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印·파키스탄 종교전쟁 얼룩 ‘잃어버린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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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500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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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지만 때로는 신도 악마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도 있다. 파괴. 신화 속에 등장하는 파괴의 신. 그 실제 모델은 인간 자신이 아니었을까? 한때 지상낙원이라고 불리던 카슈미르 계곡을 지옥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슈미르 계곡의 아름다운 휴양지 스리나가르를 잃어버린 낙원이라고 부른다. 불과 350년 전 무굴제국의 황제 제항기르가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곳 스리나가르’라고 했던 말은 이제 옛일일 뿐이다.
◇스리나가르 곳곳에 있는 무굴정원들. 1995년 영국인이 피살된 뒤 한동안 살풍경스러웠던 이곳에도 이제 평화의 기운이 샘솟는다.
그럼에도 스리나가르에는 있다. 무엇이? 여행객이. 순전히 한국인과 이스라엘 여행자들만 넘쳐난다. 병역기피다 뭐다 말이 많지만, 군대를 다녀온 두 나라의 젊은이들은 겁을 상실한다. 비무장지대(DMZ)를 마주보고 철책에서 2년 시간을 보냈던 한국 청년들에게도, 팔레스타인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던 이스라엘인들에게도 착검을 한 인도군인의 엉거주춤한 자세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저들은 왜 경계를 서면서 짝다리를 짚는지, 인도군은 왜 손바닥이 보이게 경례를 하는지, 대체 인도군은 왜 저리도 빠졌는지에 대한 궁금증만 증폭될 뿐이다.
◇아직까지는 시내 어디를 가나 무장한 인도군을 만날 수 있다.
철부지 여행자 시절. 나 또한 총을 멘 인도군인에게 위협을 느끼기보다는 카라시니코프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AK47을 만져보고 싶어 인도군에게 접근했을 정도였다. 해발 1750m의 고원, 천지사방 눈을 들어 설산 아닌 곳이 없고, 이태백의 보름달인 양 설산들은 새파란 호수 달 레이크(Dal Lake)에 깊이 잠겨 반영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여름 한철 호숫가에 연꽃과 수련이 필 때쯤 인도식 곤돌라인 시카라가 수면을 스치듯 재빠르게 다가가 꽃 한 송이 꺾어 연인에게 선사하는 땅.
◇수상마을을 방불케 하는 스리나가르. 집들의 외관은 이슬람식 문양이지만 내부의 가구들은 빅토리아풍이다.
“살람 알레이쿰 이크발.” 인구의 80%가량이 이슬람교도인 카슈미르에서 인도식 인사법인 나마스테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얼굴만 보면 대충 통하는 지경이라 별다른 흥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하우스 보트는 말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는 집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스리나가르 일대는 허울뿐이긴 했지만 독립국이었다. 당시의 마하라자(왕)는 외국인이 부동산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스리나가르의 풍경에 매료된 영국인들은 마하라자의 법을 피해 배를 건조한 후, 받침대를 수면 아래 굳건히 고정시켰다. 물 위에 있지만 흔들리지 않으니 배 멀미할 걱정 없고, 배를 집처럼 꾸미니 법을 어기지 않아도 되었다. 스리나가르의 하우스 보트는 이렇게 영국 호사가들을 위해 세워졌다. 영국이 떠난 오늘날까지.
덕분에 하우스 보트의 외관은 무굴식 이슬람 문양이 주를 이루지만 내부의 가구들은 빅토리아풍인 경우가 많다. 나무 결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잃어버린 지상낙원 스리나가르. 이곳에는 한국인과 이스라엘 여행자가 유독 많다.
근 15년간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하던 이곳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평화회담이 진행되며 안정을 찾는다고, 이제 여름이면 인도인 관광객도 심심찮게 찾는다며 그는 옅은 웃음을 띠었다. 하긴 스리나가르 초입에서부터 묘한 활기가 느껴지긴 했었다. 국영항공사인 인디언 에어라인즈에 의해 매주 3편만 운행되던 델리∼스리나가르 간 비행기도 요즘은 5개 항공사가 매일 1편씩 운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우스 보트 내부의 침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원은 다시 돌아오는 건가?”
“글쎄, 이러다 말았던 적이 너무 많아서, 하우스 보트 수리도 그 때문에 엄두를 못 내겠어.”
“원래 획기적으로 나아지는 건 없어. 언제나 세상이 금방 변할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정치인들 이야기고. 사실 잘 안 변하더라고. 우리도 그래.”
평화무드로 인해 몇 년째 한결 나아지고 있지만, 그 덕분에 얼굴에 찌들던 가난의 그림자도 많이 벗겨진 듯하지만, 그럼에도 축하할 수 없는 이 분위기는 뭘까? 독립이고 뭐고 정치는 싫다며 손사래를 치던 그는 이제 완벽한 인도땅이 되어버린 자기 고향에 대한 씁쓸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이면 술이나 마시며 “어쩌겠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잘된 거야”라고 말하겠으나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그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이크발 모른 척 그냥 살아라. 너와 스리나가르 사람들은 할 만큼 했어. 이제 돈이나 벌라구.”
다음날, 이크발의 하우스 보트에는 인도인 단체관광객들이 들이닥쳤다. 정말 변하긴 한 모양. 근 7년 만에 스리나가르에서 인도인 관광객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나마스테, 이 땅에 평화를.” 합장하며 내 소원을 인사삼아 인도인 관광객들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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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되찾았는지는 모호한 낙원 스리나가르로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델리로 가야 한다. 델리에서 스리나가르까지는 버스로 24시간. 최근에는 인도인 관광붐을 타고 항공편이 급증해 매일 5대의 비행기가 델리와 스리나가르를 연결한다. 정상화가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정식 요금의 반값 정도로 하우스 보트에 머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인도 제일의 닭요리인 탄두리 치킨은 원래 아프카니스탄∼카슈미르 일대가 원조다. 한국은 물론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먹던 맛과도 한 차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양고기맛을 안다면, 양다리 바비큐 정식쯤 되는 란(Raan)을 먹어보자.
- 기사입력 2009.10.15 (목) 22:58, 최종수정 2009.10.15 (목)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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