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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線美感 3부. 11] 낙안읍성의 초가지붕

눌재상주사랑 2009. 11. 21. 09:00

[曲線美感 3부. 11] 낙안읍성의 초가지붕
(제자: 一思 석용진)
晩秋 황금빛 곡선…느긋함과 안락함과 그리고 여유로움
늦가을. 만추(晩秋). 혹은 모추(暮秋). 더러는 잔추(殘秋)라해서 멋을 부리지만 느낌은 죄다 비슷하다. 곧 찬 바람이 불 테니. 남은 가을이라야 고작 몇 뼘이나 되랴. "미운 눈 다 가지고/ 사랑의 창 가슴 열어// 수숫대 서걱이는/ 가을 들녘 나와 서니// 바람도 용서하라고/ 흰 구름을 보낸다" (이상룡의 '산다는 것' 전문). 퇴추(退秋). 그러니 가을이 물러 가기 전. 어느 누구나 용서할 일 있으면 용서하는 마음들이었으면 좋겠다. 수숫대 서걱이는 통 큰 가을 빈 들녘처럼.


황금색이다. 가을볕에 부신 초가지붕들이 그렇다. 누렇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시절에 누런 빛깔만 봐도 그대들 배부르지 않으랴. 하물며 낙안의 진산이라는 금전산(金錢山) 또한 그 이름값에 지금 낙안읍성은 느낌이 너무도 풍요롭다. 눈에 드는 것이 초가요 그 지붕들. 옹기종기 모여 아름다운 곡선으로 느리게 아주 느리게 서로를 아우르며 때로는 따로, 때론 같이 그 풍요에 겨워, 좀체 성안으로 흘러넘치는 초옥의 흥들이 깨질 기미가 없다. 좀 둥글거나 조금 밋밋하거나 둘러진 초가지붕의 선, 곡선. 황금빛 초옥들의 선.


"어디선가 서로 다른 곳에서 같은 하늘을 본 적은 있지. 장마가 그친 하늘, 이불솜을 깔아 놓은 하늘, 바람이 부는 하늘, 하늘이 보이지 않던 하늘. 우리 이렇게 같이 하늘을 보잖아. 혹시 흐리고 비 내려도 나, 너의 가슴에 지금처럼 높고 새파란 하늘이 될게" (이상백의 '따로 또 같이' 전문). 지난 여름장마에 이불 솜 된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 그 역시 아름다운 곡선으로 두둥실 떠가더니만. 이 늦가을에 저렇게 높고 푸른 하늘이 돼 낙안읍성으로 돌아왔으니. 금빛 초가지붕들은 그래서 지금 한창 신이 나 있다. 통 큰 들녘에다 높디 높은 푸른 하늘이 사방에 지천이니.


나이를 먹어 가는 집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그것이 초가가 아닌 고랫등 같은 기와집이라 하더라도. 오간팔작(五間八作)이나 고대광실, 금전옥루라 하더라고. 그러나 기왕 초가면 더 아름답다. 그런 집. 수간초옥(數間草屋). 보금자리. 아늑함. 소크라테스는 "내 집이 비록 작으나마 진실한 친구로 채울 수만 있다면 나는 만족하겠다"고 했던 그런 집. 장자는 이를 '일지소(一枝巢)'라며 너무도 담담하게 말했던 집. 우리의 초옥이 바로 그런 집 아니던가. 그 초가집에 가을이 깊어 가고, 종내 그 깊어 가는 가을밤. 아름다운 시어로 노래한 백석(白石)은 "닭이 두홰나 울었는데/ 안방큰방은 홰즛하니 당둥을하고/ 인간들은 모두 웅성웅성 깨여있어서들/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강에 파에 청각에 마눌을 다지고//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염내음새가 싱싱도하다// 밖에는 어데서 물새가 우는데/ 토방에선 햇콩두부가 고요히 숨이들어갔다"('추야일경'전문).


건축가 김진애는 그의 '이 집은 누구인가'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집이 익어간다는 것은 마치 사람이 성숙해지는 것과도 같다"며 "사람이 곱게 늙어 가는 것이 참 어렵듯이 집도 곱게 늙어가기가 참 어렵다"고 쓰고 있다. 지금 우리들의 초가집은 어떨까. 곱게 늙어갈 틈새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겨우 민속마을이나 몇몇 이름 있는, 일테면 영랑생가나 겨우 그 명맥들을 이어가고 있다. 상당수는 억지로 이어 간다. 전통을 살린다며. 그 놈의 전통이 뭔지. 그러나 낙안읍성은 다르다. 억지가 보일 것도 같지만 그렇지 않다. 햇콩 두부가 고요히 숨이 들어가듯 초가는 그들의 삶에 흠뻑 배어 있다.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는 장터 난전의 은행나무나 객사 뒤편의 팽나무. 그뿐이랴. 느티나무, 개서나무, 푸조나무 등 노거수들이 초가지붕들과 어울려 서로들 나이를 먹어 간다. 아름답게. 지붕의 곡선은 더 도드랍게 형상을 드러낸다. 저 느긋함, 저 안락함, 저 포근함, 저 넉넉함,그리고 저 여유로움. 이미 많은 초가들이 옷을 갈아 입었다. 새 옷이다. 그러니 더 금빛이다. 해마다 이맘때. 맑은 농심으로 엮은 짚 이엉들이 둥근 지붕을 덮고. 그 아래 사는 이들의 마음 또한 절로 푸근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 그런 시절 아닌가.



영원한 목수 신영훈은 '한옥의 고향'에서 초가를 비롯한 우리의 한옥을 두고 "기가 쇠해진 사람이 고향에서 기를 보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향수를 불러 있으키고, 진취적인 기상을 불어 넣는 그런 깊이가 맴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 천 년 그래왔듯이 시대에 따라, 시류에 따라 고향의 산천도 옷을 갈아입고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했는데 한옥, 특히 초가에서 이런 느낌을 많이 받는 것은 요즘의 그 웰빙바람이 몰고 온 결과일까. 그래서 백토로 물을 만들어 벽에다 바르는 맥질 같은 전통의 방식들이 이제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 좋고 훌륭함이 전해지다니.


낙안읍성 안을 멀리서 바라보면 정말 아름답다. 이미 초가집의 선입견이 머리를 꽉 채우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실제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거기에는 초가지붕의 선, 곡선이 주는 단순하면서도 순박하고 아낌없이 소박함에 저도 모르게 끌리는 우리의 초가지붕. 그것은 지붕의 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몇 개의 선, 얼마 간의 여백으로도 /살아 숨쉬는 산 홀연히 옮겨오고/ 물소리 바람소리며 새소리는 덤이다" (조동화의 '산수화 그리기'전문). 민박일지언정 그 초가지붕 아래 하룻밤 자고 나면 정말이지 덤으로 얻는 것이 많다. 초가의 그 감흥어린 곡선과 함께.


느낌이 너무도 풍요롭다/눈에 드는 것이 초가요 그 지붕들/옹기종기 모여 아름다운 곡선으로 느리게 아주 느리게 서로를 아우르며 때로는 따로, 때로는 같이 그 풍요에 겨워/좀체 초옥의 흥들이 깨질 기미가 없다/좀 둥글거나 조금 밋밋하거나 둘러진 초가지붕의 선, 곡선

협찬 : 대구예술대학교



/글=김채한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사진=순천시청 제공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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