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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화첩기행]유럽의 '레저 식민지' 스와코문트

눌재 2010. 5. 12. 20:38

[아프리카 화첩기행]유럽의 '레저 식민지' 스와코문트
적막한 사막의 한가운데서 '평화'를 만나다
스와코문트(swakopmund)의 밤바다에 발을 담갔다. 검은 파도가 밀려온다. 머리 위엔 별이 하늘을 화폭삼아 반짝이 그림을 총총히 그려 놓는다. 맨발로 바닷가 모래사장을 한없이 걸었다. 일행 중 누구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없어 서럽단다. 누구는 아련한 첫사랑을 얘기했다. 나미비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케이프타운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걸려 나미비아 월비스 베이(Walvis Bay)공항에 내리니 주변은 온통 모래사막이다. 차로 한 시간을 더 달려서야 휴양도시 스와코문트에 다다랐다. 길을 따라 대서양과 나미브사막이 맞닿아 있다. 새파란 하늘, 바다, 사막이 풍경을 분할한다. 바다와 사막의 어울림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해안가를 끼고 콘도 등이 오아시스처럼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방갈로형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닷가로 달려나갔다. 대서양 너머로 시뻘건 해가 뉘엿뉘엿 진다. 꽃잎 지듯 가슴시리도록 슬픈 아름다움이다. 아프리카는 무딘 가슴을 여리게 한다.

#유럽의 ‘레저 식민지’ 스와코문트

다음날 아침 모래언덕에 올랐다. 작은 읍내를 연상시키는 휴양지 스와코문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점가의 독일풍 건물들은 독일 식민지배의 역사를 말해 준다. 요즘도 상점 주인 대부분은 독일계 주민이다. 최근 유럽인들이 몰려들면서 해안가엔 숙박시설 건설이 한창이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부부가 자주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모래언덕을 시원하게 가르며 내려오는 샌드보딩과 바퀴 4개의 오토바이를 타고 사막을 질주하는 쿼드바이킹은 사막의 스릴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끝없는 사막을 질주하다 보면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경비행기에 오르니 사막과 바다가 한폭의 그림이다. 1000피트 상공에서 허공에 몸을 맡기니 발 아래 대서양과 나미브사막이 달려든다.

저녁이 되자 바닷가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엔 와인잔을 기울이는 유럽인들로 왁자지껄하다. 쿼드바이킹 중에 눈인사를 나눈 독일인이 알은체를 한다. 해변가엔 남루한 흑인들이 좌판을 벌여 놓고 자신들이 만든 공예품을 팔고 있다. 철사로 얼기설기 만든 장난감 같은 물건에서부터 부속품이 들여다보이는 누드라디오까지 만물상이다. 팔릴 것 같지 않은 물건 하나를 손에 들고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는 청년의 모습에서 오늘의 아프리카를 본다. 레스토랑의 시끄러운 풍요는 딴 세상이다. 좋은 풍광마저도 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유럽의 레저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프리카 남서부에 자리 잡은 나미비아. 여행전문가 스티브데이브가 지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지 40’에서도 나미비아의 데드 플라이는 놓치면 안 될 여행지로 거론되고 있다.

#사막의 적막감이 그림이 되다

◇작가 김종우가 화폭에 옮긴 데드 플라이. 붉은 사막과 숯이 되어버린 나무들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미브사막의 속살 곁으로 길을 나섰다. 덜컹거리는 흙길의 율동마저 자연의 리듬이 된다. 길가엔 끝없이 누런 초원이 펼쳐져 있다. 1월에서 3월까지는 거의 비가 안 내리니 풀들이 말랐다. 멀리서 보면 잘 익은 밀밭으로 착각할 정도. 그 위로 큰 체구의 타조들이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다. 마치 들녘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농부 같다. 듬성듬성 퀴버트리(Quiver Tree)도 보인다. 나무 속이 스펀지처럼 부드러워 산족(부시맨)이 화살통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나무다. 200년 정도를 건조한 초원에서 견뎌내며 연노란 꽃을 피워낸다.

남회귀선 표지판을 넘어서자 갑자기 비가 내린다. 흑인 운전기사는 행운이라 했다. 서너 시간을 달려 캠프장에 도착했다. 독일인이 운영하는 롯지 겸 농장에 딸린 공터다. 비 세례에 초원의 풀빛이 점차 초록색을 찾아가고 있다.

구름이 몰려간 자리엔 석양이 붉게 물든다. 남겨진 구름과 태양 빛이 어우러져 현란한 추상화를 연출한다. 떠날 때, 이별할 때, 생을 마감할 때 낙조처럼 아름다워야 할 이유를 말해 주는 듯하다. 순간이 영원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권순익의 ‘초원을 먹는 뱀’. 작가는 사막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뱀이 초원을 삼키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텐트를 치고 나니 달이 휘영청 밝다. 야영장의 간이 샤워장과 화장실엔 지붕이 없다. 하늘과 별을 보며 샤워도 하고 큰일까지 보니 자연이 품에 안겨온다. 텐트 안으로 달빛이 스며드니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 밤새 자칼과 전갈도 텐트 주위를 오갔다. 그들의 땅을 잠시 무단점유한 꼴이다.

이른 새벽 흙길을 3시간 달려 나미브사막의 속살로 들어서는 소수스플라이(Sossusvlei)에 도착했다. 소수스는 근원(Source), 플라이(Lake)는 물이 모이는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전엔 풍성한 땅이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붉은 나미브사막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내리쬐는 태양열에 등살이 탄다. 들고 간 물로 연방 목을 축여도 입이 타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붉은 사막언덕을 넘은 오릭스 가족마저도 헐떡이며 잡목 덤불을 그늘 삼아 쉬고 있다.

푹푹 빠지는 모래 위를 걷는 것은 고행이다. 물이 고였다가 굳은 곳은 비교적 딱딱해 걷기가 수월하다. 모래의 부드러운 촉각이 싫어진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간사함이다.

2시간 가까이 걸려 모래언덕에 갇힌 데드 플라이에 다다랐다. 말 그대로 죽음의 호수다. 흐르던 강이 말라 사막이 되면서 30여그루의 나무들이 그대로 고사된 채 남아 있다. 말라붙은 진흙 바닥에 숯빛으로 서 있는 나무들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을 떠돌던 산족은 적막한 사막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한 부시맨 여성에게 물었다. 흔히 사람들은 평정, 내적 평화, 고요함, 마음과 정신의 휴식들을 떠올린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고요함과 평화에 맛있다와 휼륭함이 덧붙여졌다. 마음의 평정을 맛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놀랍다.

산족도 사막을 침묵과 명상의 장소로 가치를 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막에서 마음의 평화를 구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자연과 하나되는 침묵의 언어였다. 불교 수도자들은 이것을 즐거운 평화(jhana·joyous peace)라 불렀다. 컬러와 형태 구성이 간결한 산족 그림에서 선(禪)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와코문트(나미비아)=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