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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화첩기행]<15·끝>부르키나파소-가나

눌재 2010. 5. 12. 20:42

[아프리카 화첩기행]<15·끝>부르키나파소-가나
"모든 것의 근본은 하나”
화폭에 담긴 평등 세계
 ◇가나의 대표 작가 글로버의 ‘군중’. 작가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은 ‘또 다른 같음’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붉게 물든 젠느사원을 뒤로하고 부르키나파소 와가두구를 향해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가나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다.

#아프리카의 문화부국, 부르키나파소

황량한 무인지대를 지나자 부르키나파소 국경 검문소가 앞을 가로막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기념으로 지폐 한 장을 달라고 한다. 부르키나파소는 천연자원이 부족한데도 아프리카에선 제법 문화부국에 속하는 나라다. 2년 주기로 와가두구에서 페스타코 영화제가 열릴 정도다.

시내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다는 기념품 시장이 있다. 꽤 넓은 부지에 자리잡은 ㅁ자 모양의 건물엔 의류, 기념품, 그림, 조각, 금은세공, 세라믹 액세서리 등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서울 인사동을 연상시킨다. 기념품들은 현장에서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순수 회화 작가들은 전시장 뒤편에 마련된 작업실을 이용하거나 개인 아틀리에를 다른 곳에 두고 있기도 하다. 창작 과정이 중요한 예술품과 공예품의 차이를 한 공간에서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작업실에서 만난 한 작가에게서 부르키나파소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기념품 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크리스토퍼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살림집이 딸린 아담한 작업실을 가진 작가다.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 등지에서 전시회를 가진 그는 노란색을 즐겨 사용한다. 대지의 색으로 어머니의 포근한 품을 상징한다. 배경은 거칠고 인물은 매끄럽게 처리하고 있다. 평온함을 상징하는 여성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형태에선 에곤 실레를, 색채는 르느와르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화풍은 현실 속에서 평화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님을 암시하기 위해 안식처의 상징인 여성의 얼굴을 작게 그리고 있다.

흙과 천연염료로 작업하는 작가 베르나댕은 사람의 형태를 늘 해질녘 실루엣으로 처리한다. 남녀와 인종, 자연과 인간조차도 구분 짓지 않는 평등한 세계를 갈망하는 뜻을 담고 있다. 자연 재료는 매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준다.

#아샨티 제국의 후예, 가나

◇부르키나파소 와가두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춤·음악 경연.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참가자들의 연주와 춤사위로 아프리카의 검은 밤이 깊어갔다.

부르키나파소 국경에서 가나로 접어드니 황량한 들판이 점차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사바나 관목들이 야트막한 산등성이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펼쳐낸다. 가나의 고도 쿠마시에 입성했다. 아샨티 제국의 잔영을 간직한 도시다. 박물관은 보수공사 중이라 국립 문화센터를 찾았다. 역대 아샨티 왕들과 왕족들이 사용하던 유품들, 왕들을 실물처럼 만든 밀랍인형과 사진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인데도 한국의 골동품 가게 수준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기념품 시장에 들렀다. 야산티 목조각, 형형색색의 의류, 전통 공예품들이 현란하다.

쿠마시를 빠져나와 가나 제1의 도시 아크라로 가는 길은 더욱 푸르다. 고온다습한 날씨는 차가운 음료를 마시는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게 한다. 고속도로의 늘어난 차량으로 보아 아크라가 가까워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앞다퉈 달리는 자동차 중 유난히 한국 자동차들이 많다. 시내에 들어서니 아프리카 국가의 수도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현대화된 모습이다.

호텔 인근 국립박물관에 들렀다. 아샨티 목조각에서 이집트 조각, 짐바브웨 새 조각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전역에서 수집된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국립미술관은 기념품 시장 진입로에 자리해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댄다. 단층의 100평 남짓한 전시실엔 가나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웃 전시실은 판매용 그림을 전시하거나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겸하고 있다. 작품이 폐자재처럼 쌓여 있어 관리 상태를 짐작케 해준다.

그 중에 한 작품이 눈길을 잡아끈다. 글로버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직원에게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가이드를 자청한다. 글로버가 시내 외곽 바닷가에서 개인 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귀띔해 준다. 택시로 도심을 벗어나 바닷가에 이르자 성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글로버 개인 아트센터다.

200평 남짓한 대형 전시장엔 큰 그림들이 걸려 있고 그 옆 공간에선 수준 높은 목조각 등을 판매하고 있다. 아프리카 가구를 현대화하거나 아프리카 공예품을 수준 높은 디자인으로 탈바꿈시킨 고가 상품들이 즐비하다. 2층은 글로버 개인전을 방불케 하는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초로의 글로버를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나를 대표하는 작가답게 우선 작품 수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작품 유형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여인 등 인물을 가까이에서 힘 있는 터치로 그려내는 그림이다. 색채는 가급적 온화한 느낌을 주는 노란색, 파란색, 녹색을 주조로 하고 있다. 또 다른 유형으론 붉은색 톤으로 강렬하게 군중을 그려낸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수많은 사람들을 한 화폭에 담는 것은 ‘모든 것의 근본은 같고, 결국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군중을 그린다는 그는 ‘흰색은 표현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으로서의 열린 색’이라며 중시한다. 여백의 미를 말하는 듯하다. 검은색은 동적인 것을 더욱 동적으로 만든단다.

미국에서 수학하기도 했던 글로버에게 국립미술관에 걸려 있는 과거 작품들의 색채가 지금보다 어두운 이유를 물었다. 40세 때까지는 세상에 대한 시선이 비관적이고 항상 의심이 많았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세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싹트면서 그림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

색은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그는 말한다. 화려한 원색의 사용은 심리적인 자신감에서 나오고, 의욕적인 삶 에너지의 발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늘 자만을 경계한다고 덧붙인다.

◇김종우의 ‘가나 소년’. 서부 아프리카의 척박한 땅에서 내일의 희망을 쓰고 있는 아샨티 후예를 형상화했다.

자신의 작업 공간 옆에는 가나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100호 이상 대작 위주의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은 가나국립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재료의 실험적인 작품들은 서구 미술관 못지않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프리카 미술의 밝은 내일을 본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절망적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아프리카화첩기행을 마무리하면서 스스로 던져보는 질문 한 토막이다.

아크라(가나)=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