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자세하나 흐트러진 모습없이 꼿꼿하게 사시며 자식들에게 허튼 말씀 한번 안한 어른이다. 보름남짓 남은 경인년 음력설을 쇠면 새 나이로 향년 97세이시다. 인생에 있어서 다들 만년은 쓸쓸하다 할 것이지만 장수하는 어른은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처가래야 산하나 두고 물길을 따라 시오리정도 거리에 있지만 지난해는 여름에 장인어른 생신에 잠깐 들러서는 문안 인사만 드린 것이 고작이었고, 그 전해적 어느때에 방문했을때 다섯살 손위 처남이 혼자서 하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이젠 정말 연세 많은게 표가 나네"
"작년 그 작년 부터 방에 안 들어 계시려 하시니, 매일 저기 버려둔 은규 차에 올라서 담배만 하릴없이 태우고서......"
" 방에 들어계시면 답답해 못견뎌 하시거던......"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그럿하고 계셨다. 버려진 은회색 승합차에 앉아 차창으로 물끄러미 바깥만 내다보며 여름에는 문을 열어놓은 차창가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가을에는 그 문을 닫고 쌀쌀해진 바람을 피하며 그렇게 보내기를 벌써 여러해인것이 내 기억속에서도 은근히 회자하고 있다.
그제는 적십자병원에 입원하신지 벌써 달포가 지나고 그 동안 멀리 나가있는 손자 손녀들이 다녀가고 각 집에 있던 서울 처남이나 양자들어 딴 살림을 하는 한 동네 큰 처남,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처형내외도 다녀가고 하는 등 오고가는 북새를 떠는 날은 병원이 복작되었으나 그 들이 떠나고 나면 병상에는 본동 사는 맞처남댁과, 한 집에 사는 막내 처남댁이 제일 자주 옆에 붙어서 간병을 하고 있었으며 이들 마져도 살림을 꾸리자니 꼭은 붇어서 수발을 들 수가 없으니, 6인이 쓰는 공동 병실에 얼마간 정해진 간병비를 대어줘 간병인을 부쳐 돌보게 하는 실정이다.
어제그제도, 한 열흘 병세가 호전 되는 듯해 조금씩 안심을 하던 일도 잠시 며칠일이었고 다시 병세가 악화되자, 작은 처남이 더럭 겁이나서 서을에 연락을 해서 서울 처남이 내렸왔다며 집사람이 내게도 귀뜀을 해줬다.
"당신도 한번 들러서 살펴봐요. 난 오후에 다녀왔어요."
"아직 외관으로 보아서는 알수가 없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하서요"
그 말을 듣고도 당일은 찾아 뵙지 못했다.
오늘도 늘 때는 어길 수 없듯이 저녁이 찾아왔다. 내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종업원아이와 요즈음 수능을 치루고 쉬고 있는 막내녀석이 있기에 두 아이들에게 노래방을 맡겨두고 교대시간을 이용해 저녁을 조성익형과 대벌식당에서 오랜만에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하고서 술을 한 잔 하자고 은근히 권하였더니 평소에는 술을 무척 좋아하던 형인데도 요즘들어 무척 절제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대로 오늘도 술은 안한다하기로 '커피를 한잔 할까요' 하니 형이 불쑥일어나 식당 끝에 놓여있는 자판기 앞으로 가서 손수 커피를 뽑는다. 형이 일어서니 앉아서 받아 먹을 수도 없어 나도 등뒤에 서니 종이켭에다 커피를 뽑아준다. 둘이 자리에 돌아와서 커피를 놓고 일전에 내게 선물해준 마란츠 엠프와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제이비알 스피커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았다. 원래 크래식 음악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형 덕분에 요즘은 역시 형이 복사를 떠준 CD를 이용해서 며칠째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문회한인 내가 음악을 듣고 했던 일상의 얘기거리를 화제로 삼아,식사후 한 시간 가량을 식당에서 보냈다.
조성익형은 바로 이렇게 내게 음악과 대화의 재미를 알도록 해주는 형이 없는 내게 친형 이상의 형이 되어 여가를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이다.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헤어지기가 자못 아쉬워
"형, 막걸리 딱 한잔만 하고 헤어지지요" 하니 "아니야 정말로 좀 절제를 해야겠어" 형이 자제할 때는 형특유의 진지한 표정이 눈에 띄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형또한 술에 대한 미련과 나와의 시간에 대한 배려가 뒤따르면서,
"아님 우리 집에 가서 한잔하던지"한다. 짐짓 짐작가는 일이 있다. 늘 술로 인해서 만날 때마다 밤을 반쯤은 쇠고 귀가하는 일로 성익형의 부인이 염려하던 일들이다.
"그러지요,그럼 가는 길에 리치마트가서 막걸리 한병 사가지고 갑시다."
마트에서 형은 맥주를 한병, 나는 막걸리 한 병을 사가지고 집을 방문하니 성익형의 부인은 낮에 딸 내외가 와서 아들 병희랑 구미 딸 집엘 갔다면서 어른만 혼자 집을 지키고 계시니 어른께 간단히 인사를 하고 형의 거실에 앉아 형이 가지고 있는 마란츠 앰프에 보스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일전에 내 스피커를 두고 제이비엘스피커 치고는 저음 소화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한 설명을 좀 해 달라고 하니 자기 스피커의 음질을 전원을 넣고서 들려준다.
정말로 깨끗한 음을 들었다. 그 음에 대한 설명을 식사중에 형이 비유하여 한 말이 생각났다.
형 특유의 차분한 논리적 말이 내게 쉽게 와닿는 설명이었다.
" 난 말이야 식당에 가면 왠만한 식당은 다 음식이 달게 느껴지거던 그런데 그 사실을 식당 주인도 모르진 않는 다고 봐. 다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 식당들이 고만고만해서 양념류를 싸구려를 쓰면서 달지 않으면 손님들이 양념류가 싸구려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게 뻔해서 그러면 형편없는 음식점이라 질타할 까봐 그렇게 한다고 보거던......"
"마찬가지로 자네가 가지고 있는 제이비엘 스피커도 못쓸 것은 아니지만 저음처리 부분을 얘기히자면 다소 웅장한 듯 붕붕거리는 감을 주게 만든 것은 바로 음향기기의 불안함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쉽어. 하지만 내가 전혀 잘못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정말로 정곡을 찌르는 비유다.
내 스피커는 다소 웅장한 맛은 있는 데 깔끔한 음처리로 흘러나오는 형의 보스 스피커로 저음을 지적하는 부분의 음과 비교해서는 들는대로 전혀 감이 달랐다. 음악에 전혀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원래 오케스트라 연주장에서 들어도 바로 형의 스피커처럼 음향을 감상할 수 있는 일이란다.
참으로 형은 말도 조리가 있게 설명을 잘 하지만 음악은 더 한층 높은 수준이다.
저녁내내 올리브 장아찌와 간단한 부식으로 안주 삼아 형은 맥주를 나는 막걸리를 먹으며 하모니커로 클래식을 연주하는 음악을 들었다.흔히 하모니커는 뿡짝뿡짝하며 베이스를 넣어가면서 신나게 연주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 데, 클래식 하모니커 연주는 일상에서 접하던 음악이 아닌 음계의 이동이 절묘해 무슨 현악기를 연주한다고만 느꼈는데 이 소리가 하모니커란다. 비로소 하모니커도 제대로 연주하니 악기의 한 장르로 그 가치를 제고하여 알게 된 시간이다.
가게일로 궁금하기도 하고 시간도 저녁을 먹자고 나와서는 오래 지체하였다. 물론 일요일이라 가게엔 손님이 한 팀맞고 난 뒤 겨우 한 팀만 있다는 것을 전화로 확인은 하고 보낸 시간이지만 일어나서 성익형과 인사를 나누고 천천히 걸어나왔다.
형집에서 가게까지는 십여분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지만 대한이 지난 어제는 걷는 것도 그냥 괜찮다고 여겨져 오랜만에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적십자 병원앞까지 오자 리치마트에 가서 조금전 술을 받고 할때만 해도 내 시간에 빠져 생각 못했던일이 문득 떠올랐다.
중앙파출소와 리치마트 적십자병원은 전부 길을 하나 두고 좌우켠에 도리도리 몰려 있는 터라 그곁을 지나자니 그제서야 장인어른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이 생각난 것이었다.
사위자식도 자식인데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사위를 두느니 절구공이를 두란 옛말 한말 그른 말이 없다더니 장인어른은 편찮아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데 사위란 자는 허구헌날 가게일도 팽개치고 술과 친구로 소일 하고 있단 생각에 죄의식이 온 몸을 감싸고 엄습해옴에 혼자서 자괴스런 감을 떨치지 못하고서 그제서야 병동을 찾았다.
11시가 넘어선 병동엔 여섯명의 환자들이 출입문 좌우로 누워있었으며 들어서며 왼쪽엔 평소 알고 있는 집의 환자의 장모라고 짐작이 가는 장년을 훨씬 넘긴 할머니 한 분과 간병인이 앉아 있었으며 오른쪽 침대 세 칸중 가운데 침대를 쓰고 있는 장인어른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호흡기를 코에 꼽고서 돌아누워 금방 잠이 든 듯 내가 오는 줄도 모르고 누워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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