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좋은 이별(김형경 지음/푸른 숲 펴냄) 김형경식 이별 치유법 “떠나는 모든 것에 손 흔들어줘라” | ||||||||||
몇 해 전에 말수가 적은 선배 한 사람과 작가 김형경을 만난 적이 있다. 이 말 없는 선배는 그날따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오랜 세월 함께 술을 마시면서도 내게(기자)는 한 번도 꺼내놓지 않던 말이었다. 김형경과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물었다. “오늘 따라 왜 그렇게 말이 많아요?” “내가 말이 많았어?” “많았어요.” “이상하네.” 그는 자신이 말이 많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 한번의 경험을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랬다. 사람들은 김형경과 마주 앉으면 말이 많아졌다. 그것도 일상적인 농담이 아니라 자기 속에 든 ‘요상한’ 이야기들을 꺼내놓곤 했다. 그러니까 작가 김형경에게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떤 말을 해도 들어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돌아오는 답이 내게 위안을 주기 때문인지 모른다. 김형경의 심리 에세이 ‘사람풍경’이나 ‘천 개의 공감’을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김형경은 심리 공부를 오래 한 사람이다. 그녀의 소설 중에도 ‘사람 심리’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많다. 작가는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 듯한데, 독자인 기자는 김형경의 책을 읽을 때 자주자주 밑줄을 그어댔다.(교과서도 아닌데, ‘책 읽으며 밑줄 긋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곤 한다. 그럼에도 김형경의 책을 읽다 보면 밑줄을 긋는 못마땅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이 책 ‘좋은 이별’ 역시 그렇다. 작가는 이 책을 쓴 이유를 “오래된 상실에서 비롯된 마음의 문제는 애도 작업을 잘 진행함으로써 치료할 수 있다. 잃은 대상을 뒤늦게라도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일은 또한 개인적으로 변화, 성장하는 소중한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주로 외국 소설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처를 예로 든다. 작품별로 인물을 구분해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여러 가지 심리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작품 속 인물들을 호출하고 있다. 책에는 이런 사람, 이런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좀처럼 이별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람들, 이별 후에 보이는 갖가지 행동들,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는 이들의 (평범한 상태의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 충격에 휩싸여 차라리 겨울이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놓쳐버린 열차를 아름답게만 기억하는 미화 심리,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사람들, 언제나 누군가에게 취해 있어야 하는 불안한 사람,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언제나 떠도는 사람, 지금 당장 누군가 ‘내 귀싸대기를 때려줬으면’ 하고 바라는 자기 파괴적 죄의식에 시달리는 사람, 몸과 마음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우울증, 왜 내 몸에는 혹만 생길까 원망하는 사람, 몸을 물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늘 울어야 하는 사람…. 사람들은 흔히 이별을 가능하면 피해야 할 사건,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조용히 치러내야 할 좋지 않은 일이라고 여긴다. 그런 탓에 실제로 이별의 상황과 마주쳤을 때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다. 그제야 자신이 이별에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는다. 지은이는 “이별에 대해 말하지 않는 문화가 우리의 이별 과정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며 “상실이나 결핍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충분히 슬퍼한 뒤 그 속에서 빠져나오는 ‘애도’가 슬픔을 치유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애도는 다만 누군가의 죽음을, 누군가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상처 입은 나를 떠나보내고 한층 성숙한 새로운 나를 맞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이별 범주’가 어디 죽음과 떠남에 한정될까. 오래 근무했던 직장을 잃었을 때, 직위나 명예를 잃었을 때, 젊고 아름다웠던 청춘을 보내야 할 때, 꿈과 목표 혹은 이데올로기를 잃었을 때, 혼신을 다한 공연이 끝났을 때, 결과에 상관없이 오래 몰두한 공부를 그만두었을 때, 우리는 상실감을 느낀다. 작가 김형경은 우리는 모든 떠나는 것들을 향해 ‘손 흔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손 흔들어주지 않는다고 떠난 그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별 앞에 선 우리는 ‘손 흔들어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264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09년 11월 2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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