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여행▶/고고,미술,문화

[근대미술 산책] 이인성 作 '노란 옷을 입은 여인'

눌재 2010. 3. 14. 21:43

[근대미술 산책] 이인성 作 '노란 옷을 입은 여인'
본능적 색체감각·붓터치…천재성 유감없이 발휘
 
 
 
이인성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종이에 수채 물감 1934년 개인 소장
물감의 사용이 거의 본능적인 것 같은 색채감각이나 형태를 그려내는 능숙한 솜씨가 가히 이 한 작품만으로도 작가의 ‘뛰어난 천재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실적으로 그린 구상작품이지만 붓놀림이 자유롭고 거침없어 보인다. 붓자국을 눈으로 따라가 보면 벽면을 처리할 땐 단속적인 필치가 경쾌하게 가로로 찍히고, 바닥에서는 마루판과 같은 사선 방향으로 넓고 편평한 붓질이, 그리고 하나의 천으로 상하가 이어진 옷은 그 흐름과 주름을 따라 이리저리 리드미컬하게 좌우를 옮겨가며 속도감 있게 칠해져 있다. 의자의 다리는 목재의 결을 따라 한두 번의 붓질로 끝내버린 듯하다.

배경의 흰 벽면으로부터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의 상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윤곽선의 둘레를 진한 음영으로 눌러 놓았다. 모든 붓질은 빠르고 자신감에 넘친다. 색채의 분배도 재기에 넘치는데 벽 하단의 짙은 초록색은 의자의 붉은 쿠션과 강렬한 보색 대비를 이루어 강조되었고 옷의 밝은 노랑과 대비를 이루어 자극적일 정도의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흰색 레이스와 모자, 그리고 과일 그릇을 받치고 있는 탁자 보의 백색은 모델의 청순한 이미지에 맞게 선택되어 더없이 산뜻하고 순결한 느낌을 부여한다.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텅 빈 실내 공간의 한쪽에 세련된 맵시의 여인 인물과 소품으로 탐스런 과일 그릇이 놓인 작은 탁자가 전부다. 그 밖에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어두운 암갈색의 마룻바닥과 역시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뒤 벽면의 가벼운 상아색으로 크게 상하가 나누어져 무게 균형에서 안정을 이루고 있다. 수직적 구도의 의자와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기울게 앉은 인물의 자세와 의상의 우아한 곡선이 이 단순한 구성에 변화를 줌으로써 화면을 단조롭지 않게 한다.

이 그림은 이인성의 1934년 작이라고 그림의 우측 하단에 영문으로 서명되어 있다. 그 무렵은 작가가 동경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늦은 나이로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그의 남다른 화재(畵才)가 주위의 눈에 띄어 일약 천재화가로 조명을 받기까지는 불과 2, 3년 사이의 일이었다. 그를 발탁해 준 서동진과 함께 조선미전에 출품하기 시작하여 연이어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자 후원자들은 서둘러 그에게 일본 유학을 주선했다. 낮에는 사환으로 일하며 야간에 태평양 미술학교를 다니는 유학생활이었지만 그 기간에도 국내 조선미전은 물론 일본의 <제전>에서도 연이어 입선의 성적을 올리는 등 단기간 일취월장하는 모습은 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림 속의 젊은 여인은 뒤에 그의 부인이 될 대구 출신의 유학생 김옥순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러 간 이 신여성과 일본서 만나 사귀고 있을 즈음이다. 그는 유학 중에도 방학이면 대구를 드나들며 작품 제작을 계속했는데 이 그림을 그린 장소는 그가 일한 동경의 오오사마 상회의 아틀리에일 것 같으나 불분명하다. (그가 귀국하고 난 후인 1936년 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이 그림을 그린 이듬해인 1935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결혼하게 되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인성에게는 최대의 황금기가 온다. 그해 <경주의 산곡에서>를 출품해 조선미전 서양화부의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고 이어서 최연소의 나이로 추천작가에 오른다. 이런 그의 빠른 출세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려는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의심을 살만도 했지만, 그의 열정은 더없이 순수했고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도 근대미술사에서 비견할 데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2010년 03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