리 내음, 두꺼운 질감, 오래 입 안에 남는 여운. 이 라타슈를 최고로 치는 평론가들이 많다. 하지만 참는 자에게 복이 오는 법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로마네 콩티 차례. 로마네 콩티는 분홍 기미가 느껴지는 투명하고 여린 빛깔이었다. 향기는 전형적인 피노 누아의 여러 과일 향내가 느껴졌지만 뭔가 모를 새로운 향기도 있었다. 아득히 먼 태고적 깊은 숲에서 풍기는 젖은 풀 냄새, 나무 냄새 같은 원초적인 수액이랄까. 아주 순수하고 맑아서 와인이라기보다는 원시림 속에 든 옹달샘 같은 고운 물맛 같기도 했다. 왕자가 애호한 로마네 콩티를 왜 여성 명사 취급해서 ‘라 로마네 콩티’라고 문법화했는지 마셔보면 안다. 색에서 알 수 있으며, 퍼지는 꽃 향기, 엘레강스하고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피네스가 있기 때문이다. 피네스(finesse)는 아주 세밀하고 곱지만 속에 단단한 긴장감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오크통 11개에 나눠진 로마네 콩티 2008은 대략 3300병 정도의 양이 될 것이다.

    로마네 콩티 회사는 로마네 콩티만 팔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묶음으로 판매하고 있다. 로마네 콩티 한 병에 나머지 그랑 크뤼를 몇 병씩 합쳐 12병을 만든다. 생산자는 주연인 로마네 콩티에다 조연까지 같이 팔아 매출 안정화를 도모하는데, 구매자들은 다른 11병이 어떻다 해도 그 한 병에 만족한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


    ■ 추천 레스토랑

    〈 라 투드 프티 오베르주(La Toute Petite Auberge) 〉

    ◇라 투드 프티 오베르주의 개구리 다리 요리.
    본 로마네 마을의 대표 레스토랑으로 화려한 마을의 고정관념에 알맞다. 여기에 오면 두 번 놀란다. 와인 만드는 시골 마을 식당이 아니다. 그래서 깨끗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에 한 번 놀라고, 가격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합리적인 가격에 신신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리슈부르 호텔 옆이고, 부르고뉴의 중심 도로 N74에 바로 붙어 있어 자동차 여행자가 쉽게 찾을 수 있다. 달팽이, 개구리 요리부터 돼지고기, 생선 요리, 스테이크 등 맛깔 나고 신선한 음식을 본 로마네 와인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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