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다 불상·불탑… 천 년신라의 '山박물관'
경주 남산 칠불암 - 용장사지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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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전체를 기단 삼아 남산에 우뚝 솟은 용장사지 삼층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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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3단 받침 위에 올라앉은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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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보로 승격된 칠불암 마애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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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만한 감실로 가득 채워진 천동탑 | |
경주 남산은 신라 서라벌의 진산이다. 산세는 금오봉(468m) 고위봉(496m)을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생겼다. 500m도 채 안되는 높이지만 그곳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역사가 담겨있다. 남산에 깃든 나정에서 신라의 역사는 시작됐고, 남산의 그늘 드리운 포석정에서 신라는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신라의 처음과 끝이 남산과 함께 했다.
남산의 웬만한 바위는 불상 아니면 탑이다. 순정한 믿음 하나로 단단한 화강암을 쪼아낸 신라인들이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게 아니라 바위에서 부처를 끄집어낸 것이라 한다. 자연과 역사의 황홀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남산 전체가 보물이고 남산 전체가 천년 신라의 역사다.
3월이면 많은 국립공원 산들이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을 통제한다. 반면 사적지로 유일하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주의 남산은 자유로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남산 산행객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삼릉골이다. 화강암 바위가 제일 많이 드러나 있는 골짜기답게 가장 많은 마애불, 석불 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주말이면 답사 여행을 즐기는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경주시 신라문화원에 한적하면서도 빼어난 유적을 만날 수 있는 남산 코스를 의뢰했더니 칠불암-용장사지 코스를 일러줬다. 고맙게도 신라문화원의 심명희 문화해설사가 직접 안내까지 맡아줬다. 아이들 키워놓고 코에 바람 좀 넣으려 답사를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는 심씨는 경주의 유적에 취해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해설사까지 됐다고 했다.
염불사지에 차를 대고 걷기 시작했다. 금세 소나무 우거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곳 봉화골은 진달래가 유난히 곱다는 골짜기다. 길섶에 스치는 진달래 가지에선 꽃순이 막 올라왔다. 곧 붉은 봄을 터뜨릴 기세다.
해설사는 중간에 천동탑을 다녀오자고 했다. 천동골과 승소골을 번갈아 타며 오르자 구멍 숭숭 뚫린 2개의 탑이 나타났다. 천불을 기원해 만든 탑이다. 하나는 바닥에 동강 난 채 나뒹굴었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대지에 뿌리를 박고 의연하게 서있었다. 바위엔 주먹만한 구멍들이 빼곡하게 둘러있다. 그 구멍 하나하나가 부처를 모신 작은 감실이다. 구멍들은 비어있었다. 그 안에 작은 부처 상들을 모셨는지, 아니면 그곳에 계실 거라며 마음 속의 부처를 모셨는지 알 수 없다. 남산의 많은 탑들 중 감실로 이뤄진 탑은 이곳뿐이다.
천동탑을 보고 다시 봉화골로 내려와 칠불암으로 향했다. 시원한 약수터가 나타났다. 신라의 정수를 받은 물인지 물맛이 시원했다. 약수터 위로는 짙게 우거진 시누대 숲이다. 돌계단을 올라 시누대 숲을 벗어나자 마자 칠불암이 나타났다.
마애삼존불에 사불암이 더해져 불상 일곱을 모신 곳이다. 마애삼존불 앞에 네모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각 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남산의 눈부신 바위 절벽과 어우러져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조각상이다. 보물 200호에서 지난해 국보 312호로 승격된 유적이다.
삼존불로도 완벽했을 텐데 사불암을 왜 또 놓았을까. 삼존불 가운데의 석가모니불은 사불암 너머 동쪽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다.
칠불암을 돌아 절벽으로 난 길을 올랐다. 낭떠러지 위 좁은 바위 난간을 돌아가 만난 신선암마애불.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얼짱' 불상이다. 보관을 쓰고 화려한 옷을 걸친 것을 보니 부처가 아닌 보살상이다. 구름 좌대에 올라앉은 보살은 편하게 다리를 푼 채 한없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애불 앞에 서서 불상의 눈높이로 시선을 따라 했다. 남산의 골골이 사선을 치며 겹쳐졌고 그 옆을 두른 기암의 병풍 너머로 드넓은 경주의 들이 펼쳐졌다.
신선암마애불을 뒤로 하고 능선을 올라탔다. 이영재를 지나 남산을 가로지르는 임도로 올라탔다. 통일전과 포석정을 잇는 길이란다. 그 길가에서 삼화령 연화대를 만났다. 불상은 간데없고 불상이 앉아있던 터만 덩그러니 남았다. 연화대 지름만 2.2m. 석굴암 석가모니불 만한 불상이 올라섰을 크기다. 빈 연화대에 올라섰다. 남산의 제일 큰 봉우리인 고위봉이 눈 앞이다. 치내려오는 주변 산자락이 먼 들판과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 했다. 신선암마애불의 시선이 딱 이랬다.
한굽이 산허리를 돌아 용장골로 접어들었다. 김시습이 은둔하며 <금오신화>를 썼다던 용장사가 있던 곳이다.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길. 갑자기 4.5m 높이의 삼층석탑이 나타났다. 동행한 심씨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 했다. 3층으로 된 탑신은 1단으로 된 기단 위에 올라서있다. 보통 석탑의 기단은 2단으로 돼있는 데 나머지 단 하나가 생략된 것이다. 주변에 널린 게 바위이니 석재가 부족했을 리 없을 텐데. 심씨는 이 탑의 1층 기단은 이 탑을 떠받친 산 전체라고 했다. 탑의 키를 잴 때에는 400m 높이의 기단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절터는 탑 아래에 있다. 탑 바로 밑에는 마애불과 삼륜대좌불이 있다. 이중 삼륜대좌불의 모습이 특이하다. 원반 같은 받침을 3개 층으로 쌓고 그 위에 부처가 올라앉았다. 비행접시를 탄 부처의 모습 같다. <삼국유사>는 신라 때 덕이 많은 대현스님이 염불하면서 돌면 이 부처 또한 함께 돌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용장사터엔 시누대 숲만 남았다. 절터에서 고개를 들면 용장사탑이 기도하기 좋게 올려다 보인다. 남산에서 가장 깊고 길다는 용장골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설잠교를 건너 너른 반석에 섰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위치다. 합장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졸졸 흐르는 물이 목탁 소리를 대신했다. 용장골을 다 내려오니 마을 입구의 매화 한 그루에선 하얀 꽃송이가 활짝 피어 올랐다.
경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입력시간 : 2010-03-18 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