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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야 너는 어이
이정보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국화야, 너는 어찌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다 보내고/ 나뭇잎 떨어지고 추워지는 계절에 홀로 피어나느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찬 서리를 이겨내는 높은 절개를 지닌 것은 너밖에 없구나”로 풀리는 작품이다. 초장의 ‘3월동풍’ 중장의 ‘낙목한천’ 종장의 ‘오상고절’ 장마다 안배된 4자성어가 시의 뜻을 온전히 받쳐낸다. ‘슬슬 부는 봄바람’ ‘잎이 떨어지는 차가운 하늘’ ‘서리의 차가움에도 굴하지 않는 높은 절개’가 맞물린 국화 꽃잎 같다.
이 작품을 쓴 이정보(李鼎輔, 1693~1766)는 문신이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며 바른말을 잘했다. 하여 여러 번 파직을 당하기도 했으나 이조판서, 대제학,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만년엔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관리였지만 전문 가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시조를 남겼다. 평시조뿐만 아니라 사설시조, 엇시조에도 능했고 지금까지 전하는 작품이 99수에 이른다. 그의 시조는 회고와 추모, 탈속의 경지와 흥취있게 노는 것을 동경하거나 늙음을 서러워하고, 애정을 노래하는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소재와 시어가 다채롭고 개성적이다. 특히 사설시조는 사대부 시조의 근엄한 격조를 벗어나 소재와 시어가 파격적이었다. 따라서 사대부 가인으로서 시조의 주축을 평민층으로 옮기는 교량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화’는 이른바 4군자의 하나로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지조를 지켜나가는 군자의 품(稟)이 있기 때문에 예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국화를 의인화해서 그 절개를 찬양한 작품이다. 절개보다는 사리사욕에 눈 어두워 선비정신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았다. 지조 있는 선비로서 소신대로 살아온 자신의 신념을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여러 번의 파직과 승진이 그의 정신이 어떠했는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하고 그 때문에 이 작품이 전하는 의미가 아주 미덥다.
올해도 국화는 피어난다. 따스한 봄바람이 아닌 스산한 가을바람 속에서 말이다. 절개를 물고 피어나는 국화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한번 돌아본다면 국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 되리라.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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