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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線美感 3부 (16)·끝] 전영범 박사의 나선은하

눌재 2009. 12. 21. 22:29

[曲線美感 3부 (16)·끝] 전영범 박사의 나선은하
휘돌아 굽이치는 저 곡선, 새삼 우주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소용돌이 치는…검디검은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저 아름답게 곡선 지며 맹렬히 다가오는 나선은하의 굽이와 함께…
겨울. 바람이 차고 좀 매섭다. 그러나 야단부릴 만큼은 아직 아닌데 야단들이다. 추울 때 추울 뿐인데. 어깨들은 잔뜩 움츠러들고. 그 모양이 쭈글쭈글. 형편없다. 그 어깨들을 바라보며 빈 들판의 허수아비들이 웃겠다. 늦가을까지 들판을 지켰을 그들의 수고로움이 얼마였겠어. "겨울 허수아비/ 빈 어깨를 껴안고/ 몸부림치는 바람의 더운 손을 보았는가// 푸른 서기로 넘실대던 청보리의 꿈/ 여지 없이 베어진 빈 들판에 드러눕고// 황량한 서릿발 이에 시려/ 안아도 안겨들지 못하는/ 꿈의 실체는 어디로 갔는가"(박윤혜의 '겨울 허수아비 혹은 바람')


겨울. 밤하늘이 유리알처럼 청명하다. 무수한 별들이 찬 기류에 씻겨 더없이 맑은 요즘. 거짓말같이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구천은폭(九天銀瀑). 은하수라질 않는가. 어느 소설가는 불똥 같은 은가루를 캄캄한 하늘의 이 구석으로부터 저 구석까지 빈틈없이 뿌려놓았다고 했다. 그런 별들 속에는 에머슨이 노래한 '수수한 저녁 별'에서 '아련한 게으른 별'까지. 사기(史記)에서 상서로운 별이라는 경성(景星)도 찾아보면 많다. 찾을 방법을 모른다면 도리 없지만. 그러다 수줍은 듯이 떨며 조용히 반짝이는 별을 발견하고는 별들로 넘쳐 흐르는 밤하늘의 경이에 가슴 막힌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랴.


전영범 박사. 영천의 보현산천문대장이다. 밤마다 별을 살피며 별 속에 산다. 1.8m 망원경을 사용해 소용돌이은하를 찍었다. M51. 겉보기 등급은 8.4. 별자리는 사냥개자리다. 나선은하 또는 충돌은하로 분류된다. 거리는 2천600만광년. 상상이 가지 않는 거리다. 두 은하인 'NGC5194'와 'NGC5195'가 충돌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나 봄직한 장관이다. 우아하게 굽이치는 나선팔의 모습을 따서 소용돌이 은하라는 이름이 생겼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다 해서 부자(父子)은하라는 별칭도 있다. 부자가 충돌한다지만 어디 이 세상의 아버지와 아들이랴.


저렇게 굽이치다보면 엄청난 폭풍이라도 곧 밀어 닥칠것만 같다. 저러다 하늘이 절단나는 것은 아닐까. 우주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새삼 우주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무엇이 위대함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러나 하늘에는 여전히 별들이 반짝인다. 수도 없이 반짝이는 그 별들 속에 소용돌이은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딘데. 아! 저 별들. '선문염송'에 전하는 심문운분(心聞雲賁)스님의 별에 관한 노래. "견우성 저 밝은 자리에 칼 기운 번뜩/ 그 빛 쳐다만 봐도 간담이 서늘/ 칼 빛 타고 연못으로 뛰어드니/ 벽력소리 물위에 빈 듯 여유롭네."


M51은 북두칠성의 손잡이 끝인 베타별에서 5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고 전 박사는 말한다. 또 전 박사는 "태양의 1천600억배 되는 질량을 갖고 있다"며 강한 중력으로 조석력에 의해 찢겨지면서 동시에 별 탄생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휘돌아 굽이치는 곡선의 저 찬란한 형상에서 새 별이 탄생한다는 것. 쉽게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면?


얼마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157분 짜리 영화 '2012'를 봤다. 지진과 화산폭발, 거대한 해일 등 인간에게 닥쳐서는 안 되는 일들에 몸서리쳐 졌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는 솔직히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어떤 이는 지적문명의 도덕적 타락이라며 흥분했지만 종교가 필수가 될 수 없는 지금의 시대에는 마야의 예언과 환경이나 기후변화에 기댄 단순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소용돌이은하 사진은 그럴 수 없다. 눈 앞의 정확한 현상에 눈부시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겨울 밤 하늘은 여전히 얼음장 같이 맑고 투명하다. 눈길 엉뚱하게 한쪽으로 돌려 버리기만 해도 쨍그랑 금이 가거나 깨질 것만 같은 저 별빛 충만한 하늘.


전영범 박사는 나선은하의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M101. 큰 곰자리 별자리다. 겉보기 등급이 7.9. 2500만 광년의 거리를 둔 별. "나선팔이 감긴 모습이 바람개비를 연상시킨다 해 바람개비은하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고 그는 말한다. 붉고 푸른빛들이 휘감기면서 위엄있는 회오리가 두렵기도 하지만 또한 아름답기도 하다. “M101의 나선팔은 은하의 중심에서 비교적 대칭적으로 뻗어 나오다가 바깥쪽으로 갈수록 대칭이 깨지면서 전체적으로는 소라 모양을 보인다"는 전 박사. 그는 이어 "바깥쪽의 나선팔은 드문드문 끊기거나 새로운 가지를 뻗고 있는 특징을 보이는데 나선팔에 많은 붉은색의 발광 성운들과 푸른색의 산개성단이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그 뿐인가. M101은 지름이 약 17만광년이며 적어도 1조개의 별이 있다는 것. 더욱이 이들 중 1천억개는 태양과 비슷한 온도와 나이를 가진 별로 추정된다니 놀랍다. 또 이 주변에는 은하들이 모여서 무리를 이루며 이를 M101은하군이라 불리는데 무려 9개의 은하가 모여 있다고. 은하라는 그 말 자체가 이미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인데. 하물며 지금까지 3개의 초신성이 발견됐으며 그 중 2개는 태양보다 무거운 별이 폭발한 초신성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과 감동을 준다.


예로부터 우리는 별과 무척 친근히도 지냈다. 직선과 곡선이 간명하게 조화된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천문대인 첨성대. 숱하게도 별을 노래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 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요/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이병기의 '별'). 그렇지만 그런 별 속에는 오늘 밤, 전영범 박사의 사진이 주는 이미지는 너무 강렬하다. 그러나 아무리 강렬해도 '저 별은 나의 별' 하며 부르는 노래 한 자락에 청명타 못해 검디검은 겨울밤은 깊어만 간다. 저 아름답게 곡선 지며 맹렬히 다가오는 나선은하의 굽이와 함께.

글=김채한 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사진=전영범 보현산천문대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