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화첩기행]<14>말리 | ||
진흙으로 빚은 도시 불타는 생명력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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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르 시내를 벗어나 얼마를 달렸을까. 늘어선 판자촌 너머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다.
출발예정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기착지인 탐바쿤다를 향해 출발한 시간은 1시간30분가량 지체된 오후 5시30분. 승객 짐이 워낙 많아 이를 싣고 정리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 데다 품삯을 놓고 운전사와 짐꾼들 간에 한바탕 실랑이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버스가 바오밥나무만이 지키고 서 있는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나간다. 말리까지의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 인내의 미덕을 가르치는 아프리카 작은 마을에 이르자 버스가 갑자기 멈춘다. 목마른 승객들을 위한 배려라 생각했지만 운전사는 피곤하다며 잠을 청한다. 다카르를 벗어난 지 채 2시간도 안 된 시점이라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항의는커녕 승객들도 운전사의 한댓잠에 동참하기 위해 소지한 담요를 챙겨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가. 더위와 모기의 괴롭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에 빠져드는 모습에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쩔 수 없는, 문명의 화급증에 걸린 이방인이다. 버스 천장 위에 잔뜩 실린 짐이 조금 비뚤다고 정리하고, 펑크 난 타이어를 수리하는 데 몇 시간씩 보내기를 수차례, 한국에서는 5∼6시간이면 충분할 470km 정도의 거리를 꼬박 24시간 걸려 도착했다. 탐바쿤다에서 말리 국경 인근 사라야까지 이동수단은 에어컨이 없는 택시.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차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멀리 자욱한 연기가 도로를 막는다. 불더위로 인한 산불이다. 아스팔트가 포장된 도로 덕에 그래도 무사히 사라야까지 올 수 있었다 고난의 행군은 이제부터다. 말리 국경까지는 그야말로 지도에도 없는 길이다. 노선버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오토바이를 이용하거나 운이 좋으면 국경을 넘는 트럭을 얻어 타고 갈 수 있을 뿐이다. 당일로 국경을 넘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포기한 채 하룻밤 머무를 잠자리를 수소문했다. 뜻밖에도 세네갈 정부 관리들이 이용하는 여각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 짐을 풀었다. 지친 몸을 뉘었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리듬 소리가 들려온다. 여각 관리인에게 물으니 낮에 인근 시내까지 찾아온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마을 주민들이 흥겨운 춤판을 벌이고 있단다. 창문을 열었다. 남자들은 아프리카의 북인 젬베를 두드리고 그 리듬에 맞춰 아낙 서넛이 돌아가면서 춤을 추고 있다. 빠르고 경쾌하다. 6분의 8, 3분의2, 12분의 8박자가 함께 교차되면서 연주되는 서아프리카의 대표적 혼합 리듬이다. 그래도 눈이 감긴다.
밤이 지나고 언제 올지 모를 차를 기다리며 동네 어귀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일 없는 나날이 시작됐다. 그러기를 사흘째. 흙먼지를 날리며 무언가를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마을을 향하여 구세주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맘까지 설렌다. 말리 국경까지 가는 트럭이다. 운전석 옆자리는 아낙들과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쌀 더미 위에 자리를 잡았다. 며칠새 정이 든 마을 아이들이 배웅을 한다. 특히 큰 눈방울을 글썽이며 손을 흔들던 9세 소년 탄두마샤가 눈에 밟힌다. 마음을 여밀 단춧 구멍도 없을 여린 소년의 가슴에 값싼 정만 남겼다는 자책감이 든다. 트럭은 얼마 못 가 서버렸다. 쌀무게를 견디지 못해 차체 범퍼가 부서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수리하는 데 몇 시간, 해는 지평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붉게 물든 아프리카의 평원이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진정 아프리카에 다가서고 있는 것일까. 밤이 되자 스치는 바람이 차갑다. 쌀가마를 비집고 들어가 누웠다. 유난히 반짝이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고 있자니 문뜩 그리운 얼굴들이 허공의 스크린에 밀려온다. 이런 낭만도 잠시, 몸 여기저기가 가렵다. 수많은 벌레들이 팔과 다리를 무차별 공격한다. 피부가 온통 벌개졌다. 그믐달이 수평선에 가까워질 즈음 한적한 마을인 케이에스에 닿았다. 한밤중이라 마땅한 잠자리를 구하지 못해 나뭇가지로 하늘을 가린 움막에서 한댓잠을 잤다.
# 서로에게 쿠션이 돼주는 만원버스 엉덩이를 간신히 지탱해주는 나무 간이의자로 개조한 9인승 승합차는 23명의 정원(?)을 다 채우고서야 출발한다. 아침부터 한나절을 기다렸다. 흙길에 덜컹거리자 아낙네들이 멀미로 토하기 시작한다. 흙먼지에 목이 따갑고 땀에 찌든 옷엔 황토물이 들었다. 그래도 아낙네들은 연신 웃음이다. 어깨를 서로 엇갈려 앉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정겹다. 얼마를 달렸을까. 대형 버스로 갈아타고 쭉 뻗은 고속도로를 내달았다. 멀리 불빛들이 반긴다. 말리 수도 바마코다. 사원풍을 가미한 건물들이 눈에 띈다. 유독 다른 도시보다 시끄러울 정도로 오토바이 행렬들이 줄을 잇는다. 시내에 위치한 말리 국립박물관에 들어서니 정원 한켠에 각 지역 사원들의 모형이 들어서 있다. 아담한 크기의 본 전시실엔 말리 사람들의 선사시대 생활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태피스트리, 목조각, 가면, 장례용품, 토기, 무기 등이 전시되고 있다. 시립미술관과 갤러리들을 둘러보았지만 목조각과 생활도구들이 전부다. 말리의 현대회화를 보기 위해 시내 중심가 말리예술학교를 찾았다. 미술, 음악, 연극을 가르치는 종합예술학교로 프랑스 에콜 드 보자르를 본떠 만든 학교다. 가면 목조각으로 유명한 도곤족 출신 총장 안내로 학교를 둘러보았다. 미술과 학생들이 조형실기 시간에 테라코타를 직접 제작하는 것을 지켜봤다. 흙으로 아주 간단한 기호와 동물 모양을 만들고 있다. 말리 회화의 대담한 생략과 담백함을 테라코타에서도 엿보게 해준다.
# 진흙으로 만든 젠네 모스크 진흙 사원을 보기 위해 젠네로 향했다. 강폭이 100m도 채 안되는 니제르강을 조그마한 동력선에 의지해 건넜다. 온통 진흙집이다. 우기에는 물에 둘러싸여 섬이 된다는 젠네다.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진흙파이 만들기 놀이가 건축(예술)의 형태로 발전되어 도시 전체가 진흙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진흙집들은 나무로 만든 모로코풍 창문에 금속으로 무늬를 놓아 그 자체가 예술품이다. 집들 중앙엔 세계 최대 흙건축물사원인 젠네 모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작은 탑처럼 생긴 돌출부와 중간에 나무를 끼워놓아 견고성을 갖추고 있다. 우기가 끝나면 튀어나온 나무기둥들을 발판 삼아 보수공사가 이뤄진다. 아쉽게도 무슬림이 아니면 실내 출입이 금지돼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어렵게 살림 공간을 통과해 옥상에 올라가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석양의 젠네가 황토빛으로 불탄다. 바마코(말리)=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
2007.04.30 (월) 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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