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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오르세미술관

눌재 2013. 11. 4. 11:42

[천자칼럼]오르세미술관

오르세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의 당혹감을 잊을 수 없다. 인상파 회화의 보고에 웬 여성의 성기와 음모를 클로즈업한 그림이라니. ‘세상의 근원’이라는 심오한 제목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눈도 못 맞출 뻔했다. 알고 보니 처음부터 전시 목적으로 그린 게 아니라 개인 소장가가 주문한 것이었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사들여 소장하다 1995년 기증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앞에 퍼질러 앉아 그림을 베끼고 있는 앳된 소녀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꼬마 숙녀의 눈빛과 손놀림은 진지했다. 라캉조차 다른 그림으로 가려놓고 지인들에게만 은밀히 보여줬다던 음화(淫畵)를 저렇게 편안하게 대하는 신구세대의 감성공유가 부럽고 기이했다. 우리라면 당연히 연소자 관람불가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 작품이 공개됐을 때 떠들썩했던 것처럼 지금도 오르세를 찾는 사람들은 연일 장사진을 이룬다. 한 해에 300만명이 넘는 이들이 ‘세상의 근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뒤 근대회화의 정수를 하나씩 만나러 미술관을 돈다. 센 강 건너 루브르에서 고대~19세기 작품을 본 뒤 이곳에서 19세기 이후 근대미술품을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그래서 더 뜨겁다.

오르세가 한때는 궁전이었고 기차역으로도 쓰였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증기기관의 힘이 아직은 약하던 시절 객차 8량에 맞춰 설계했던 것이어서 이후 역 기능을 잃었다가 현대미술관으로 거듭났으니 역사적 의미도 크다. 역 구조와 자연광을 잘 살린 리모델링 덕분에 인상파 작품 전시에는 딱 좋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인상파 걸작들은 3층에 몰려 있다. 10여년 전 ‘오르세미술관 한국전’에 왔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앞은 유난히 붐빈다. 밀레의 ‘만종’도 마찬가지다. 하루 일을 마치고 성스럽게 기도하는 부부의 바구니에 사실은 감자가 아니라 죽은 아기가 담겨 있었던 슬픈 이야기까지 더해진 탓이리라. 과거 플랫폼이었던 1층에서 고전주의 거장 앵그르의 ‘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도 만날 수 있다.

서유럽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첫 방문국인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오르세미술관을 찾았다. 이른바 ‘문화의 나라’와 소통하는 방식이다. 하긴 창조경제도 문화융성의 거름 위에서 꽃핀다. 그 거름 중 하나가 문화 접근성인데, 오르세나 루브르는 시민들이 찾기 쉽게 지하철로 잘 연결돼 있다. 우리는 어떤가. 셔틀버스를 갈아타거나 한참 걸어올라가야 닿는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의 불편이 갑자기 도드라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