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렁일 때마다 찬란하다…그러면서도 잊지 않는 저 겸양…그것은 위대한 물결이다 청문회 때마다 그들의 전속 메뉴는 세금탈루나 위장전입이다/지금 우리들에게 도덕이란 대체 무엇일까
총리 후보자는 세금을 아침에 갚았다고 했다. 왜 하필 아침인가. 공교롭게도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의 '조문도석사가(朝聞道夕死可)'라는, 아침에 사람이 행하여야 할 도덕을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유감이 없다는 구절을 새겼기 때문일까. 저녁에 죽을 각오로 아침에 갚았을까. 그러나 두 '아침'은 분명 하늘과 땅이다. 감히. 윗사람에게는 할 말은 하겠다고도 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역경(易經)에도 '군자상교불첨, 하교불독(君子上交不諂, 下交不瀆)이라고 했다. 윗사람에게 아부하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흐트러짐이 없어야 군자라질 않는가. 만약 윗사람에게 할 말 한다면 절반만 맞는 셈이다. 이미 아랫사람에게 보인 '흐트러짐' '독(瀆)'은 어쩔 텐가. 하기야 절반의 실패는 절반의 성공이기도 하지만. 한서(漢書)에도 "재상은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宰相不親細事)"고 했는데 아직 재상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천만다행. 추분을 어저께 넘겼다. 그만큼 추석도 가까워졌다. 그래서일까. 자꾸 국회로 눈길이 간다. 민생. 한우 갈비짝도 눈에 아른거리고. 황금 녹차도 인기란다. 법성포 조기 두름들에서 조기들이 눈알을 부라린다. 왜 쳐다보냐며. 시인이자 박식한 불교학자였던 이원섭의 시 '윤리(倫理)'가 생각난다. "매서운 칼날 모양 햇볕 쬐는 곳/ 나의 어둠은 유리처럼 깨어지고/ 여기 가혹한 윤리 밑에 드러나는 것/ 구더기도 고개 돌릴 앙상한 촉루(?)." 들녘에는 서서히 황금물결이 인다. 여기도 황금이다. 그러나 그 황금은 일부러 금을 먹인 녹차처럼 금을 머금고 있지는 않다. 자연을 머금어 일군 색깔이다. 누른 물결. 일렁일 때마다 찬란하다. 프랭클린은 "도덕이 빛을 잃었을 때 황금은 빛이 난다"고 했지만 들녘의 황금은 바람이 일 때 더 빛이 난다. 알알이 다부지게 영근 벼 이삭들에 도덕은 천부당만부당. 그저 견고하고 정확한 자연에 따랐을 뿐. 남사(南史) 범진전(范縝傳)에 보이는 '추인낙혼(墜茵落)'이랄까. 꽃이 떨어지면 요에도 떨어질 수 있고, 뒷간에도 떨어질 수 있지 않는가. 벼가 영글고, 황금물결을 이루는 것은 죄다 자연의 법칙. 처음부터 원인과 결과의 약속이 있은 것은 아닐진대. 그래서 더욱 누른 황금빛은 찬란하다. 벼. 이삭은 촘촘히 박힌 낟알 덕분에 숙인 고개가 굳이 곡선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곡선인 것을. 휘 굽어진 자연의 무게. 잘 영근 무게. 노자의 도덕경 22장 첫머리에 '굽으면 온전하고(曲則全)'라는 글귀가 좋지 않은가. 현재에 참고 굽혀서 장차 천하에 두루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어찌 오지 않으랴. 융통성. 그리고 유연성. 그렇지만 사람들은 세상일에 양나라 혜왕(惠王)처럼 뚝딱 뭔가를 그 자리서 창출해 내야 직성이 풀린다. 혜왕이 맹자를 불러 "나라를 이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맹자는 "하필 이로우냐를 묻습니까?"며 이(利)만 추구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차근차근 말해준다. 나라가 편한 날이 없다고. 이(利). 벼 화(禾)에 칼 도(刀)라. 벼를 베는 것이다. 그러면 이익이 생기고, 이익이 생기면 경쟁이 생기고, 경쟁이 생기면 무엇이든 갈가리 찢기고 째지기 쉽다. 괴테가 "방앗간 주인은 '보리는 내 풍차를 돌게 하기 위해 자란다'고 생각한다"며 '격언과 반성'에서 말했듯이 모두들 방앗간 주인이 될 수밖에 없다. 눈 어둡다더니만 다홍고추만 잘도 따는 격이질 않는가. 그래도 지금 저 들판은 황금물결로 일렁인다. 한결 같이 숙인 고개들이 처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알알이 영글었노라'며 당당하다. 자랑스럽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는 저 겸양. 다소곳이 숙인 저 염치. 사람들은 이를 흔히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며 경계로 삼는다. 노자는 '굽으면 온전하고'에 이어 곧 바로 '구부리면 곧아진다(枉則直)'는 말을 붙였듯이 숙인 벼 이삭의 그 수많은 고개들, 숙인 그 곡선 사이로 엄청난 겸양과 염치의 물결이 인다. 그것은 위대한 물결이다. 그 물결의 가을 들녘. 그를 둘러싼 먼 산 빛은 원근이 더욱 선명하다. 이윽고 가을걷이가 서서히 무르익고. 잘 익은 황금빛 벼 이삭들은 더욱 고개를 숙인다. 그 고개를 거두며 웃음 지긋이 머금은 우리들의 농투성이 아버지들. "달구지/ 타고 갈 때/ 나락 단 거두러 갈 때/ 막바리 그득 싣고 돌아올 때/ 첨벙첨벙 물로 건너는/ 건너다가 슬며시 물 마시는/ 소/ 기다렸다가 또 한 칸/ 한 칸/ 징검다리 건너는/ 물잠자리/ 뒤에 뒤에/ 아버지"(문인수의 '가을걷이'전문). 나락 단은 통통한 알곡들로 여전히 곡선이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며 늘 움직이는 삶, 죽지 않는 삶,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삶을 역설하며 생명운동을 주창했던 장일순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언젠가 어느 강연 자리에서 말했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를 볼 줄 하는 지혜. 화엄경에 '일미진중 함시방 시방일우주(日微塵中 含十方 十方日宇宙)'라 티끌 안에도 우주가 있다질 않는가. 하물며 나락에서야. 그 멋진 황금의 알곡들에서야. 곡선지며 찬란하게 휘어 늘어뜨린 황금들녘의 그 고개 숙임. 그를 일러 단순히 '고개 숙인 나락'이라 부를까. 염치없게. ◇협찬=대구예술대학교 |
'◀문학 및 독서▶ > 명문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曲線美感 .3부·(5)] 송편 (0) | 2009.10.05 |
---|---|
[曲線美感] 3부·(3) 밝달가마의 자유 그리고 찻사발 (0) | 2009.09.26 |
[옛 시조 들여다보기] 국화야 너는 어이 (0) | 2009.09.22 |
[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13>문인수 ‘채와 북사이, 동백진다’山은 (0) | 2009.08.28 |
[송재학의 시와 함께] 바람앵무 (0) | 2009.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