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화첩 기행]마사이족에겐 내일은 없다 오직 '이 순간'만이 있을 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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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으로 돌아간 마사이족 박사
응고롱고로 향하는 길목에서 한 마사이 소년과 맞닥뜨렸다. 달리는 차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날렵한 사자 같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찍지 말라며 공격할 태세다. 섬뜩했다. 차를 세우니 마사이족 장신구를 사라 한다. 얼굴엔 하얀색으로 치장을 했다. 할례를 앞두고 여성의 접근 등 부정한 것으로부터의 격리를 위한 표식이다.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팔라고 하니 순순히 응한다. 오래된 것 같아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물려준 반지란다. 붉은 망토와 귀고리 목걸이 팔찌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지휘봉 같은 막대기를 들고 초원을 내닫는 모습은 그야말로 멋지다. 얼굴 윤곽이 뚜렷하고 180㎝ 정도 되는 키에 군살 없는 늘씬한 몸매는 초원의 몸짱이다. 문명을 거부하는 마사이족에겐 내일은 없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렇듯이 현재만이 중요시된다. 외지인들이 약속했다가 종종 낭패를 보는 이유다. 아프리카인에게 내일이라는 것은 희망이라는 단어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인간의 욕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일의 볼모에 잡혀 오늘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우리네 모습을 비웃는 듯하다. 행복은 바로 지금이라는 말을 마사이족은 알고 있는 것이다. 시름과 걱정도 내일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미래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내일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의 올가미가 아닐까. 자연과 야생에선 오직 오늘 이 순간만이 의미가 있을 뿐이다. 문명을 거부하는 이들의 자존심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사이 젊은이들을 미국에 데려가 공부시켜 박사학위까지 따게 했는데 다시 초원으로 돌아갔다는 마사이족 가이드의 말이 실감이 난다.
#카메라 들이대자 거센 항의에 당황 요즘엔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마사이 마을이 생겼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별도로 1달러를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사이족이 돈맛에 물들어 가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못 된다. 누구나 자신들의 개인공간을 공개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응분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마음 상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마주치는 마사이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니 곧바로 거센 항의가 돌아온다. 카메라에 손짓을 보내며 포즈를 취해주는 부족도 많지만 유독 마사이족만은 그렇지 않다. 마사이족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예전엔 영혼을 앗아간다는 몰이해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강한 자존심 때문이란다.
오후에 한 마사이 마을에 들렀다. 남성들은 소를 몰고 초원에 나가고 아이들과 아낙들만 집을 지키고 있다. 화려한 장신구로 몸치장을 한 아낙들이 환영의 춤을 추며 손님을 맞는다. 작은 절구통에 곡식을 찧는 모습은 예전 우리네를 연상시킨다. 집 안을 궁금해하자 한 여성이 손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안내한다. 마을은 큰 마당을 중심으로 둥근 형태로 집들이 옹기종이 들어서 있다. 다른 부족이나 야생동물로부터 방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마을은 대개 한 남성의 여러 부인 집들로 구성된다. 마을 주위엔 잡목과 가시덤불로 울타리를 했다. 마사이족들은 그 안에서 닭 등 가축들과 함께 살아간다. 겨우 비집고 들어간 집안은 너무 어두워서 분간이 안 됐다. 출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굽어져 있다. 야생동물 침입을 막기 위한 구조란다. 문을 달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자유로운 소통까지 막지 않으려는 깊은 배려가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이웃과 단절된 아파트문화가 부끄러워졌다. 이들보다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원형 움집 내부는 취사용 불을 피울 수 있는 부엌과 그 옆으로 방이 둘 붙어 있다. 하나는 아이들 방이고 또 하나는 부부방이다. 방이라야 맨바닥에 나뭇가지를 엮어 깔고 그 위에 소가죽을 덮어 만든 것이다. 나뭇가지와 풀로 엮어 만든 천장과 소똥으로 이겨 만든 벽체는 불 그을음으로 새까맣다. 연기는 맵지만 실내 소독과 잡냄새를 없애준다. 아프리카 목조각에서 심한 그을음 냄새가 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됐다. 소똥으로 지은 집은 벌레도 잘 꼬이지 않고 습도 조절도 잘된다고 한다.
#야생동물을 먹지 않는 마사이족 마사이족 하면 창을 들고 사냥하는 모습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야생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를 한 마사이족 청년은 짧은 한마디로 대신했다. 야생동물은 자연의 것이다. 마사이족은 소와 양과 염소 등 자신들이 기른 초식동물만 먹는다. 사자를 사냥하는 것은 용맹성을 시험하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처음엔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차에 치여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개 등 동물들이 그대로 방치되는 것이 의아했다. 개는 사람과 함께하는 이유도 있지만 고기도 먹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나귀는 힘든 삶을 함께한다는 이유에서 식용으로 삼가고 있다. 돼지도 고기를 먹는 잡식성이라 안 먹는다. 학교교육을 받은 젊은 마사이족들은 간혹 돼지고기를 먹는 경우도 있다. 크게 보면 자연의 먹이사슬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태도 같다. 사자가 레오파드를 죽여도 먹지 않는 이치다. 같은 종이기 때문이다. 저 멀리 응고롱고 초원 위에서 풀 꽃만 뜯어 먹고사는 일랜드(Eland)가 육중한 몸을 움직이고 있다. 몸무게가 2t이 넘는다. 먹성을 다양하게 해 공존케 하는 자연의 섭리를 보는 듯하다.
#거대한 목장 같은 응고롱고 초원 응고롱고는 마사이족이 야생동물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직경 16㎞에 이르는 큰 분화구에 물이 고이고 그 주위에 풀이 잘 자라 동물들의 낙원이라 할 수 있다. 분화구 둔덕 너머 여기저기엔 마사이 마을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인근 캠프장에 텐트를 치고 누워 있으려니 따뜻한 방이 그리워진다. 해발 2400m의 고원이라 밤바람이 차갑다. 캠프파이어로 몸을 따스하게 하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마사이족이 자신들의 조상신이 깃들어 있다고 해 당산나무처럼 여기는 수령 100년은 족히 넘은 스트랑글라피기 나무가 텐트 옆을 경계병처럼 지켜 서 있다. 다른 나무에 씨가 붙어 기생하면서 결국엔 뿌리를 땅에 박으면서 생존하는 나무다. 기생 나무 줄기들로 에워싸인 모태가 되는 나무는 종국엔 고사하고 만다. 마치 창을 사자에 꽂아 죽게 만드는 마사이의 용맹성을 닮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600m 절벽 아래 급경사길을 사파리지프로 내려가려니 마음이 졸인다. 저 아래 응고롱고의 초원과 동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귀를 다양하게 잘라 소유주가 누군지 표시된 소들 행렬 뒤로 마사이 청년이 따르고 있다. 마사이 목동이 없다면 어떤 것이 야생동물인지 가축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얼룩말과 누떼가 여느 젖소 목장의 소들처럼 한가로히 풀을 뜯고 있다. 풀 반 소 반이다. 거대한 목장에 온 느낌이다. 얼마를 달려가니 운 좋게도 사자 가족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수사자는 혼자 사냥을 못한다. 갈기가 사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암사자들이 다 잡은 먹잇감의 목을 물어 겨우 자기 역할을 한다. 대가로 고기 몇 점을 얻어먹는 것이 고작이다. 암사자들이 먹잇감을 잡고 먹다가 수사자에게 양보하는 것을, 뺏기는 것으로 보는 것은 부권적 시각이라는 것이 마사이족 가이드의 해석이다.
#자연은 여성 중심이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그렇듯이 사자도 마사이족처럼 일부다처제다. 부권적 시각에서 보면 남성이 부인을 여럿 거느린다고 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사자는 잘해야 2년 남짓 암컷들의 상대 노릇을 하고 쫓겨 난다. 암컷에게 간택되기 위해 치열하게 수사자끼리 싸움을 벌여 겨우 ‘씨’로 인정받고 얼마 안 가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버려지는 것이다. 마사이족 남성들도 단지 여러 여성들의 ‘씨’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모든 권한은 마사이 여성들이 거머쥐고 산다. 자연은 모권사회인 것이다. 여성시대는 자연의 이치이자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버려진 늙은 수사자가 외로이 초원 위에서 죽어가며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한국 남성의 모습이 거기에 중첩되는 이유가 뭘까.
응고롱고(탄자니아)=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
2007.02.26 (월) 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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