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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시인의 시 53편이 실린 세번째 동시집

눌재상주사랑 2009. 11. 11. 17:36

/ 비실비실/ 고개 숙이고/ 여기저기 살핀다.// 바람이 손짓해도/ 몸을 움츠린다/ 낯가림한다.// 층층나무야, 조금만 참아/ 지난 봄, 나도/ 전학 왔을 때/ 너랑 똑같았어.’(‘낯가림’)

 2000년 아동문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마리아 시인의 시 53편이 실린 세 번째 동시집 ‘집을 먹는 배추벌레’(청개구리)가 나왔다.

 이번 시집엔 상대가 누구든지 아무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꾸짖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너그럽게 감싸주려는 마음을 담고 있다.

 김마리아의 작품은 특별하다. 아이의 단단하고 굳어진 마음을 순식간에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한 특별함은 ‘엄마 시인’이라는 평범한 위치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따뜻함이다.

 ‘낯선 환경’은 어른과 아이 모두 괜히 주눅이 들고, 외롭게 만든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사를 가 새로운 학교, 새로운 동네, 새로운 친구들과 ‘억지로’ 마주치게 된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도 있을 테고, 적응하지 못해 엄마 속을 새까맣게 태우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김마리아는 무슨 작품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 줬을까?

 층층나무를 보며 자신이 전학을 와 ‘움츠렸던 지난 봄’을 기억해내는 아이가 등장한다. 층층나무에 위로의 말을 건네는 아이의 모습이 우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주는 엄마 모습을 연상시킨다.

 ‘네가 그 산속에/ 살고 있다는 걸./ 먹을 게 없다는 걸. // 말 안 해도/ 다 안다/ 숨겨도 다 안다.// 산 밑 고구마밭 파헤친 거/ 배추 뜯어 먹은 거/ 혹시, 네가 했나/ 궁금했었는데 // 몰래카메라 설치한 뒤/ 소문이 나버렸어/ 뉴스에도 나왔어. // 멧돼지야,/ 너도 미안한 거지/ 살짝살짝/ 몰래몰래 하는 걸 보면.(‘멧돼지가 살짝살짝’)

 산에서 내려와 이 밭 저 밭 파헤치는 멧돼지를 누구도 좋게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마리아 시에는 그러한 존재까지도 따뜻하게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 멧돼지를 옹호해 주려는 아이의 마음이 귀여우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집을 먹는 배추벌레’의 해설을 쓴 전병호 시인은 김마리아 시인이 ‘어린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약한 존재, 여린 존재를 바라보는 김마리아의 눈은 ‘엄마의 눈’이며, “상대가 누구든지 아무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꾸짖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너그럽게 감싸주려는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게 김마리아 시의 특징이다. 이 동시집으로 모두의 가슴에 엄마를 닮은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길 바란다.

 울산광역시 방어진 꽃바위에서 태어난 시인은 2006년 ‘새벗문학상’(24회)을 받았다. 펴낸 동시집으로는 ‘빗방울 미끄럼틀’ ‘구름씨 뿌리기’ 등이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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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9.11.11 (수) 1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