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화첩기행]동화같은 그림… 자유·순수·희열이 숨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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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인물 E S 팅가팅가
세렝게티로 가는 길가 상점과 갤러리들에서 비슷한 유형의 그림들을 보게 된다. 현지인들은 천에 프린트된 것과 캔버스나 나무판 위에 그려진 그림 모두를 팅가팅가라 불렀다. 말뜻을 묻자 아는 이가 없다. 버스에서 만난 청년의 안내로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한 작업장을 방문하면서 그 의문을 풀어나갔다. 작업장은 사실상 팅가팅가 그림공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작품을 찍어내듯 만들어 내고 있다. 진풍경이다. 작업장의 한 작가가 에드워드 사디 팅가팅가(Eduward Saidi Tingatinga·1932∼1972)라는 인물의 이름에서 팅가팅가라는 말이 유래됐다고 설명해 준다. 팅가팅가는 마지막 생의 12년간을 다르에스살람에서 보냈다. 탄자니아 남부 시골 출신인 그는 가난한 고향을 등지고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해 다르에스살람으로 이주했다. 식민지배 후 문화적 공백기에 팅가팅가는 오랫동안 가슴 속에 지내온 ‘진정한 아프리카’를 그림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자연과 동물 신화 등을 간결한 표현으로 드러냈다. 한 가지 배경색에 길을 잃고 어슬렁거리는 동물의 이미지는 연민의 정까지 불러일으킨다. 자연 동물 신화 등 직관의 아이콘으로 사람의 영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평가다.
생의 끝자락에서 팅가팅가의 작품은 서구인들이 운영하는 갤러리 등에서 인기리에 팔려나간다. 수요가 급증하자 팅가팅가는 자신을 도와줄 멤버를 결성한다. 창작집단의 구성이었다. 1972년 런던 커먼웰스갤러리(Commonwealth Gallery)에서 작품 100여점이 팔릴 정도로 유럽미술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그림이 장사가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친척들과 주변사람들까지 팅가팅가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 길거리 등에서 팔았다. 팅가팅가가 택시강도와 관련된 차량 추격전에서 경찰의 총에 맞고 생을 마친 이후엔 창작집단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 작가들까지 팅가팅가류의 그림 열풍에 가세해 요즘은 탄자니아 대중미술처럼 돼 버렸다. 다르에스살람과 아루샤, 잔지바르 등엔 여전히 팅가팅가를 대량으로 그려내는 창작집단들이 있다.
#단순한 재료로 스스로를 가르친 예술가 팅가팅가는 단순한 재료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림재료가 열악한 아프리카 작가의 자구책이다. 대부분 캔버스 대신 천장을 덮는 데 사용하는 합판을 그림판으로 활용했다. 합판의 부드러운 쪽에 붓질을 했다. 물감은 철물점에서 살 수 있는 유성의 혼합물을 쓰고, 광택을 주기 위해 에나멜로 마무리를 했다. 단색 배경은 대조의 효과를 증가시키고 중앙의 주제를 부각시켜 주고 있다. 가끔은 배경의 위쪽을 더 밝은 색으로 그려 수평선과 평지의 환상적 효과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림 둘레에 흰 테두리 등을 만들어 3차원 효과도 꾀했다. 팅가팅가는 둥근 물체가 포함된 그림에서는 자신의 서명을 그 둥근 모양에 맞게 썼다. 3차원 효과를 배가시켜 준다. 팅가팅가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엄밀하게 말해 스스로를 가르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 그날 만들어진 그림으로부터 배움은 끊임없는 진행형이 됐다. 리허설 따위를 할 시간도 없고, 시도할 여유도 없었다. 오로지 처음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려가며 거기서 배우고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아프리카의 미학을 버무리다 팅가팅가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만화의 방법으로 동물과 사람을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자연과 삶의 기쁨을 그렇게 배합한다는 것이다. 누구는 모차르트의 희유곡에 비유하기도 한다. 희열의 순간을 재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부터 거리를 둔 환상의 세계가 제격이다. 팅가팅가 그림의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 보는 이들에게 유쾌한 축하와 원기 회복의 느낌을 주는 이유다. 그 너머엔 인간의 영혼이 담겨 있다. 팅가팅가 화가들은 그룹으로 작업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계속적으로 모방한다. 여러 달 동안 그들은 같은 새를 그린다. 누군가가 새가 날개를 펼치는 것과 같은 작은 변화를 시작할 때, 이 주도는 즉시 다른 화가에 의해 모방된다. 이것이 팅가팅가 예술집단의 작품 생성과정이다. 어느 누구도 저작권을 가지지 못하는 공동의 자산인 셈이다. 소위 팅가팅가 예술학파로 뭉뚱그려 불리는 이유다. 어느 학파든 졸업하거나 훈련을 마친 뒤 개인적인 출세와 그들 각자의 운에 따라 학파를 떠나는 학생들이 있게 마련이다. 반대로 팅가팅가 조직체는 작업 공동체로 묶여져 있다. 서구인들의 구미에 맞는 그림을 양산하기 위한 슬픈 운명의 단면이기도 하다.
#진정한 팅가팅가 그림을 모색하다 팅가팅가 그림이 관광기념품으로 전락한 현실이 안타까워 다르에스살람 시내의 갤러리들을 뒤졌다. 팅가팅가를 나름의 작품세계로 승화시켜 나가는 작가가 분명 있으리라는 믿음에서다. 한 나절을 헤맨 끝에 겨우 만난 것이 조지 리랑가의 작품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조각가이자 화가였던 그는 탄자니아 현대 예술가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팅가팅가 학파에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그림을 그릴 때 판자와 에나멜페인트를 사용한 것과 작은 악마에 대한 묘사는 팅가팅가 그림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팅가팅가의 그림 정신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갤러리에 걸려 있는 양가죽 위에 그려진 그의 그림이 의젓하게 팅가팅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다르에스살람(탄자니아)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
2007.03.05 (월) 1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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