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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기 한량없는, 느리게도 아주 천천히, 굽어지는 저 곡선…붓을 긋는 곳마다…
우리 시대의 법(法). 새삼스러울 거야 없다. 그 법이 박수근의 '빨래터'를 진품으로 추정했다. 다행이랄까? 놀라운 것은 그 작품을 둘러싼 위작손배소는 그러나 안된다고 했다. '미디어법'을 놓고 그러더니 법은 법을 따르는가 보다. "법은 깨어지기 위해서 제정되었다"는 노스의 말대로 정작 무슨 법이 어떻게 깨어진 것일까. '불만의 겨울'에서 스타인벡이 "법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라도 어기지 않고는 숨을 쉴 수가 없다"며 토해낸 그 절규가 묘하게 굴절돼 귓전을 때리는 시절이다. 박중식. 서양화가. 그에게 넌지시 '빨래터'에 관해 물었다.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워낙 화제작이기 때문이다. 역시 말이 없다. 같은 박씨라서 그렇지는 않을 테고. 그러면? 겨우 입을 뗀다. "그림을 탓하는 사람은 자연을 탓하는 격"이라고. 싱긋 웃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임을 덧붙인다. "응갯돌 빨래터 방망이 소리는 사육제 마당의 북소리 같았다./ 그 소리에 바위들은 몸을 더 웅크려서 굳은 살 힘줄을 퍼렇게 떠올렸다./ 어머니는 해를 향해 빨래를 펼쳤다./ 빨래를 펼칠 때의 어머니의 키는 옛 얘기의 거인처럼 솟아오르고,/ 나는 어머니가 남처럼 낯설었다./…어머니는 빨래에 순결을 걸었다./ 어머니는 빨래에 승부를 걸었다./ 어머니는 빨래에 지조를 걸었다./ 아, 빨래는 어머니의 과업/…지금은 없어진 응갯돌 빨래터/ 그 날의 명예라고 이끼라도 피었으면,/ 전설처럼 아슴한 언덕받이에서/ 어머니의 빨래방망이 소리 아직도 들려오고/ 내 맥은 전에 없이 빠르게 뛴다."(이향아의 '풍경에 기대어'부분) 그림쟁이 박중식은 외골수다. 타협이 없다. 그래서 늘 외롭다. 사각의 틀과 씨름하며 물감에 늘 마음 흥건히 적실뿐. 그러던 그가 '추억제(追憶祭)'라는 테마를 들고 화랑에 나타났다. 생뚱맞기는. 추억이라니. 그 추억이 행복했던 지난날들일까. 아니면 지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고생했던 기억들일까. '신곡'에서 단테는 "행복했던 날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없다"질 않았는가. 그렇지는 않겠지. "지난 날 불행했던 추억은 감미롭다"는 키케로의 말이 훨씬 어울리겠지. 그러자면 당연히 나이를 먹고. 릴케도 "추억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은 먼저 나이를 먹는다"며 연륜을 탄(嘆)했지.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온 몸을 다 열어 버린다. 결과로 그의 작품들은 늘 숙련된 안정감 있는 붓터치가 그림이라는 매체에 녹아들기 마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 많은 고민과 번민, 여기에 수척하리만큼 다가가는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꽃은 눈 멀어 몸을 다 연다// 그 마저 없다하면// 봄가을/우찌 살꼬// 눈 머는 그 깊이 아니면// 무엇을 하리// 짧은 날을"(김일연의 '눈 머는 깊이'전문). 그렇다. 박중식은 짧은 날을 염두에 두고 항상 몸을 열어 작업을 한다. 가창 골짝 이서정(伊西亭)에서. 이번 '추억제'에는 '바람'이 꽤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람아 불어라' '두 아이' '하얀 편지' 등 제목이 설명하는 대로 따라가 봐도 그 추억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추억들이다. 바람의 추억들이다. 그래서 편하고 공감을 느끼기 쉽다. 그 새로 보이는 저 곡선. 바람에 지워진 곡선을 볼 수 없어 나무에 지어진 곡선을 대신 본다. 그의 이런 곡선은 휘어지는 선이 아니다. 굽이지는 곡선이다. 느닷없이 헝클어질듯 격렬한 곡선은 없다. 아름답고 어질기 한량없는 곡선이 느리게도 아주 천천히 화면에서 자취를 내 놓는다. 전에 없이 황홀해진 색감은 구상이라는 단계를 꼭히 밟으려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징주의적 리얼이즘에 요 몇 년간 꼬박 빠진 덕분일까. 엄청 변한 모습을 들고 이렇게 과감히 화랑으로 나온 까닭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게 뭘까. 화실에서 만날 때면 자주 움베르또 보치오니나 펠리시앙 롭스, 제임스 앙소르를. 한참을 그러다 에드바르트 뭉크에서 구스타프 클림트로 그러다 에곤 쉴레까지 뜀박질 치다시피 입술에 침을 튕기더니. 용케도 그 스스로를 감당해내며 오늘에 이르러 '추억'을 척 내 놓다니. 풀꽃을 저렇게 흔히 그리다니. 바람과 마주하며 당당히 스스로를 세우는 풀꽃. "길섶에 논밭둑에/ 그 여린 뿌리 박아// 죄 없이 피었다가/ 빛 없이 지는 목숨// 올곧게 살려 하지만/ 넘어지기 일쑤다" (황능곤의 '풀꽃'전문). 한참을 극사실로 눈을 비벼가며 밤을 세기도 하더니만 이윽고 그는 이만큼 돌아왔다. 한 때는 불상에 미치고, 꽃문살에 미치고, 이콘에 잦아 들더니만. 이윽고 그는 자연의 외적 요소라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자연으로부터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이끌어 내고자 바람을 업고, 추억에 잠기며 왔다. 그것은 세기말의 저항이나 데카당스, 니힐리즘을 저류에 깔고 자아낸 풍조와는 훨씬 다른 감흥. 그 때와 다른 지금의 문제는 항상 환경이요, 기후변화요, 과학적인 감정이 늘 우선시되기에 박중식의 '추억제'는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화사한 가운데 그어진 아늑한 선, 곡선. 그것은 부드럽고 온화한 색감과 어울려 선의 동정감(動靜感)을 어김없이 빼어나게 해준다. 은근하면서도 확연한 의경(意境). 중국 원나라의 승려 각은(覺隱)이 "나는 일찍이 즐거운 기분으로 난을 그리고, 성난 기분으로 대를 그렸다(吾嘗以喜氣寫蘭 以怒氣寫竹)"고 일갈한 소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선, 곡선. 난과 대나무의 비교에서 흔쾌히 드러나는 선의 미감에 박중식을 대입해 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번에 내 놓을 그의 작품들에서 그만큼 그의 곡선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담벼락에 나란히 선 두 여인. 그 담벼락, 혹은 그 아래에는 온갖 꽃들이 은근히 향기를 낸다. 지금 향기가 절정인 구절초도 있을까. 어떤 발굽에 밟혀 한 허리 비스듬한 구절초. 그 구절초 둥근 곡선 꽃잎들에서 우리들의 냄새가 난다. "저만치 물러앉아 꽃 아님 부끄러워/ 밟혀도 누워 자라 꺾여도 다시 피네/ 우리는 유리알 같이 죽어 사는 서민초"(이윤주의 '구절초'전문). 박중식의 그림은 화사하고 아름답지만 구절초마냥 서민들의 향내가 고소하게 난다. 그가 긋는 곡선마다. 어디고 붓을 긋는 곳마다 서민들의 아름다움이다. 그 곡선. |
/김채한 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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