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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과 달빛의 교묘한 혼합, 그 색이 한결 묘하다…저 굽이 진 곡선 '신천의 線'
가을 산책. 그 묘미와 멋은 무얼까. 밟히는 낙엽일까. "하늘에서 내린다면 어떨까// 짝 잃은 날짐승이 외롬에 울다가 지쳐/ 땅위에 뒹군다면 어떨까// 볼수록 저것은/ 슬픈/ 고독의 그림자// 어디서 누군지가 목메어 찾고 있을/ 슬픈 사랑의 이름일지 몰라/ 몰라"(조남두의 '낙엽(I)' 전문). 그렇다. 신천의 물가에는 어디서 온 낙엽들일까. 모른다. 간간이 뭉치를 이루며 가을을 알릴뿐. 당의 시인 이자경(李子卿)이 '청추충부(聽秋蟲賦)'에서 '떨어지는 한 잎 낙엽으로도 천하에 가을이 옴을 안다(一落葉知天下秋)'고 했음에 이만한 뭉치 낙엽에서야 이미 가을이 제법 제 갈 길을 왔다는 뜻일 게다. 걷는다.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 빛이 점점 밝아진다. 사람들은 조금씩 많아지고. 완보. 모두들 건강을 염두에 두며 걷는다. 호추불두라고. 여닫는 문지방은 좀이 먹지 않는 법. 절대로. 그만큼 걷는 일은 좋다. 영국의 생물학자 헉슬리도 "박물학을 조금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시골이나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은 놀라운 미술작품들이 가득 찬 화랑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럼 신천을 산책하는 일은 어떤 화랑을 걷는 것과 맞먹을까. 컬러풀 대구의 신천. 신천은 대구시가지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관통하고 있다. 자그마치 그 길이가 30여리. 금호강을 만나고, 낙동강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려 한 달여를 달려 바다에 이른다. 이만하면 그로서는 대장정이다. 비슬산, 최정산, 동학산, 병풍산, 용지봉, 두리봉, 형제봉, 청룡산, 앞산, 두류산, 침산 등. 어디 둬도 괜찮을 이름들을 지닌 산들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만났다 헤어지면서 이룬 저 곡선의 굽이 진 신천. 밤의 선이 너무 아름답다. 실로 아름답게 꾸몄다고나 할까. 그래서 많은 이들은 옛 신천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영남앎터탐구연구회의 김시구씨(원화여고 교사)는 어느 글에서 "신천은 대구생태의 축"이라며 "인공제방이나 둔치 조성 등으로 자연의 멋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그는 "신천변의 즐비한 고층 아파트는 바람길 통로를 막는다"며 신천을 더 이상 갑갑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맞는 말이다. 물 따라 부는 바람의 길을 막아서야 신천은 더 이상 생태의 축으로 그 역할이 줄기만 할 뿐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의 '서시'전문). 지금. 우리들이 신천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이 있는가. 괴로워해야 할 일들이 있는가. 달리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커피, 맥주 마시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그만큼 편한 시설들이 들어 차 가능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생태학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져 신천을 사랑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리라. 이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길과도 맥이 닿는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요구된다. 자연적이어야 한다는 요구. 그 자연은 적자생존의 피비린내나는 밀림의 법칙, 다시 말하면 생존경쟁이라는 측면에서만 자연을 살필 것이 아니라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며 상생하는, 공존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수달. 한 때 신천에 수달이 산다고 야단이었다. 보이지 않는 그 수달을 보호하자며 입간판도 섰다. 수달과 산책과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와 커피 마시기가 신천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신천에서 함께 놀 수 있을까. 놀 수 있다면 무엇 하며 놀 수 있을까. 물놀이? 숨바꼭질? 아니면 함께 산책하고, 달리고, 자전거 타고, 커피마시며? 컬러풀하게? 그렇더라도 결코 떼어 낼 수 없는 것은 신천이라는 자연. 시몬느 베이유는 '노동일기'에서 "자연은 저항하지만 자기를 옹호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신천도 그랬다. 결코 스스로를 지금까지도 옹호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이제는 신천의 저항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곡선에 담긴 저 아우성. 바람 길이 막힌다는 저 아우성. 밤도 제법 깊었다. 점점 사람들은 돌아갔다. 그 시각. 신천을 낀 양쪽의 대로와 동로에는 자동차들이 붉고 이쁜 꼬리들을 남기며 그 역시 돌아들 가고 있다. 자동차와 전등의 불빛과 달빛의 교묘한 혼합아래 신천은 얕지만 찰랑이고 있다. 사방의 빛들이 찰방이는 물결에 곱게도 색을 입힌다. 상동교, 중동교, 희망교, 대봉교, 수성교, 동신교, 경대교, 성북교… 육중한 다리 아래는 그러나 애처롭게도 손바닥보다도 얇은 물길이 손 씻기조차 민망스럽다. 어쩌랴. 건천의 속성인 것을. 그렇지만 공룡발자국은 여전히 물속에 잠겨 좀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그 또한 건천의 속성은 아닐진대. 왜 잘 보이지 않을까.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물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맺힌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정희성의 '저문강에 삽을 씻고'전문). 언제쯤 신천에서 이런 시를 만날 수 있을까. 많이 놀면 만날 수 있을까. 오늘부터 축제다. 한가위 같은 명절을 일종의 '정신적 소성(蘇醒)'이라고 했던 함석헌 선생의 말대로 "묵은 시름, 묵은 찌끼, 묵은 빚. 묵은 때를 확 떨어버리고 한 번 남녀노소, 빈부귀천, 재둔선악(才鈍善惡)의 모든 구별, 모든 차별을 다 없애고 맨사람에 돌아가 '한'이 되어 펼 대로 펴고, 놀 대로 놀고, 즐길 대로 즐기고, 흥분할 대로 흥분해보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천,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신천과 함께. 사진=포토피디 서태영 newspd@empal.com |
/글=김채한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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