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6>부샤르父子회사-부르고뉴 와인
‘황금의 언덕’위 특별한 땅 ‘아기예수의 밭’ 佛 보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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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라!’를 와인 세계에 대입하면, 애호가들은 이렇게 읊을 것이다. ‘부르고뉴 와인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라!’
하지만 부르고뉴 와인 앞에서는 그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부르고뉴 와인은 종류가 너무 많아 애호가조차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바둑판 같이 잘게 나뉜 포도밭마다 특유의 맛이 있고, 소유주가 다르기에 부르고뉴의 특성을 발견하기는 참 힘들다.
◇부샤르 양조회사가 소유한 본성의 다섯 망루 중 두 곳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 망루를 통해 프랑크 왕국은 부르고뉴 주민들의 동태를 살핌과 동시에 외적 침입에 대비할 수 있었다.
프랑스가 부르고뉴를 병합하지 못했다면, 프랑스 와인에는 황금의 언덕이 없을 것이다. 와인의 위대함과 섬세함은 프랑스 차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르고뉴의 행정수도는 디종이지만, 와인 중심은 본에 있으니, 와인여행자의 가슴에도 본의 중심지이므로 그 역사를 살피는 것이 의미가 있다.
오랫동안 프랑스에 속하지 않고 자치 생활을 영위해 온 본은 외세 침략에 대비하여 두터운 성벽을 쌓아 올렸고, 몇 곳에 둥근 망루를 설치했다. 납작한 중세 고도에 파수대만 불쑥 솟아 있던 외관은 이제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근처에 높은 건물이 건설돼 성과 경계탑의 두드러짐이 훨씬 덜해졌기 때문이다.
성벽을 따라 둥글게 형성된 본 시가지는 쇠락한 구석이 많지만 양조장 부샤르의 본사 주변에는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1478년 부르고뉴를 무너뜨린 프랑스 루이 9세는 혹시라도 반란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내부의 변화를 주시하려고 망루를 또 세웠다. 기존에 설치된 침략 대비용 망루와 합치면 모두 다섯 개의 망루가 샤토 뒤 본(Chateau Du Beaune 본성)에 설치되어 있다.
어떻게 좀 현명하게 부르고뉴 와인을 이해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금하던 차에 방한한 국제와인작가협회(FIJEV)의 조엘 페인 회장에게 질문했더니, 그는 네고시앙을 방문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4월에 부르고뉴로 여행자는 떠났다. 부르고뉴 대표적인 네고시앙 부샤르를 방문하기 위해….
◇거대한 와인도서관 같은 부샤르의 지하 셀러. 온도와 습도가 저절로 조절되는 천혜의 저장 공간이다.
이름이 있는 유명 포도밭이 모두 86개나 된다. 여기에 장기 임차한 포도밭까지 합치면 매년 수십 가지의 와인을 생산한다. 특정한 밭이나 구획별로 수확도 달리하고, 발효도 달리하고, 숙성도 달리해서 밭의 개성이 와인에 묻어나게 하는 것이다. 자기 소유 포도로 만든 와인에는 ‘도멘 부샤르’라 이름 붙여, 타인 소유의 와인과는 구별한다.
부샤르가 최초로 사들인 포도밭은 창업 연도에 획득한 볼네 마을의 ‘카유레’ 밭이다. 마을에 이름난 포도밭은 ‘프르미에 크뤼’라고 해서 달리 구분하는데, 그 이유는 주변의 밭보다 훨씬 좋은 포도를 잉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샤르의 ‘볼네 카유레 프르미에 크뤼’는 1731년부터 양조되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다. 이 와인 라벨에는 ‘옛날 카르노 거리에서 배합했다’는 뜻의 ‘앙시앵 퀴베 카르노(Ancienne Cuvee Carnot)’가 부제로 붙어 있다.
부샤르로 하여금 단순한 네고시앙에 머물러 있지 않고 명실상부한 ‘도멘 부샤르’라 불리게 하는 것은 특별히 이름 있는 밭 때문이다. 자갈이 많은 까닭에 붙여진 ‘본 그레베 프르미에 크뤼’ 포도밭 중에 ‘아기 예수’라는 애칭이 붙은 4ha 남짓의 밭은 오늘날 도멘 부샤르의 보석이다. 비록 그랑 크뤼(마을에서 이름난 밭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밭)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전설이 녹아 있기에 양조장을 대표할 만하다.
◇부샤르의 대표 와인 ‘꼬마 예수’를 수확 연도별로 시음한 결과 2005년 빈티지의 맛이 가장 좋았다.
아기 예수처럼 순수한 영성을 지녀야 한다는 신념을 구체화한 그 수녀의 공적에 근거하여 그 밭은 ‘아기 예수의 밭’이란 뜻의 ‘비뉴 드 랑팡 제쥐(Vigne de l’Enfant Jesus)’가 됐다.
부샤르는 1791년에 매물로 나온 이 밭을 사들여 오늘날까지 양조하고 있다. 여러 빈티지 중에서 2005년 빈티지는 아로마, 질감, 균형, 여운 모든 면에서 빠진 데가 없는 완벽한 맛을 보여준다.
부샤르의 이름 값은 유서 깊은 토지를 보유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1810년에 본에 있는 성, 즉 ‘샤토 뒤 본(Chateau de Beaune)’을 매입하여 지금까지 본사로 쓰고 있는데, 지하에 저장된 수만병의 와인 속에는 19세기 출신도 많다.
“미셸 베탄씨, 이 와인이 무엇인지 맞혀보세요.”
진지한 와인시음으로 유럽에서 이름난 ‘그랑 주리 유러피언’에서 몇 년 전에 있었던 상황을 조엘 회장이 설명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 미셸은 “부케가 그윽하니 아주 오래된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빈티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와인은 분명히 코르통 샤를마뉴인 것 같다. 왜냐하면 풍부하고 너트 향이 진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자, 그렇다면 관습대로 빈티지의 맨 끝자리만 말해 주겠다”고 말하는 부샤르의 한 책임자는 “7”이라 했다. 참석자 대부분은 그게 코르통 샤를마뉴인지 몰랐다. 미셸의 시음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20년 이상은 묵은 거라고 여겼는데, 그건 그리 정확한 입맛은 아니다.
언급된 가장 오랜 빈티지는 1937년이었다. 그 책임자는 약간은 교만하게 “1857년”이라고 말을 뱉었다. 모두들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와인실력자들이 모인 시음회에서도 이렇듯 정답을 맞히기가 어렵다. 와인의 숙성력은 특히 만든 곳에 그대로 있을 때에 무한히 증대된다.
◇본 시내의 식품점 쇼 윈도에 진열된 바질페스토로 절인 달팽이.
도멘 부샤르가 만드는 일반 와인은 합리적인 값으로 초보자들에게 부르고뉴의 세계를 알리는 게 목적이고, ‘아기 예수’, ‘코르통 샤를마뉴’, ‘뫼르소 샤름’ 같은 특별한 밭의 와인들은 애호가들에게 부르고뉴의 힘을 보이는 게 목적이다. 음식 부르고뉴가 식탁에 미친 영향은 비단 와인뿐이 아니다.
프렌치 레스토랑의 메뉴를 알차게 하는 일등공신 중에 달팽이 요리는 부르고뉴가 원조. 부르고뉴의 수도 디종은 ‘디종 머스터드’로 유명한데, 프랑스 맥도널드에서 토마토 케첩 대용으로도 나온다. 또한 와인에 재워 요리하는 부르고뉴식 쇠고기, 닭고기인 뵈프 부르기뇽과 코코뱅은 와인 수준에 따라 음식 값이 달라진다. 뭐니 뭐니 해도 부르고뉴 식탁의 하이라이트는 치즈. 여기서 브리나 카망베르를 찾지 말자. 에푸아스가 가장 유명한데, 나폴레옹도 애호한 이것은 ‘모든 치즈의 왕’이지만, 소문난 냄새 때문에 프랑스에선 대중 교통수단으로 운송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글·사진=조정용 와인저널니스트(‘올댓와인’ 저자)
# 추천 레스토랑
마 퀴진(Ma Cuisine). ‘나의 부엌’이란 뜻의 지역 레스토랑. 여기는 본 한복판에 있는 카르노 공원에 위치하며 찾기 쉽다. 저녁 7시 이후에는 길가에 주차해도 되니 렌터카를 몰고 갈 수도 있으며, 인근에 숙소가 있다면 산책 삼아 걸어가도 문제 없다. 왜 부르고뉴가 프랑스의 ‘위(밥통)’라고 불리는지 여기 와보면 안다.
풍성하게 잘 차려진 향토음식이 우리 입에도 너무 잘 맞는다. 여기에 정겨운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해 기분을 좋게 한다. 최대 장점은 부르고뉴 최고의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마실 수 있다는 점. 담백하고 간결하면서도 맑은 느낌이 드는 뫼르소와 달팽이, 푸아그라 등을 곁들이는 동안에 잔이 비어 가도 흥에 겨워 취할 겨를이 없다.
- 기사입력 2010.04.28 (수) 16:57, 최종수정 2010.04.29 (목)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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