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라 아시시.’ 이탈리아 중부의 아시시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백장미 빛깔의 ‘아시시의 돌’. 그래서 아시시란 도시는 온통 백장미 빛깔의 돌로 지어져 있다.
백장미 빛깔의 도시를 상상해 보라. 은은한 연분홍색 크림을 발라놓은 것 같고, 그래서 고소한 크림 냄새와 향긋한 장미향이 오묘하게 뒤섞여 풍기는 것 같고, 그래서 아무리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새로 산 도화지처럼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깨끗한 풍경일 것 같다. 13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이 도시는 이름마저도 ‘중세적’인 움브리아 평원의 수바시오산 중턱에 영화 같은 요새를 둘러치고 서 있다. 도시 입구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신비의 도시 아시시의 상징물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혹은 장 자크 아노의 영화) ‘장미의 이름’을 본 사람이라면 성프란체스코와 프란체스코수도회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중세의 베네딕트수도원은 좀 더 으스스하고 장엄한 느낌이어서 눈앞에 있는 순백의 성당이 바로 같은 시대 프란체스코수도회의 성당이라는 사실이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프란체스코수도회의 역사가 숨쉬는 도시 아시시야말로 ‘장미’라고 하는 중세적인 신비, 그 자체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성인이다. 맨발에 누더기 옷을 입고(모자 달린 누더기 도포에 허리끈을 멘 바로 그 상징적인 중세 수도사의 복장) 교회와 성직자의 탐욕과 사치를 비판하며 ‘청빈한 교회’를 주장해서 교황에게는 미움을 샀지만 세속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받은 사람. 신기하게도 프란체스코수도회가 시작된 자리에 세워진 ‘성 마리아델리안젤리 성당’의 복도에는 그가 죽은 지 수세기 동안 은은한 장미향이 풍긴다고 한다.(사실 둔감한 내 코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일부러 가시에 온몸을 내던졌던 장미나무 덤불은 그의 몸이 상할까봐 날카로운 가시를 숨겼다고 하는데 지금도 바로 그 ‘가시 없는 장미’가 성당 정원에 남아있다.
더욱 신기한 건 성당 안의 성프란체스코 동상 주변에 살고 있는 하얀 비둘기 한 쌍이다. 지금도 동상 옆 난간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비둘기 한 쌍이 수세기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성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시시의 크고 작은 광장과 교회 주변에는 아시시의 상징처럼 하얀 비둘기 연들이 파란 하늘과 백장미 빛깔의 건물들과 신비롭게 어울려 너울거린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시시를 둘러싼 ‘로마 카죠레 요새’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백장미 빛깔 신비의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이 도시에서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전대사-아시시의 용서’가 행해진다고 하는데 순백의 도시 속 좁은 골목들을 걷다 보면 없는 죄까지도 낱낱이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질 지경(?)이 된다.
뜬금없는 이야기 하나를 하자면, 나는 ‘자발적 백수’이다. ‘자발적’임을 강조하는 이유 하나는 말 그대로 스스로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백수 선언을 했기 때문이고, 이유 둘은 언젠가 일은 다시 하되 백수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생계비를 버는 수준을 유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고도자본주의사회에서 행복하게 살면서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자발적(혹은 의지적) 백수’로 사는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행복하려면 집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하고 예쁜 옷도 있어야 하고 그러므로 돈을 많이 모아야 하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그러나 일을 많이 해야 하고 놀 시간은 줄어들고 체력은 떨어지고 외롭고 지치고 답답하고 불행해진다. 방법은 하나, 먹고 살기 위해 돈은 있어야 하니까 돈은 벌되, 모으려고 끙끙거리지 않으면 된다. 딱 백수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벌어 즐겁게 다 쓰는 거다. 백수생활에 돌입한 지 4개월 만에 발견한 사실은 집 안 사고 옷 안 사면(그러면서도 먹고 자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즐겁게 노는 데에는) 그리 많은 돈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백수로 사는 법은 바로 ‘돈을 소유하지 않기’.
백수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는 읽고 싶은 책들을 원도 한도 없이 느릿느릿 읽을 수 있다는 것. 덕분에 나는 요 며칠 동안 오래 전에 읽었던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다시 꺼내 푹 빠져 지낼 수 있었고, 문득 3년 전에 여행했던 아시시를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 되었다.
아시시의 성인 성프란체스코야말로 ‘소유하지 않기’를 외치고 실천한 사람이다. 방금 장미의 이름에서 읽은 그 분의 멋진 가르침이 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다. 단지 ‘사용’할 뿐.” 나도 세상을 소유하지 않고 ‘사용’ 해야겠다.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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