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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화첩기행]<13>세네갈

눌재 2010. 5. 12. 20:39

[아프리카화첩기행]<13>세네갈
슬픈 역사 간직한 ‘노예섬’ … 섬 전체가 전시장
아프리카의 진정한 맛을 느껴보려면 동남부보다는 서부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척박한 기후와 생활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다소 걱정을 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공항을 출발해 세네갈로 향했다. 다카르 레오폴드 생고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30분. 한밤중인데도 북적거리는 인파는 이곳이 서부아프리카 관문임을 새삼 실감케 한다. 호텔 이동을 위해 올라탄 택시 요금은 우리나라 절반 수준. 하지만 그 밖의 물가는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어 생활수준을 고려해 볼 때 상당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네갈은 이슬람 인구가 94%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 거리를 지나는 다카르 시민들의 복장과 일정 시간이 되면 일을 멈추고 몇몇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찌감치 자리 잡은 유럽인들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종교가 분포되어 있는 동남부 아프리카와 비교된다.

#예술의 거리와 집단 창작촌

서너 시간 겨우 눈을 붙였는데 동행한 김종우 작가가 방문을 두드린다. 아침을 빵으로 때우고 서둘러 길을 나서자고 성화다. 화가에게 무엇을 본다는 것은 또 다른 특별함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내면의 화폭을 살찌우는 과정이 아닐까. 피곤도 모르는 열정에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다.

호텔직원에게 무작정 이것저것 캐물었다. 시내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우리의 인사동 같은 예술의 거리가 있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거리엔 그림을 비롯해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해변에 위치한 도시답게 캔버스에 다양한 색상의 모래를 붙여 채색을 가미한 모래그림이 눈길을 끈다. 패턴도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아 관광객을 상대로 팔기 위해 대량 주문·생산되는 그림들이다. 길거리 상업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재능 있는 작가들까지 생계를 위해 상업화에 내몰리는 현실이 서글프다. 비슷한 패턴의 공산품을 방불케 하는 그림을 찍어내듯 그려야만 하는 작가의 심정이 헤아려진다. 작가정신이 실종된 그림들에선 진지함과 감동을 찾아볼 수 없다. 값싸게 영혼을 팔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동남부의 길거리 그림들과 비교해 봤다. 색채나 물감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표현하던 동남부와 달리 파스텔 톤의 중간색으로 밑색을 칠하고 선묘로 간결하게 인물을 처리한 그림이 많다. 이곳 환경과 사람들의 기질, 물감 부족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짐작된다.

작품다운 그림이 보고 싶어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로 발길을 옮겼다. 국내 중대형 화랑 정도의 규모에 전시품도 보잘것없어 공공미술관이라 하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다.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 미술관들이 비슷한 처지다. 갤러리 관계자로부터 세네갈을 대표하는 화가 마마두를 소개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마두는 시내 외곽에 위치한 집단창작촌인 예술인마을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창작촌 담장은 온통 벽화로 치장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나무들 사이로 작업동 7개가 길게 이어져 있다. 50여명의 작가들이 창작혼을 불태우고 있다. 그 중앙에는 100여평 되는 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다. 세네갈 정부에서 지어준 것이라 했다.

전시장에선 10여명의 세네갈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 전반을 가로지르는 주관적 서정성과 현실참여 경향, 오브제 작업, 팝아트 등을 나름대로 소화해 낸 제3세계 현대미술의 전형들을 보여준다. 유럽과 미국의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반응·수용과정에서 불거진 자기 주체성의 모색이라 할 수 있다. 국제화된 미술언어와 아프리카라는 지역적 상황을 매개로 개별적인 관심들을 추구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창작촌의 원로격인 마마두는 주관적 서정성이 강한 작가다. 훤칠한 키에 선비적인 풍모를 갖춘 그의 그림은 세네갈의 상징적인 색인 황색을 바탕에 깔고 있다. 몸체가 거대한 탑 형태의 인물은 신과 인간의 매개자다.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신의 향기를 연기처럼 내뿜어 사람들은 그것을 들이마신다. 사람과 신이 하나됨을 상징한다.

#시리도록 푸른 슬픔을 간직한 고레섬

다카르 항구에서 바라본 대서양에는 작은 섬 하나가 떠 있다. 고레(Goree)섬이다. 인도양의 탄자니아 잔지바르섬과 함께 노예섬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배편을 예약하고 항구 옆 수공예품점을 들렀다. 채색 유리그릇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간결한 인물표현과 화려한 채색의 어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상인들이 고인이 된 세네갈의 대표적인 작가 움부로 파이의 화풍을 나름대로 상품화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천재적 기량을 보인 움부로 파이는 1974년부터 77년까지 아홉 번에 걸쳐 파리, 스톡홀름, 로마, 헬싱키 등에서 유작전을 가졌다.

고레섬을 향해 배를 탔다. 아프리카 대륙의 중간수역에 위치해 각 지역의 노예들을 집결시켜 신대륙으로 송출하는 중간 거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섬이다. 30여분 항해 끝에 도착한 섬은 서구 관광객들로 붐빈다. 최근 일본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인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선착장 오른쪽으로는 작고 아담한 백사장과 야자 숲이 펼쳐지고, 중앙에는 바오밥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 광장이 있다. 발코니가 달린 유럽풍의 집들과 요새, 교회와 여학교가 바다와 그림같이 어우러져 있다.

섬 전체가 예술의 섬으로 착각할 정도로 길거리와 상점은 온통 그림과 공예품으로 뒤덮여 있다. 야트막한 비탈길을 오르니 생명의 상징인 바오밥나무가 늘어서 있다. 고레섬의 슬픈 역사를 보듬어 주듯 밑동에 그림들을 안고 있다. 섬 전체가 전시장이다.

바오밥나무 전시길을 빠져 나오자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대형 포신이 바다를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주변엔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철제물과 잡동사니들이 정크예술로 재탄생되어 전시되고 있다. 포대를 갖춘 현존 참호들은 놀랍게도 창작실과 작가 생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 만난 작가들은 작품을 팔기보다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이해받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예술의 참호’에서 미래 문화전쟁에 대비하는 전사들 같다.

지금도 고레섬엔 돌로 지은 ‘노예의 집’이 한 채 남아 과거를 말 없이 중언하고 있다. 어디로 팔려 갈지 모른 채 대서양의 검푸른 물을 망연히 바라보며 눈물 흘렸을 눈동자들을 생각해 본다. 노예의 집 뒤쪽으로 난 ‘돌아올 수 없는 문’을 통해 그들은 노예선에 올랐다. 1000만명 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모처자와 생이별하고 기약 없이 끌려갔다. 대서양 바닷물은 그때의 사연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오늘도 무심히 출렁인다. 시리도록 푸른 슬픔이다.

고레섬의 핑크색 건물벽과 골목마다 흐드러지게 핀 빨간 부겐벨리만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뿐이다.

다카르(세네갈)=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