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칸바일러씨의 초상
작가: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제작연도: 1910년
재료: 캔버스 위에 유채
크기: 100 × 61.5㎝
소재지: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지난 세기의 작가들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면 몰라도 가장 유명한 작가를 들라면 대부분 피카소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피카소라는 인물은 현대미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미술사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가 주도한 미술운동의 명칭인 입체파(Cubism)는 1908년 마티스(Matisse), 브라크(Braque)가 그린 <에스타크 풍경>이란 연작을 ‘조그만 입체의 덩어리’라고 다소 경멸적인 투로 비평한 데서 유래한다.
입체파의 탄생에는 흑인 조각의 영향 외에 무엇보다도 ‘자연을 원추, 원통, 구(球)로 파악한다’는 세잔의 주장이 직접적인 발단이 되는데 물론 그 이론적 기원은 멀리 피타고라스의 기하학적 세계관에까지 이른다. 존재의 본질적 형상을 재현하고자 하는 입체파 화가들은 빛의 속성에 불과한 색채는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시키는 대신, 복수(複數)의 시점(視點)으로 대상을 분석, 분해한 다음 그 각 단면을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하여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Tableau)로 재구성하는 극단적인 주지주의(主知主義)적 작업을 밀고 나갔다. 따라서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사용한 순간적인 현실묘사는 거부되었으며, 이에 대한 당시 프랑스화단의 비난도 극단적이었다.
이 작품은 입체파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석적 큐비즘 시대의 대표작으로서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 볼 수 없을 때까지 형상이 붕괴되고 색채의 다양성이 포기되는 과정이 그 정점에 달하였던 시대의 그림인데 역설적이게도 피카소는 초상화를 제작할 때 모델이 항상 화폭 앞에 있기를 고집하였다. 피카소가 약간의 선과 기하학적 평면의 조각(facet)으로 모델의 형상을 분석하는 그 긴 시간 동안 칸바일러씨는 화폭 앞에서 얌전히 포즈를 취하고 있어야만 했다.
화면은 수직과 수평의 선들, 그리고 약간의 사선으로 골격을 이루고 있으며 마치 움직이는 듯한 작은 조각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평가인 로랑 팡로즈(Roland Penrose)는 이를 ‘각각의 조각들은 그 이웃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고 묘사한다. 화면 공간을 평면적으로 분석하면 중심부의 조각들이 밀도가 높고 선명한 반면 가장자리로 갈수록 흐리고 밀도도 낮아지는데 여기서 화면 구조에 관한 고전주의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깊이의 차원에서는 약간의 요철(凹凸)이 있는 평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평면화(平面化)는 현대 회화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그림을 읽는 우리의 시선은 그 복잡한 조각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눈, 코, 단정하게 빗질한 머리카락, 시곗줄, 겹쳐진 손 등과 같은 비교적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표지점에서 다시 길을 찾고는 한다. 이러한 충격적인 리얼리티-비록 사실적인 방법에 의한 재현이 아닐지라도-를 읽는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권기준 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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