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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의 시와 함께] 「연못」/ 최수연

눌재 2009. 10. 29. 20:42

[송재학의 시와 함께] 「연못」/ 최수연
 
 
 
7월의 사무실이 금요일로 가득해서

길 건너 캘리포니아 롤집과 삿포르 스시집 사이

어디론가로 한없이 달아나는 그 골목길 끝까지 가면

나의 어디가 나올까 누군가

아스팔트 바닥에 물고기 세 마리를 그려놓았다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자 길바닥에 고이는 좁은 길들

물고기들은 비늘을 흘리며 연못을 빠져 나가고

2층 사무실 유리창까지 차오른 연못물에 갇혀

나는 쓸쓸해진다

거리에는 다시 떼 지어 다니는

저 건방진 햇살의 무리 그리고 누군가의

골목길 입구 검은 바닥의

물고기 세 마리는 떠나고 흰 테두리만 남아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수련 한 송이를 심는다

금요일은 토요일에 어디론가 떠나는 자의 설렘이다. 사무실에 금요일이 가득하다면 어떻게 일상을 견딜 수 있을까. 자신의 일상을 물의 공간으로 바꾸기이다. 때마침 소나기가 내렸다. 사무실을 물의 공간으로 바꾼다면 일상은 견딜 만할까. 그리고 심는 수련 한 송이는 모르스 부호이다. 수련은 필연적으로 정화의 이미지이다. 수련이 피고 지면서 이 좁장한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완성된다. 더운 여름날 오후 어느 순간, 갑작스런 소나기는 화자에게 강렬한 정화의 이미지를 주었던 것이다. 아스팔트 바닥에 그려진 누군가의 물고기 그림과 겹쳐지면서 주변은 온통 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완전한 정화가 되려면 수련의 시간이 필요한 법. 따라서 시인은 모르스 신호처럼 길고 짧게 피고 지는 꽃의 방법을 선택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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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0월 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