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예술 산책] 명화 속 명곡들 어떤 것 있나 스크린에 녹아든 클래식 음악…주연 같은 조연 | ||||||||||
지옥의 묵시록-도어스의 ‘엔드’(End) 세븐-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 나이가 들면 클래식이 좋아진다더니 내가 그 짝이다. 어차피 영화는 떼려야 뗄 수 없으니, 영화 속 클래식에 자꾸 눈이 간다. 클래식에 워낙 문외한이라 그동안 영화 속에 나와도 몰랐다. '아마데우스'나 '파리넬리'와 같이 아예 클래식을 전편에 걸쳐 놓아야 그런 양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영화 속에 의외로 많은 클래식 음악들이 숨어 있다. 우리 영화 '동감'에서 21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두 주인공이 마지막 스치듯 지나는 장면에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흐르고, '편지' '올드보이' '해피엔드' 등 많은 영화에서 클래식을 사용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통해 미완성된 체제를 고발하고, 줄리아 로버츠의 '적과의 동침'은 병적인 사랑의 집착을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으로 풀어내고, '위험한 정사'는 푸치니의 '나비 부인'의 아리아로 복수를 다짐한다. 클래식은 격조 높고, 품위가 넘치며, 고양된 의식의 울림을 들려주는 음악이다. 고전이다 보니 고색창연한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클래식을 초현대물에 얹어놓으면 전혀 다른 느낌을 창조해낸다. 의외의 영화 장면에서 만난 인상적인 클래식 몇 가지를 보자. 우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이다. 완벽주의자라는 평을 듣는 큐브릭은 그의 영화 적재적소에 클래식을 잘 녹여 넣기로 유명하다. 특히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은 우주의 신비에 대한 진실을 찾는 위대한 SF이자, 한편의 철학서, 서사시와 같은 영화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와 함께 1968년도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특수효과가 전혀 손색이 없다. 원시인들이 처음 동물의 뼈를 도구로 쓴 것이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첫 장면이 끔찍하다. 이제 세상을 지배하게 된 원시 인간이 땅을 내리치며 포효하고, 뼈를 공중으로 던지자 그 길쭉한 뼈가 하얀 우주선으로 변한다. 단숨에 시공을 초월해버리는 놀라운 편집이다. 이제 암흑뿐인 우주 공간. 우주선은 천천히 돌아 거대한 원형 우주 정거장에 진입한다. 미지의 세계, 호기심과 불안이 혼재된 고독의 공간이다. 이때 너무나도 낭만적인 왈츠곡이 흐른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이다.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을 가로지르는 도나우강의 물결이 미래의 우주를 감싸 안는다. 유영하는 우주선과 함께 춤을 춘다. 곧 닥칠 위기에 대한 전주곡치고는 너무나 귀에 익고, 또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워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너무 행복하면 불안하듯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존재의 의문을 묻는 효과적인 메타포로 쓰였다. 또 하나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이다. 도어스의 ‘엔드'(End)로 시작되는 오프닝에 깔리는 음이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다. 육중하며,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 같은 육중한 소리다. 기병대의 나팔 소리와 함께 헬기 편대가 베트콩 마을을 습격한다. 파도 소리도 재울 듯한 프로펠러 소리를 몰고 바다 끝에서 수십 대의 헬기가 몰려온다. 이때 바그너의 대표적인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중 ‘발키리의 비행’이 웅장하게 흐른다. 포탄이 쏟아지고, 연기와 화염이 인간을 휩쓴다. 전쟁의 여신이 뿜어내는 잔혹한 입김에 영혼들이 산산조각난다. 칼끝에는 주검들이 비명을 지르고, 칼을 쥔 전사들은 희희낙락하며 이를 즐긴다. 비장미 넘치는 아리아는 미군에게는 응원가로, 베트콩에게는 장송곡이 된다. 전쟁을 이토록 낭만적으로 그려도 되는 것인가. 지그프리드라도 된 양 빌 킬 고어(로버트 듀발) 대령은 포격으로 거세어진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겠다고 웃통을 벗는다. 이 얼마나 모순되고 상반된 이미지인가. “네이팜탄의 냄새를 맡아봤나? 아침에 냄새를 맡으면 더 좋아. 그 냄새는 승리의 냄새지.” 인간이 타죽는 화염을 승리의 향기로 여기는 그는 전쟁이 낳은 몰인간의 총아이며, 성조기를 어깨에 두른 미국식 영웅주의의 대변인이다. 바그너의 아리아는 이러한 모순을 그로테스크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또 하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세븐’(1995년)에 흐르는 ‘G 선상의 아리아’이다. 바흐의 무척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곡이 무지막지한 범죄 영화하고 어울리기나 할까. ‘세븐’은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남기는 연쇄 살인마와 싸우는 젊은 형사(브래드 피트)와 은퇴를 일주일 앞둔 노형사(모건 프리먼)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위가 찢어져 죽은 비만 남자, 자기 살을 베어 죽은 피살자 등 피 냄새로 진동하는 영화이다. 바로크 음악인 G 선상의 아리아는 아름답고 명상적인 곡이다. 박자 수가 사람의 심장 박동수와 일치해 사람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하고 기억력을 최상으로 이끌어내는 곡이다. 최근 바로크 음악으로 학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피가 철철 흐르는 ‘세븐’의 이미지와는 판이하다. 잔혹한 살인마의 단서를 찾기 위해 브래드 피트가 책상에 앉아 살해 사진을 보며 고민할 때 이 곡이 흐른다. 잔혹하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목도한 형사, 그의 책상에는 끔찍하게 죽은 이들의 사진이 널려 있다. 이 얼마나 부조화인가. 데이빗 핀처는 이런 정반대적인 느낌과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아름답고 낭만적인 G 선상의 아리아를 택했고, 관객은 그 혼란스러움에 더욱 망연자실하게 된다. 부조화 속에 또 하나의 창작 이미지를 그려내는 감독의 탁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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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0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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